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매년 1월 1일 해맞이 미사 봉헌하는 이정철 신부

김진영 기자
입력일 2013-12-24 수정일 2013-12-24 발행일 2014-01-01 제 2876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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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는 새해 아침을 주님과 함께 … ”
의미 있는 새해 맞이 위해 마련, 매서운 날씨에도 신자들 ‘북적’
모진 고난 견뎠던 박해 시절 순교자 모습 묵상하는 기회도
이정철 신부는 매해 첫날 오전 7시 단내성가정성지에서 해맞이 미사를 봉헌한다.
“그리스도의 몸.”

새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성체를 임하는 순간 먼동이 뿌옇게 밝아 왔다. 새해의 시작을 영성체로 한다는 사실이 기뻐 추운 날씨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매해 첫날 오전 7시 단내성가정성지(전담 이정철 신부)에서 봉헌되는 해맞이 미사는 폭설과 한파에도 불구하고 새해를 의미 있게 시작하고자 모인 이들로 북적북적하다.

“제가 2010년 9월에 이곳 단내성가정성지로 부임해 오고 그 해 마지막 날 성지위원장님과 저를 포함해 4명이서 예수성심상 앞에서 자고 새해 첫날 새벽미사를 봉헌하기로 했어요. 새해를 의미 있게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매서운 추위였다. 저녁으로 삼겹살을 구워먹었는데, 구워진 고기를 한쪽에 놓자 1분도 안돼서 살얼음이 얼 정도였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뉴스에서 이번 겨울 가장 추운 날이 될 것이라 이야기했었는데 과연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말도 4켤레나 신고, 내복은 물론 따뜻한 오리털 옷까지 든든히 입었지만 핫팩에 의지해 겨우겨우 잠들 수 있었다.

“솔직히 죽는 줄 알았어요. 핫팩 덕분에 살았죠. 저희는 물질문명의 힘 덕분에 그나마 이렇게 버틸 수 있었는데 순교자 가족들은 정말 힘드셨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더군요.”

불과 백오십여 년 전인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정은 바오로와 정양묵 베드로가 광주 영문에 잡혀갔다. 재산은 모두 몰수당하고 포졸들은 남아있는 식구들을 잡으려고 찾아왔다. 남은 식구들은 눈 덮인 산으로 피신해 ‘검은바위’나 ‘옥시울 양지골’, 그리고 기록에는 안 나오지만 후손들의 구전을 통해 전해오는 장소인 ‘굴바위’에 은신했다. 몸만 간신히 빠져나온 터라 옷이나 이불은 고사하고 먹을 것조차 챙기지 못했다. 순교자 가족들은 12월 달에 올라가서 그 다음 해 여름까지 숨어 살았다.

“순교자 가족들이 맞이한 새해는 우리와 분명 달라겠죠. 기쁨과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을지도 몰라요.”

전승에 따르면 검은바위로 피신했던 순교자 가족들은 야음을 틈타 아는 사람 집 앞에 가서 식량을 받아오곤 했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날이면 날마다 포졸들이 찾아오는 것이 싫어 신고를 하거나 식량을 주는 집을 마을에서 내쫓아야겠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 순교자 가족들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해맞이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올라오시는 분들을 보면 나름 마음에 준비를 하고 올라오시는구나 하는 것이 느껴져요. 단순히 새해를 맞이해 새로운 마음이나 희망을 노래하고자 한다면 이곳보다는 동해를 찾아가겠죠.”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떡국을 준비해와 함께 나누며 새해 첫날을 봉사로 시작하는 사람이나 가족과 함께 매년 해맞이 미사에 참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해맞이 미사 중에 포도주를 성작에 부었더니 순간적으로 확 얼었어요. 어쩔 수 없이 셔벗처럼 된 성혈을 긁어서 양영성체를 했는데 그게 참례자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어요. 해보지 못했던 경험이라 즐거워들 하시더군요.”

한 해의 시작을 주님과 함께하고자 모인 이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누군가 시켜서 하라고 하면 못할 일이지만 스스로 와서 하는 일이라 기쁘기만 하다고 말하는 이들을 통해, 순교자들과 그 가족들도 몸은 고되었겠지만 믿음으로 인해 마음은 평안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평화를 빕니다.”

김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