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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목 현장을 가다] 전북 임실 성요한공소 ‘사도들의 모후’ 병사 레지오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4-04-15 수정일 2014-04-15 발행일 2014-04-20 제 2891호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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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깃발 아래 군 생활 어려움 이겨냅니다”
매주일 병사들끼리 쁘레시디움 주회합 ‘이색’
2010년 창단 후 4년째 … “주회 거른 적 없어”
‘사도들의 모후’ 단원들과 윤석용 선교사(오른쪽)가 레지오 깃발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라북도 임실 제6탄약창 성요한공소에서는 주일 오전 9시 미사 후 ‘특별한’ 자리가 차려진다. 공소에 딸린 작은 방에 병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도들의 모후’ 쁘레시디움(Pr) 레지오 마리애 주회합을 여는 시간이다.

레지오는 한국 천주교회 신심단체 중 가장 많은 신자들이 활동하는 단체로 흔히 ‘한국 천주교회의 버팀목’이라고 표현된다. 어느 본당에 가도 레지오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군종교구에, 그것도 본당이 아닌 공소에 레지오가 활동하고 있다면 보기 드문 일임에 틀림없다.

성요한공소 ‘사도들의 모후’가 더 특별한 이유는 단원 모두가 병사들로만 구성됐다는 점이다. 군종교구 본당 중에는 직업군인이나 그 가족으로 이뤄진 레지오는 간혹 있지만 20개월을 복무하고 제대하는 병사들이 만든 레지오는 유례가 드물다.

1년 여의 준비 끝에 2010년 1월 3일 전주 전동본당 ‘성마리아’ 꼬미시움 직속으로 ‘사도들의 모후’를 창단하고 초대 단장을 지냈던 군선교단 윤석용(스테파노·62) 선교사는 “군선교단 40여 명의 선교사가 전국 각 부대에서 선교하고 있지만 직업군인 없이 병사들이 레지오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고 혹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200차 이상 주회를 이어간 곳은 거의 전무하리라 짐작한다”고 말했다.

사도들의 모후는 6일 주일에도 어김없이 주회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207차 주회였다. 이날은 단장 박재득(세례자 요한) 상병(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생), 단원 김도원(안셀모) 일병(대전가톨릭대학교 신학생)·박덕윤(요한) 병장·임동진(로마노) 일병(부대 군종병) 등 4명이 모였다. 총 단원 9명 중 경계근무로 3명, 휴가로 2명이 빠졌다. 다른 주에도 훈련과 근무, 휴가 등으로 빠지는 인원이 꼭 있어 평균 4~5명이 주회에 나온다.

사도들의 모후는 창립 당시 14명의 단원으로 출발했고 한 때는 30명으로 늘어나 분가를 고려할 만큼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부대 환경의 변화로 현재는 어렵사리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윤석용 선교사는 단원들이 적게 나온 주에는 “레지오 깃발 내릴 거냐?”고 따끔하게 다그친 적도 있다.

병사들로만 구성되다 보니 비밀헌금이 없어 간부 네 명 중 회계는 공석이고 단원들이 제대하면 자연히 레지오를 떠나게 된다. 한 주 한 주 레지오의 역사를 이어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이유다. 207차 주회를 이어오는 동안 전 병력이 훈련에 나가거나 부활 대축일과 성탄 대축일에 공소를 관할하는 충경본당(주임 강은식 신부)에서 미사를 드리는 주 외에는 단 한 주도 주회를 거른 적이 없다는 것은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현 단장인 박재득 상병이 제9대 단장이며 단장들의 평균 임기가 6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민간인 본당 레지오 간부의 임기가 3년이고 연임이 가능한 점을 감안하면 사도들의 모후가 심한 인원변동 속에서도 꿋꿋하게 레지오를 유지해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병사 레지오라는 특성으로 인해 창단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전주교구 상급평의회에서는 “장병들끼리 모여서 레지오가 되겠느냐”, “관리하기 힘들다”는 등의 이유로 창단 동의를 주저했고 창단 후에도 병사 레지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왜 그렇게 간부가 자주 바뀌느냐”는 질책도 나왔다.

지난해 10월 단장이 된 박 상병은 “신학교에 다닐 때까지 레지오 활동을 해본 적이 없고 더군다나 군대에 레지오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단장으로서 소원이 있다면 단원 9명이 모두 주회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상병은 홀로 레지오에 나와 주회를 했던 ‘슬픈’ 기억이 있는데 다행히도 딱 한 번이었다는 일화도 들려줬다.

사도들의 모후 단원들은 다른 병사들이 생활관에서 군복무의 피로를 풀고 있을 주일에,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에게 소중한 시간을 봉헌하는 것이다. 단원들은 주회에 앞서 공소 미사에 참례한다. 미사를 준비하고 해설과 독서, 반주를 담당하는 것도 모두 단원들의 몫이다. 군부대라는 한정된 공간이다 보니 레지오 단원으로서 할 수 있는 활동은 주일미사 참례와 묵주기도가 전부다. 그렇기에 사도들의 모후 주회 활동보고는 소박하면서도 강한 감동을 전해준다.

주일 오전 9시 공소 미사를 주례하며 단원들과 매주 만나는 강은식 신부는 “사도들의 모후가 지금까지 유지·성장해 온 공은 윤 선교사님에게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윤 선교사는 매주 과일과 과자, 컵라면 등 간식을 싸들고 사도들의 모후 단원들을 찾아와 주회를 같이 하면서 단원들의 영적 성장에 자양분이 되는 훈화를 전달한다. 2012년 10월 환갑 때는 단원들을 자택으로 초대해 매운탕을 끓여 주기도 했다. 군복 입은 청년들을 보고 가족들이 깜짝 놀랐던 일은 아름다운 추억 속 한 장면이다.

5월 6일이면 ‘말년’ 박덕윤 병장이 제대와 동시에 사도들의 모후 레지오를 떠난다. 박 병장은 2012년 9월 대구 50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된 후 사도들의 모후에 입단해 휴가 중에도 주일 미사를 드리는 독실한 신자가 됐다. 박 병장은 곧 떠나지만 그 빈 자리는 남은 단원들의 기도와 희생으로 채워질 것이다.

‘사도들의 모후’ 레지오 주회에 참가한 병사들이 영적 독서로 성경을 읽는 모습.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