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우리금융 지주 이순우 회장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3-07-17 수정일 2013-07-17 발행일 2013-07-21 제 285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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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최선 다하는 ‘성실한 바보’
“참된 금융 통해 행복·기쁨 전해요”
이순우 회장은 어렵고 고통 받는 고객들에게 참된 금융을 통해 행복·기쁨을 전하는 것이 하느님 주신 소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조대형 기자 (michael@catimes.kr)
하느님 주신 소명에 힘쓰는 ‘미카엘’

금융기업가이자 신앙인으로서

고객 보호·행복 위한 금융 실천

“믿음 안에서 최선 다해야 참 신앙인”

경영철학 ‘고객제일·현장중심·정도영업’

“고객 가치를 사명으로 여겨야 성공

현장에서 얻은 충고는 훌륭한 교육

그룹 민영화 수행이 우선적 과제”

겸손한 자세·특유의 친화력이 강점

말단 은행원서 은행장·회장까지…

특이한 이력에 대학 강단 초청 많아

“손해 보더라도 성실함 갖춰야 리더”

지난 6월 14일 국내 최대 금융 그룹이라 할 수 있는 우리금융 지주의 이순우(미카엘·서울 신당동본당) 회장 취임 소식은 여러모로 국내 금융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우리금융 민영화’라는 묵직한 과제를 수행할 이 회장의 향후 행보에 대한 주목과 함께 무엇보다 ‘한국 금융 역사상 말단 행원에서 지주 회사 회장에 오른 첫 번째 사례’인 이 회장의 ‘입지전적’ 행적에 주목이 쏠렸다.

여타 금융계에서는 관료 출신 인사가 연달아 회장에 임명된 마당에서, 이처럼 37년을 오롯이 금융인으로서의 한 길을 걸어 최대 금융 그룹의 사령탑이 된 이순우 회장의 도전과 끈기의 인생철학은 젊은이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가톨릭신문이 그 삶과 신앙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이순우 회장은 회장직에 오른 뒤에도 ‘파격’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보이는 발걸음 마다 눈길을 모으고 있다. 행장시절 써왔던 관용 차량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집무실도 회장실이 아닌 기존 행장실을 사용하는 등 몸을 낮추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리’ 보다는 업무 효율성을 강조한 모습, 특히 ‘관료적 문화 타파’, ‘청명한 인사 풍토’를 언급한 소신이 금융계에 신선한 쇄신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다.

이 회장을 만난 장소는 서울 회현동 우리금융 본점 22층 은행장실 응접실이었다. 언급한 대로 23층 회장실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앞으로 고객과 직원을 위한 휴게실 등으로 개조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인터뷰에 앞서 이 회장이 건넨 명함에는 ‘믿음·소망·사랑’이라는 글자 속에 ‘이순우 미카엘’이라는 세례명이 선명했다. 그의 명함은 네 가지 종류라고 했다. ‘고객님을 섬기겠습니다’라는 글씨가 박힌 기존 명함 외에 장애인을 위한 점자 명함, 세례명을 기입한 가톨릭신자용 명함, 외국인을 위한 영어 명함 등이 그것이다. 상대방, 고객에 대한 배려가 철저하게 묻어났다.

대천사 미카엘

신앙적인 이야기가 무엇보다 궁금했다. 한 직원이 귀뜸하기를 이 회장은 ‘미카엘’이라는 세례명에 상당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제가 예비자교리 사수생 출신입니다. 1983년부터 예비자교리를 시작했는데, 교리 수업에 충실히 참석치 못해서 가는 본당마다 탈락을 했어요. 1998년 네 번째 예비자교리를 신청한 명동성당에서 영세를 했습니다.”

당시는 상업은행 홍보실장을 하던 시절, 정신없이 업무가 바쁜 와중에 1년이라는 예비자교리 기간은 야속하기만 했다. “이번에도 영세를 하지 못하면 정말 성당 다니는 것을 다시 생각해 봐야 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교리를 맡았던 담당 사제를 찾아가 업무 일정으로 인한 고충도 털어놓으며 사전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늦더라도 교리실을 찾아가 출석을 하는 성의를 보였다. 그런 노력 끝에 예비자 교리반 사수생을 면했다.

‘미카엘’이라는 세례명은 부인 김태경씨가 미카엘라였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자동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했다.

“대천사 미카엘의 역할과 세례명 의미를 그때 알았지요. 지금은 우리금융그룹 회장으로, 또 우리은행 은행장으로서 고객을 보호하고 고객의 행복을 위한 금융을 실천하는 것에서 ‘미카엘’ 세례명이 지닌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가톨릭을 접한 것은 부인의 영향이었다. “워낙 은행일로 바쁘다 보니 매 주일 새벽, 함께 미사를 가는 시간이 유일한 대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한 계기가 되었죠.”

이 회장은 요즘 들어 특히 회장직을 맡고 나서 “더욱 하느님께 의지하는 자신을 본다”고 했다. 출근길을 나서면서는 ‘고객들’, ‘직원들’ 모두 무사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자정 무렵이 다 되어 퇴근할 때는 ‘하느님의 보호 속에 하루가 지나간 것에 대한 감사 인사’가 저절로 올려 진다고 했다.

각별히 은행장으로, 회장으로서 지금 이 회장이 느끼는 참된 신앙이란 ‘하느님 주신 소명을 다하는 것’. 그 소명이란 “어렵고 고통받는 고객들에게 참된 금융을 통해 행복과 기쁨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CEO가 된 이 자리도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회장 취임 이후 ‘그런 섭리를 따라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은행장으로서 회장으로서 일을 잘하고 있는가’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믿음 안에서 맡겨진 업무를 최선 다해 열심히 하는 것이 신앙인으로 열심히 사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은행은 지난 1998년부터 가톨릭신문의 ‘가톨릭 문학상’을 지원하고 있고, 역시 1998년부터 가톨릭 종합전산관리시스템인 ‘양업시스템’ 구축 및 지원을 맡을 만큼 가톨릭교회와도 인연이 깊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종교 단체에 대한 지원은 우리은행이 ‘메세나’ ( 기업의 문화예술 분야 지원)기업의 이미지로서 사회공헌적 측면이다”고 말하고 “이는 세계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사회복지 체계를 갖고 있는 가톨릭교회와도 잘 어울리는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가톨릭 교회 와의 그런 만남이 참 귀합니다. 여러 의미있는 행사들이나 성직자 분들을 접하면서 오히려 배우는 점이 더 많고 직원들은 화합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소중한 관계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늘 찾고 있습니다”.

‘바보’가 되자

은행원들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확률’이라고 하는 ‘행장’을 거쳐 그룹의 ‘회장’ 자리에 오른 이순우 회장. 그 힘을 받쳐준 원동력은 어떤 것이었을까.

“한번도 조직에서 회장까지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매일 매일이 임기 끝이라 생각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한 걸음씩 걸어 왔을 뿐입니다. 그 오랜 시간을 거쳐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은 고객과 직원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그 과정에서 신앙은 큰 버팀목이었죠.”

그러면서 이 회장은 “한편 사람이 바보스럽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좀 어설퍼야 사람들이 내 가슴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었다. ‘특유의 친화력’이 강점으로 꼽히는 이순우 회장의 비결이 이것이었을까.

인터뷰 내내 호탕한 웃음 속에 본당 ‘형제님’ 같은 소탈하고 친근함을 주는 것이 이 회장 모습이었는데, 본래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그간의 은행원 세월 속에서 기억되는 한 선배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1977년 입행 시절, 처음 발령 받은 첫 업무가 대부(대출) 담당이었습니다. 수기로 모든 전표 서류를 작성하던 때였는데, 업무량이 많아 야근을 밥먹듯이 했죠. 항상 피곤한 얼굴로 고객을 대할 수 밖에 없었고 말수도 적었죠. 하루는 선배가 퇴근길에 소주 한잔 사주면서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호통을 쳤어요. ‘그렇게 찡그리고 일 할거면 당장 그만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후부터 이 회장은 매일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했고, 덕분에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좋은 은행원이 되려면 우선 마음을 열고 누구와도 많은 대화를 나누고 웃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은 듯 하다”고 이 회장은 덧붙였다.

고·현·정

경영 철학에 대해 물었다. ‘고객제일’, ‘현장중심’, ‘정도영업’ 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 고객 영업으로 수익을 내는 조직으로서 진정으로 고객 요구를 생각하고 고객 가치를 사명으로 여기는 경영만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회장은 ‘현장’을 강조했다. “경영의 모든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면서 그들 애환을 듣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법을 제시받기도 하거든요. 현장에서 얻은 충고는 그 어떤 값비싼 강의보다도 훌륭한 교육이라고 봅니다.”

6월 14일 취임사 등에서도 밝혔지만 이순우 회장이 현재 우선적인 무게를 두는 것은 ‘민영화’이다.

“그룹 민영화와 산적한 현안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우리은행이 ‘제대로 된 금융의 역할’을 하는 은행이 되게끔 노력하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금융’ 이란 ‘기업과 개인 그리고 모든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금융’이란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리고 이 회장은 “먼 훗날 후배들이 술자리에서 ‘지금 이순우 행장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떠올려 주고 전화를 걸어와 줄 수 있는 선배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리더가 되고 싶으면 하인이 돼라

이순우 회장은 은행장이 된 이후부터 대학 강단의 초청을 많이 받고 있다. 행원에서 시작, 은행장 회장에 오른 이력 속에서 젊은이들에게 인생 ‘멘토’로서의 역할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현명한 사람이 바보스럽게 사는게 가장 어렵다. 리더가 되고 싶으면 하인이 돼라”는 말을 한다고 했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바보같이 성실하게 행동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게 중요하다는 면에서다.

“짧게 보면 요령을 부리는 이들이 이득을 볼 수 있지만 길게 본다면 조금 손해 보더라도 성실한 사람만이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이 회장은 “또한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은행 여자농구단 예를 든 이 회장은 “만년 꼴찌였던 우리은행 여자농구단이 7년 만에 정규리그, 한국챔프전, 아시아 W챔피언스 초대 챔피언까지 올해 최강 팀에 오른 이유는 바로 실패에 좌절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매일 새벽 5시30분쯤 출근해 운동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는 이순우 회장. 오전 7시30분에 업무를 시작해서 퇴근 후에도 매일 2~3건 식사 약속이 잡혀 있어 저녁을 여러 차례 나눠 먹어야 하고, 밤마다 서너군데 조문을 다닐 만큼 분초를 쪼개며 일상을 보내는 그는 “어떤 면에서는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저녁 여러 번 먹는 사람이 어디 그리 많은 가요. 하하. 일초 일초를 아껴가며 늘 이 순간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요.”

이 회장은 인터뷰를 마무리 하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고객을 만날 때나 기업 관계자를 만날 때 항상 90도로 인사 한다’는 소문대로 취재진에게도 허리를 낮췄다.

‘좌우명’으로 소개했던, 중국 서예가 정판교의 ‘난득호도’(難得糊塗)가 떠올려 졌다. 뒤돌아 서는 길, 이 회장이 들려준 그 뜻풀이가 새삼 뇌리를 스쳤다.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려우며,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보이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뜻입니다. 총명함을 내려 놓고 한걸음 물러서면 마음이 편해지고 마음을 비우고 있으면 후에 복으로 보답이 온다는 의미입니다.”

■ 이순우 회장은…

▲1950년. 경주 출생

▲1977년.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1977년. 한국상업은행 입행

▲1998년. 한국상업은행 홍보실장

▲1999년. 한빛은행 인사부장

▲2004년 4월. 우리은행 경영지원본부장

▲2004년 12월. 개인고객본부장

▲2008년. 수석부행장

▲2011년. 우리은행장

▲2013년. 우리금융그룹 회장 겸 우리은행장

<수상경력>

▲2000년 5월. 국무총리 표창

▲2003년 12월. 재경부 장관 표창

▲2011년 12월. 은탑산업훈장

이순우 회장이 지난 5월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서울·경기지역 우리은행 여성직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 우리은행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