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염수정 추기경 서임] 특별기고 / 새 추기경 탄생과 한국, 세계교회

입력일 2014-01-14 수정일 2014-01-14 발행일 2014-01-19 제 2879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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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사회가 세 번째 추기경을 선물 받았다.

새 추기경 탄생은 신자 수 536만 명(2012년 교회통계),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선 지속적인 성장과 아시아 및 세계교회 안에서 한국교회가 차지하는 위상에 걸맞는 결실이다. 이 시대의 큰 어른, 넉넉한 품으로 사회 전반을 품어줄 새 추기경을 기다려온 사회 각계도 일제히 환영과 축하를 전하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 실현에 함께 해나갈 뜻을 밝혔다.

교회 안팎에서는 신임 염수정 추기경을 보수와 진보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인물로 평가한다. 그는 겸손하고 온화한 성품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지혜롭게 통합하고 화해의 구심점이 될 뿐 아니라, 만연한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 도덕적 위기 등을 정화하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염수정 추기경 또한 임명 직후 “나만이 옳다며 쌓아올리는 바벨탑을 무너뜨리자”며 “뿔뿔이 흩어진 양들을 하나로 모으고 화해, 일치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하는 것이 첫 직무”라고 다짐을 전했다.

세계 역사 안에서도 이례적으로,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여 큰 성장을 이뤄가고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이제 세계교회 안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이젠 보편교회와 발걸음을 맞춰 교회 공동체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데 더욱 박차를 가하고,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 함양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와 글로벌 사회 복음화를 향해 보다 적극적인 발걸음을 내디딜 때다.

이와 맥을 같이해 다음에서는 신임 추기경에게 기대하는 바와 한국 신자들과 국민들이 함께 돌아보고 나아가야할 바 등에 대해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차동엽 신부와 한홍순 전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가 전하는 간략한 메시지를 소개한다.

주정아 기자

■ 차동엽 신부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통큰 경청을 기대”

교황의 문제해결 경륜 따르길

‘가난한 이 위한 교회’ 실행에 충실하며

소리없이 개혁 꾀하는 고수의 접근법 필요

통합·치유의 영적 지도자 됐으면

진보·보수 틀 깨는 ‘새 관점 사회 참여’ 절실

‘정직·준법·배려’ 세상에 구현하길 소망

염수정 신임 추기경의 탄생 소식을 접하고 불현듯 신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염 신부님의 모습은 언제나 과묵하면서도 믿음직한 형님! 그 모습이 지금까지 내 가슴에 각인된 염 추기경의 아이콘이다.

지금 우리 사회 여러 진영으로부터 다양한 우려와 기대의 시선들이 날카로운 촉을 세우고 그에게로 쏠리고 있다. 나 역시 그 중 한 가슴으로서 감히 그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나의 기대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유쾌한 회상에서 출발한다.

작년 3월, 그가 막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6000명이 넘는 보도진의 궁금증은 문제투성이인 것처럼 보이는 바티칸 내부 사안 및 노선에 집중되어 있었다. 과연 신임 교황은 어떤 대담한 정책을 펼칠지에 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매서운 눈초리로 교황의 입을 주시했다. 하지만 교황은 보란 듯이 이런 문제에 대해 모른 척하고 딴전을 부렸다. 그 대신 그는 거침없는 인간미로 세계를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교황 전용 리무진 대신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저녁이면 몰래 저자거리로 나가 노숙인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등 착한 기행에 우선적으로 골몰하였다. 그 결과 언론으로부터 ‘세계인의 본당 신부’라는 별칭을 얻었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 바티칸 내부의 개혁은 소리 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염수정 추기경이 교황의 이러한 문제해결 경륜을 따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먼저 살아있는 인간미로 대중에게 다가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는 본래 부르심에 실행으로 충실하면서도,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지혜롭게 차근차근 소리 없이 개혁을 꾀하는 고수의 접근법 말이다.

신임 추기경은 한국의 추기경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아시아교회의 주역이 되길 바란다. 특히 중국 복음화를 위한 역할과 책임을 우리의 몫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끄는 추기경이 되길 기대한다.

아울러 염 추기경이 통일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되어주길 바란다. 통일은 더 이상 요원한 문제가 아니라 가시적으로 다가온 사안이다. 하지만 기존의 열정과 관심만으로는 부족하며, 특히 남북한이 한데 어우러지는 데에는 종교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다음으로, 나는 염 추기경이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의 낡은 틀을 깬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회 참여’를 몸소 실행하는 추기경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지금 우리 사회는 종교인의 정치 참여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어느 편이건 신임 추기경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었으면 할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준 직분 ‘추기경’은 모든 신자의 추기경, 온 국민의 추기경이다. 따라서 국민 모두를 통합으로 끌어안는 치유의 영적 지도자 역할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황희 정승의 어법’을 즐기는 어르신의 면모가 제격이겠다. 두 명의 하인이 말다툼을 하다 황희 정승에게 와서 하소연을 하였다. 황희가 한쪽 얘기를 듣고 “네 말이 옳다”고 했다. 그런데 또 다른 쪽 얘기를 듣고는 “네 말도 옳다”고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인이 “두 사람이 서로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데 둘 다 옳다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한 사람은 옳고 한 사람은 틀려야지요” 하니, 황희가 “당신 말도 옳소”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말장난 같지만 여기에는 뼈 있는 메시지가 있다. 세상 누구의 의견이건 들을 가치가 있고, 인정해줘야 하는 옳음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기에 염 신임 추기경에게 통큰 경청을 기대해보는 것이다.

고 김 추기경은 정직(진실), 준법(정의), 배려(사랑) 이 세 가지를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꼽으면서, 이것이 국민운동을 통하여 구현되기를 소망했다. 이 정신을 염수정 신임 추기경이 계승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질적 성장에 기여하는, 그리하여 그 혜택이 모든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에게까지 골고루 분배되는 이 나라의 영적 지도자로 활약해주실 것을 기도로써 기대한다.

염 추기경의 겸손함은 교회 안팎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보물과도 같은 선물이다. 특히 모든 신자들이 이 시대의 징표에 더욱 빛을 밝혀 염 추기경과 발맞춰 일치와 화해의 사회를 이뤄가는데 힘쓰길 기대한다.

■ 한홍순 전 주 교황청 대사

“새 교회상 구현의 발걸음”

생각은 세계적·행동은 지역에 맞게

교황의 ‘새 교회상’ 세우는 일 협조하며

가난한 이 우선 배려하는 교회 구조 실현을

아시아 새 복음화 구심점 역할 기대

복음화율 3% 아시아에 ‘복음의 기쁨’ 전하고

북한 인권 촉진에 더욱 힘써주길 당부

드디어 한국에 새 추기경이 임명됐다. 그동안 교황청 주재 대사로 일하면서 새 추기경 임명에 대한 신자들의 간절한 염원과 정부의 각별한 관심을 잘 알고 있던 만큼 어떤 의미에서 이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터이기도 하여 이번 염 추기경 임명은 필자에게 참으로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한다. 정녕 “이날은 주님께서 만드신 날 우리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편 118,24)”라고 소리 높이 외치고 싶은 마음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작년 3월 취임한 이후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도록 어디까지나 교회의 정통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교회상을 굳건히 세우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이를 위해 우선 교황청의 구조를 개혁하면서 교회의 삶의 방식을 가난한 이들을 우선으로 배려하는 방향에 중심을 맞춰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몸소 행동으로 본을 보여 주며 역동적으로 추진하고 있거니와 이번 추기경 임명도 이러한 맥락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추기경은 교황의 최고위 자문 위원이요 협조자인 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으로 한 이번 추기경 임명의 첫째 기준도 바로 그러한 교회상 구현에 맞춰져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볼 때 이번에 아시아에서 임명된 두 분 중 한 분이 바로 한국의 염 추기경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우선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이 한국과 한국교회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국과 한국교회에 걸고 있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말이다. 한국은 민족 분단의 아픔을 이겨내며 경제 성장과 더불어 교회 성장을 함께 이룩하고 있는 나라이며 이제 해외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국격을 높이고 있고, 교회 또한 외국 선교사를 받던 교회에서 해외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황과 교황청은 실로 경이로운 눈빛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염 추기경 임명은 교황이 전 세계 모든 민족들과 세계교회를 대상으로 펼치는 복음화 임무에 한국교회가 염 추기경과 함께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권고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세계 인구의 60%, 곧 40억 명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가톨릭 신자는 3%, 그것도 필리핀을 제외하면 1% 밖에 안 되는 아시아, 대다수가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아시아의 백성들과 복음의 기쁨을 나누는 임무를 한국교회에 지워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생각은 세계적으로, 행동은 지역에 맞게”라는 말에서 보듯 염 추기경 임명은 한국교회가 염 추기경과 협력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로운 교회상을 세우는 일에 더욱 협조하는 일을 바로 한국의 각 지역에서 해내라는 권고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하여”(새 천년기, III)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도록 본당과 교구의 구조를 새롭게 하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양심 성찰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염 추기경이 평양교구장 서리도 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작년 부활절 교황 담화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기도를 요청한 바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염 추기경 임명은 한국교회가 민족 화해와 북한 백성의 더욱 인간다운 삶을 촉진하는 일에 염 추기경과 함께 더욱 노력하도록 권고하는 뜻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진석 추기경과 염수정 추기경 두 분 추기경을 갖게 된 한국과 한국교회는 이제 안으로 자신과 사회를 새로이 복음화하며 밖으로는 복음화의 지평을 아시아와 세계로 넓혀 가야 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일에, 염 추기경의 임명을 기뻐하는 모든 이가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하는 마음으로 힘을 모아 협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