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성탄 르포] 이주민 지원 초콜릿 제작하는 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이우현 기자
입력일 2013-12-17 수정일 2013-12-17 발행일 2013-12-25 제 2875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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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초콜릿에 스며든 이주민 ‘사랑’
2008년 이주민 자립 위한 교육으로 시작
초콜릿 판로 마련하고 본격 사업화 착수
수익금은 이주민 자립·정서 지원금에 사용
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는 초콜릿 판매를 통해 이주민들의 한국생활 적응을 도우며 자립·자활, 정서지원에까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과자의 하나인 초콜릿.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맛과 함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 곁으로 오시는 그 순간도 온갖 시름으로 굳어버린 얼굴을 풀고, 미소를 되찾게 하는 달콤한 기쁨의 순간이 아닐까. 아기 예수님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이웃에게도 이처럼 달콤한 기쁨의 순간을 전해주신다.

예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직접 만든 초콜릿을 통해 우리가 무관심했던 주위의 이웃들에게 아기 예수님을 대신할 달콤한 기쁨을 전달하는 교구 이주사목위원장 최병조 신부와 김경애(엘리사벳)·최희성(아나타시아)·양성경(마틸다)·장미애(아가다)씨 등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 초콜릿, 그 달콤한 기쁨 만들기

수원 엠마우스 한쪽에 마련돼 있는 식당 공간은 자주 초콜릿 공방(?)으로 변신한다. 성탄을 앞두고, 하얀 눈이 펄펄 내린 지난 12일에도 그곳에서는 어김없이 초콜릿 공방이 차려졌다. 교구 이주사목위원회가 만든 초콜릿 공방의 주상품은 달콤 쌉싸름한 카카오 분말을 입은 생초콜릿이다.

“초콜릿 만드는 자세한 방법은 우리만의 비밀 조리법이라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일단 주재료인 다크 초콜릿에 생크림을 조금씩 넣고, 물을 넣은 냄비 위에서 중탕을 하면 돼요. 천천히 녹여가다 보면 달콤한 초콜릿 향이 이곳 식당 가득 퍼집니다. 그 향도 일품이지요.”

초콜릿이 점점 녹아들어가고 있는 냄비를 휘휘 젓고 있는 손길 중에는 투박한 남자 손이 함께 섞여 있다.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최 신부의 손이다. 초콜릿을 만들 때면, 최 신부는 투박하지만 그 누구보다 세심한 손놀림으로 제조과정을 이끌어 간다. 초콜릿을 만드는 전 과정 속에 최 신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순간은 없다.

“성경 속에서 사도 바오로가 직접 천막을 지으며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립했던 모습처럼, 제 자신도 신부로서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실행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더욱이 사도 바오로의 선교의 열정을 본받아 이방인들을 만나는 소명을 가진, 선교사 역할을 하고 있는 이주 사목 담당 신부로서 자급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라며, 초콜릿 만들기에 참여하게 됐지요.”

이야기가 이어지는 중간에도 최 신부와 봉사자들의 손이 점점 더 바빠진다. 초콜릿이 어느 정도 녹아들어가자, 직사각형의 대형 스테인리스 쟁반들이 하나씩 펼쳐진다. 쟁반의 크기는 일반 식당에서 음식들을 나를 때나 쓰이는 대형접시 크기다. 이날 만든 초콜릿만 10kg 정도, 큰 쟁반 약 5개 분량이다.

쟁반 위에 녹인 초콜릿을 넓적하게 따라 붓고, 직사각형 반듯한 모양을 잡아줄 틀을 끼운다. 이 쟁반을 냉장고에 넣고, 초콜릿을 다시 굳히면 초반 작업이 완성된다.

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장 최병조 신부가 쟁반 위에 굳힌 초콜릿을 자르고 있는 모습.
잘게 잘라낸 초콜릿이 낱개로 떨어지도록 다시 한 번 잘라주는 모습.
조각조각 나눠진 초콜릿.
코코아 분말을 입힌 초콜릿.
완성된 생초콜릿을 통에 담는 과정.
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스티커가 붙은 통에 담긴 생초콜릿.

■ 초콜릿, 그 달콤한 기쁨 나누기

초콜릿이 냉장고에서 머물러 있는 동안이 최 신부와 봉사자들이 잠시 여유를 찾는 시간이다. 잠깐 틈을 낸 최 신부가 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초콜릿 공방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2008년 수원시평생학습관을 통해 이주민들의 자립을 위한 교육으로 초콜릿 만들기를 시작했어요. 3년 정도 해보다가 ‘직접 우리 사업으로 진행하면 어떨까’하고 생각하게 됐지요. 수원 엠마우스 인근에 이주민을 위한 카페, ‘참 고마운 카페’가 있으니, 판로도 이미 마련돼 있고, 판매 수익금을 통해 이주민을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고 판단했어요.”

초콜릿 판매를 통해 마련되는 수익금은 반으로 나눠, 이주민들을 본국에 보내주거나, 문화 체험을 위한 제주도 등의 국내 여행비용 등을 충당한다. 순수하게 이주민들의 자립을 격려하는 정서 지원금으로 쓰이는 것. 이러한 지원은 이주민에게는 마치 반가운 성탄 선물과도 같다.

수익금의 나머지 반은 매달 일정금액을 통해 가난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참 고마운’ 운동의 기금으로 활용된다. 현재 이 기금을 통해 40여 가정이 도움을 받고 있다.

“이주민을 위해 초콜릿을 만듭니다. 보통 이주민들이 여기로 온 이유는 정말 먹고 사는 일이 절실하기 때문이지요.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만 하지만, 생계에만 매달리다 보면, 타향살이의 정서적 결핍과 불안이 따라오기 마련이에요. 이들을 위한 치유의 방안으로 정서적 지원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초콜릿을 통해 그 수익금으로, 이주민들을 본국에 보내주거나, 말하기 대회 등의 부상으로 국내 여행을 함께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지요. 이주민들이 이곳에서도 제 자리를 잡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어요. 또한 마련된 기금은 이주민을 위한 사목활동 중 긴급한 목돈 지원이 필요한 경우, 가뭄에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해요. 이처럼 교구 이주사목위원회는 단지 이주민들의 적응을 돕는데 그치지 않고, 자립과 자활은 물론, 정서지원에까지 노력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일정시간이 지나 초콜릿이 다시 냉장고 밖으로 나왔다. 최 신부가 칼을 빼 들고, 쟁반 위의 초콜릿을 바둑판 모양으로 잘라내기 시작했다. 조각조각 나눠진 초콜릿들은 또 다시 냉동실에서 굳혔다가 코코아 분말을 입혀준다.

당일 만든 초콜릿은 15일인 주일, 이웃의 수원대리구 영통영덕본당을 찾아가 이주민을 위한 후원 미사 봉헌과 함께 판매했다. 180여 개의 통에 나눠 담은 초콜릿이 모두 동이 났다. 없어서 못 팔 지경.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신 아기 예수님을 닮아 살고자, 낯선 이방인들을 우리 이웃으로 따뜻하게 보듬어주려는 마음이 모여 초콜릿처럼 달콤한 기쁨을 나눴다.

초콜릿은 대중적으로도 각종 기념일 마다 사랑을 전하는 의미를 담아 많이 선물하는 품목. 성탄을 기다리며, 최 신부와 봉사자들은 성탄 트리의 전나무 잎을 연상시키는 특별한 초콜릿을 따로 만들어 이주민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최 신부와 함께 초콜릿을 만든 봉사자 김경애씨는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주민들의 고단한 삶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며 “작은 도움이지만 내 손을 거쳐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