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서울 신내동본당 일본 삿포로교구 방문 (하)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4-03-04 수정일 2014-03-04 발행일 2014-03-09 제 288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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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교회 소통 속에 움트는 동북아시아 복음화
본당 내 신심단체·주일학교 조차 없는 삿포로교구
신내동본당과 4년여 만남 계기로 새로운 ‘희망’ 발견
무관심 헤치니 형제애 새록 “양 교구 발전 밑거름 될 터”
복음화, 하느님과의 소통

지난 2월 11일, 일본 삿포로교구 주교좌 기타이치조(北一條)성당.

교구 전체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사무국장 우에스기 마사히로(上杉 昌弘) 신부로부터 삿포로교구의 현황을 듣는 서울 신내동본당(주임 이기우 신부) 신자들의 얼굴에서는 그늘이 드리웠다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한국교회가 부럽고 한국 신자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삿포로교구 내 본당에는 신심단체는 고사하고 주일학교도 없습니다.”

순간 나직한 수군거림과 함께 찬바람이 신자들 사이를 훑고 지나간다.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평일미사가 없는 곳도 태반입니다.”

사제가 부족해 우에스기 신부도 삿포로 지역 내 3개 본당 주임까지 겸임해야 하는 상황. 그야말로 모든 역량을 한 방울까지 짜내야 하는 현실이다.

매주 주교좌성당에서 봉헌되는 주일미사 참례자도 100명을 넘지 않는다. 삿포로교구 안에서 미사가 두 대 봉헌되는 곳은 찾아볼 수도 없다.

“일본에는 한국보다 훨씬 빨리 천주교가 들어왔지만, 여러분과 같은 분들을 통해 새롭게 복음화의 씨앗이 움트고 새로운 복음화 여정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삿포로교구장 베르나르도 카츠야 타이지 주교는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조그만 도구가 되고자 할 따름”이라며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을 통해 일본교회와 새롭게 소통하고자 하시는 것 같다”며 한국교회에 거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지난 2월 11일 일본 삿포로교구 주교좌 기타이치조성당을 방문한 서울 신내동본당 신자들이 삿포로교구장 베르나르도 카츠야 타이지 주교로부터 축복 안수를 받고 있는 모습.

만남, 그리고 소통

동북아시아 복음화의 길은 너무도 멀어보였다. 아니, 너무 낯설어 도무지 자신이 갈 길이 아닌 듯이 생각되기까지 했다. 그렇게 서울 신내동본당 공동체가 깃발을 치켜든 동북아시아 복음화의 장정은 어렵사리 첫 걸음을 뗐다.

지난 2010년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안 의사의 숭고한 뜻을 나누자는 의미에서 ‘동북아시아 복음화’ 깃발을 올렸을 때 누구도 선뜻 따라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계절이 흐르고 해가 바뀌면서 그 깃발 아래에는 뜻을 같이하고자 하는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느 새 여든을 넘긴 주재영(바오로·81·서울 신내동본당)씨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따라나선 이 가운데 하나였다.

“이제 좋은 씨가 땅에 떨어졌으니…, 그 씨앗이 지닌 힘과 미래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니 누구도 말리지 못할 것입니다.”

물꼬는 본당 주임 이기우 신부가 텄다. 안식년을 보내며 인연을 맺은 삿포로교구 신자들을 처음 초대한 게 지난 2010년 10월이었다. 이듬해 2월에는 본당 신자들을 이끌고 삿포로교구를 찾아 복음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일본교회의 민낯을 보고 돌아왔다.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말에 묻어두었던 무관심을 헤치고 들어가자 형제애가 새록새록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길이 열리니 다음 일은 주님이 주관하시는 것 같았다.

2011년 10월 신내동본당과 삿포로교구 무로란(室蘭)지역 4개 본당 사이에 맺은 자매결연은 하나의 이정표였을 따름이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자신의 집을 내어주고 마음으로 형제를 받아들이자 가슴 속으로 뜨거운 탕자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목회 강익구(프란치스코·58) 총회장은 “하느님만 믿고 따르면 당신께서 우리 귀가 열리게 하시고 혀를 풀리게 해주신다는 진리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여정이었다”면서 “미처 모르고 있었던 우리 자신의 완고함과 부족함을 돌아보고 회개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셔서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최고령자이면서 첫해부터 여정에 함께해오고 있는 김성회(요셉·82)씨는 “교류 첫해에는 과연 우리 힘으로 가능할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일에 하느님께서 힘을 보태시며 함께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며 “우리의 조그만 몸짓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우리의 일이 결코 작은 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우 신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면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앞서 전하는 선교사는 불쏘시개, 우리는 그 위에 얹어지는 마른장작과 같은 존재”라며 신자들을 격려했다.

신내동본당 공동체는 올 가을 일본 형제들을 다시 맞을 생각에 벌써부터 들떠있는 모습이다.

일본 삿포로교구 무로란본당 주임 고바야시 신부가 본당을 방문한 신내동본당 신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신내동본당은 2011년 10월 무로란지역 4개 본당과 자매결연을 맺고 교류하며 형제애를 나누고 있다.

■ 일본 삿포로교구서 사목 중인 송영준 신부

“만남·소통 속에 변화의 물꼬 트여”

자신 드러내지 않던 일본 신자

한국 신자들과의 교류 계기로

새로운 열정 가득찬 모습 발견

“아마 우리 속을 들여다보면 스스로도 옛날 그 뜨겁던 사랑이 다 어디로 갔나 하고 소스라치게 놀랄 지도 모릅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가 교회일까요, 사랑이 없는 신앙을 참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서울대교구와 의정부교구에서 본당 사목을 하다 해외 선교를 자원, 지난 2005년 홀연히 일본으로 떠나온 송영준 신부(의정부교구·사진)는 사랑이 메말라가는 교회 안팎의 풍토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메리놀외방전교회 한국지부의 도움으로 도쿄에서 일본어 어학연수를 마치고 2007년 첫발을 디딘 일본 최북단 삿포로교구는 송 신부에게 식어가던 사랑에 기름을 부어준 곳이나 다름없다. 새롭게 불붙은 풋풋한 사랑을 불태우고 있는 처녀지다.

“제 자신을 돌아볼 때 아직 멀었다는 생각입니다. 8년이 돼 가고 있지만 아직도 배우고 공부할 게 산더미 같아요.”

삿포로교구 남서부에 위치한 무로란(室蘭)지역 4개 본당 가운데 히가시무로란(東室蘭)과 노보리베츠(登別) 두 본당 주임을 맡고 있는 그는 사목이나 선교라는 말보다 그저 일본 신자들과 함께 지내며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가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이렇게 살지 않았으면 도저히 몰랐을 하느님의 섭리, 또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주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때가 있습니다. 이런 체험이 늘 용기를 북돋우고 새로운 열정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송 신부에게 사목은 그저 ‘함께함’이다. 거창하게 선교나 복음화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다.

“저 자신이 함께하는 이들로 인해 늘 새롭게 깨어나고 힘을 얻는데…. 기쁨을 얻는 건 오히려 저입니다.”

이런 그에게도 고민이 없진 않았다.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목 환경, 개인주의에 푹 젖어버린 듯한 교회 활동들, 그러나 가장 큰 어려움은 좀체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 신자들의 모습이었다. 한 마디로 반응이나 피드백이 없는 신자들의 모습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동북아 복음화’라는 큰 씨앗을 품고 한국교회와 교류에 나선 것이다. 그 길은 신학교 입학 동기인 이기우 신부(서울 신내동본당 주임)와 의기투합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0년 10월 처음으로 일본 신자들을 이끌고 한국 나들이에 나설 때만 해도 머릿속은 새하얀 상태나 다름없었다. 자신도 신자들도 처음 걷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서히, 그러나 확실한 변화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섭리, 저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의 한 자락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만남과 소통의 조그만 창구를 열어가고 있지만 그가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어떤 면에서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은 일본 신자들 사이에 새로운 바람을 불고 있습니다. 새로운 성령의 바람길을 내준 한국 신자들에게 감사합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