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커버스토리] 누구나 먹을 권리가 있다 : 왜 식량권인가? - 전 세계 기아 현황·실태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4-01-21 수정일 2014-01-21 발행일 2014-01-26 제 2880호 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식량권 박탈 원인은 식량 부족 아닌 ‘나눔 부족’
지난 40년 간 세계 식량 생산
오히려 두 배 증가 ‘풍족’
식량권 보장 받지 못한
가난한 지역서 빈곤 ‘악순환’

한 사람 한 사람 작은 나눔이
세계 기아 퇴치 원동력
지난해 태풍 ‘하이옌’으로 피해를 입은 필리핀 아이들이 ‘We need food’(식량이 필요합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CNS】
“거리는 무너진 집들, 뒤집어진 차들과 시체들로 뒤죽박죽입니다. 누군가가 도시 전체를 들어 올려서 공중에다 내팽개친 것 같습니다.”

태풍 하이옌에 의해 처참한 폐허로 변한 필리핀 타클로반시의 참상을 CNS통신이 보도했다. 태풍으로 생긴 5m 크기의 파도는 나무며 전봇대를 뿌리째 뽑아버렸고 집들도 흔적도 없이 없애버렸다. 태풍의 위협에도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생존자들에게는 여전히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파도에 쓸려온 시체가 썩으며 내는 악취도, 전염병의 위험도, 주거공간의 부재도 시급했지만, 이재민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문제는 바로 ‘식량’이었다.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었지만 식량권의 박탈은 그렇지 않았다. 재난 현장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은 소외됐다. 상대적으로 재산이 있는 사람들이 구호에 관한 정보에 접근성이 높아 식수와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고 더 수월하게 피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연재해에서 살아남았음에도 식량권의 위협으로 다시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만 했다.

가난한 이들의 식량권 위협은 비단 필리핀 재해현장만의 일이 아니라 세계 전역의 일이다. 세계 기아 인구의 98%가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다. 특히 그 3/4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의 농촌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굶주리며 고통받는 이들은 여성과 어린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EP)의 조사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의 어린이 6명 중 1명이 저체중 상태일 뿐 아니라 5세 이하 유아의 3명 중 1명은 기아로 사망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지역이, 그리고 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식량권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이 겪고 있는 식량권의 박탈은 식량부족 때문이 아니다. 세계 인구 8명 중 1명이 굶주리고 있고 세계 어린이 4명 중 1명이 영양실조로 발육부진을 겪고 있지만 전 세계를 두고 봤을 때 식량은 오히려 풍족하다. 세계 식량 생산량은 지난 40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고 단순히 곡물 생산량만 따지더라도 세계 인구가 충분히 먹고도 남을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농업생산량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매일 최소 2700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1일 권장 칼로리가 성인 남성이 2200~2600칼로리, 성인 여성이 1800~2100칼로리임을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양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세계에 식량이 충분하게 생산되고 있음에도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식량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교회는 식량권 박탈의 원인은 식량의 부족이 아닌 ‘나눔’의 부족임을 가르치며 나눔을 실천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교회는 특히 가난한 이를 위한 ‘나눔’이 ‘자비의 행위’라기보다 ‘정의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가난을 이유로 누리지 못하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나누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사목헌장」을 통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주지 않으면 그대가 죽이는 것이다”라는 교부들의 말을 언급하며 “각자의 능력대로 자기 재화를 참으로 나눠주고, 개인이나 민족이 스스로 돕고 발전할 수 있도록 원조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호소하고 있다.

1996년 교황청 사회사목평의회가 발표한 「세계의 기아」는 영양실조와 기아의 주된 희생자들이 “가난한 이들”임을 상기시키며 “오늘날 온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무엇보다 윤리적, 정신적,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라고 나눔의 부재로 기아가 증가하는 현실을 진단했다.

교황 프란치스코 역시 유엔 세계식량계획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기아는 세계식량계획이 강조하듯 해결 가능한 문제”라며 “가톨릭교회를 대신해 전 세계 기아인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약속한다”고 세계 기아 퇴치를 향한 의지를 표명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복음적 요청에 따라 각종 원조기구들을 통해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나눔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원조기구가 바로 ‘국제 카리타스’다.

1897년 독일 카리타스를 시작으로 각국에서 설립되기 시작해 1957년 지금의 명칭으로 활동하게 된 ‘국제 카리타스’는 전 세계 201개 나라와 지역에서 활동하는 164개 카리타스 회원기구들의 연합체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사회복지, 긴급구호, 개발협력 사업을 총괄 조정하는 국제 카리타스는 인도주의적 긴급 상황에 도움을 주고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에 비춰 세상에 사랑과 정의를 널리 전하는 데에 이바지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국제 카리타스는 지난해 태풍 하이옌으로 피해를 당한 필리핀이나 2011년 일본대지진, 2010년 아이티대지진 등에 긴급구호활동을 펼쳐왔을 뿐 아니라 굶주린 이들을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 역시 세계교회와 함께하는 기아퇴치에 함께 나서고 있다. 한국은 1960~1970년대 미국을 비롯해 유럽 등 선진국의 원조를 받아왔지만 1992년 주교회의에서 한국교회의 해외원조실시를 결정하면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 사회복지주일을 해외 원조 주일로 지정, 해외원조에 관한 관심을 촉구하면서 지속적으로 지원이 증가해 한국 카리타스는 20년에 걸쳐 약 300억 원을 지원했다.

세상에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을 없애기 위해 교회는 지금 이 순간에도 노력을 기울이며 신자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교회가 진행하는 세계 기아 퇴치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나눔이다.

한 시리아 난민 여성이 레바논의 난민 캠프에서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CNS】

- 숫자로 보는 세계 기아 상식

비교적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모르고 지나가기 쉽지만 세계 기아의 현재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세계 기아에 관한 간단한 상식을 숫자를 통해 알아보자.

8억4200만 명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8억4200만 명의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만큼의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아와 영양실조는 세계 건장을 위협하는 제1의 원인으로 그 수는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에 걸린 사람들의 수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 세계 식량생산량이 전 세계 인구의 필요 식량보다 높은 걸 생각해보면 우리 가운데 8명 중 1명은 나머지 7명의 무관심 때문에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20억 명

약 20억 명의 사람들은 비타민, 미네랄과 같은 미량 영양소 부족으로 영양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의 질병으로 인한 사망의 10가지 주요이유 중 하나가 철분, 비타민A와 아연의 부족이다. 미량 영양소의 부족은 면역력의 저하를 가져와 전염병에 걸리기 쉽게 만들며, 지속적인 기아상태는 신체적, 정신적 발전을 저해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위협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10년

세계의 기아는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1995~1997년까지 감소세를 보이던 세계기아는 10년 이상 꾸준히 증가하다가 2000년대 후반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서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러나 세계가 경제위기를 겪는 상황 속에서도 세계는 전 세계인구가 먹고 살만큼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었다.

1000일

영양실조의 가장 큰 희생자는 어린이들이다. 매년 사망하는 어린이 1090만 명 중 절반에 달하는 500만 명이 영양부족으로 죽어간다.

영양실조에 빠진 어린이들은 매년 약 160일을 앓아누울 뿐 아니라 신체 발육을 방해할 뿐 아니라 질병에 대한 저항력도 떨어져 일상적인 활동에서도 고통을 겪게 된다. 1000일은 태중에서부터 2세가 될 때까지 기간으로 기아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간이다. 이 시기에 적절한 영양공급을 받는다면 영양실조의 전조증상인 정신적, 신체적 발달 장애를 막을 수 있다.

300원

작은 나눔은 기아를 구할 수 있는 큰 힘으로 이어진다. 1명의 어린이에게 하루치 식량을 제공하는 비용은 300원. 우리에겐 동전 3개에 불과한 단 300원이면 식량권의 위협을 받는 한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과 영양소를 모두 공급할 수 있다.

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