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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세계최초·유일 시청각 장애인 사제, 키릴 악셀로드 신부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사진 조대형 기자
입력일 2013-06-25 수정일 2013-06-25 발행일 2013-06-30 제 2852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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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고통 통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축복”
시청각 장애는 인생의 훌륭한 스승
또 다른 방식의 하느님 사랑 체험
랍비 꿈꾸다 부르심 체험하고 개종
늘 예수님 함께하는 사제의 삶 ‘감사’
장애인 고유 ‘능력’ 알아내는 것 중요
그들 이해 돕는 역할 계속 하고 싶어
수화로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키릴 악셀로드 신부. 불굴의 인간 의지를 보여주는 그의 삶과 여정은 장애뿐 아니라 어려움에 고통 받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다.
수화 통역자 시몬 찬(왼쪽)씨가 키릴 신부와 촉각 수화를 하고 있는 모습.
청각 장애를 지닌 채 정통 유다교 집안에서 자라나 랍비를 꿈꾸었다가 ‘장애인은 랍비가 될 수 없다’는 율법으로 랍비의 꿈을 접고 특별한 계기를 통해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사제가 됐다. 그 과정에서 가족과 친지, 민족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 있는 숱한 심적 어려움을 겪는다. 사제가 된 후에는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열정적인 사목을 펼치던 중 시력까지 잃었다. 중복 장애의 고난이 엄습해 왔지만 그 고통을 넘어서서 새롭게 시청각 중복 장애인들을 위한 사목을 맡았다.

불굴의 인간 의지를 보여주는 그 삶과 여정은 이제 모든 장애인을 비롯해서 어려움으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는 상징이 되고 있다. ‘21세기의 헬렌 켈러’라 불리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시청각 장애인 사제’, 키릴 악셀로드 신부(Cyril Axelrod·구속주회)가 그 주인공이다. 자서전 국내 출판기념 저자 초청강연회를 위해 한국을 찾은 키릴 악셀로드 신부를 만나보았다.

인터뷰 일정이 잡힌 것은 방한 일정의 둘째 날이었던 22일 저녁이었다. 당일 시청각장애인 10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여주 라파엘의 집에서 만남과 강연회를 가진 뒤 숙소인 서울 사당동 구속주회 한국지구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계속되는 일정에 피곤함을 느낄 수도 있을 터인데, 키릴 신부는 통역을 통해 인사를 건네자 환한 웃음 속에 손을 맞잡아 주며 환영의 마음을 표시해 주었다.

키릴 신부와의 인터뷰는 촉각 수화로 진행됐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는 상대의 수화를 촉각을 통해 인지하는데, 기자의 질문을 최연숙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가 중국 광동어로 전달하면 자원봉사자로 홍콩에서 동행한 수화 통역자 시몬 찬(홍콩 카리타스 어르신복지센터 감독)씨가 촉각 수화를 통해 키릴 신부에게 전하는 식이었다. 그 답변은 다시 찬 씨와 최 수녀를 거쳐 전달됐다. 찬 씨는 10여 년 전부터 키릴 신부를 위한 수화통역자 역할을 하고 있다. 키릴 신부를 돕기 위해 미국 시애틀까지 가서 2주 과정의 연수 받기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한국과 한국교회에 관심을 가졌으나 이제야 첫 방문이 됐다”는 키릴 신부는 “한국 신자들의 너무나 큰 환대가 놀랍고 신비로웠다”고 방한 소감을 밝혔다. “한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고, 사제·수도자들이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이 특별하게 다가왔다”는 말도 덧붙였다.

21세기의 헬렌 켈러

주변에서 ‘21세기의 헬렌 켈러’라고 부른다고 하자 키릴 신부는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한 의견”이라고 했다. “그만큼 이 시대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크고,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 생각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했다.

방한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 자서전에 대해 물었다. 키릴 신부는 “거의 10년에 걸친 작업”임을 전하며 “전기 작가에게 맡겨보라는 조언들도 있었으나 내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고 싶고 경험한 바를 최대한 잘 표현하기 위해서, 어렵더라도 직접 쓰고 싶었다”고 했다. 영어로 쓰인 원본은 지난 2006년 출판됐으며 현재 중국어, 슬로바키아어로 번역됐다.

저술 과정은 인터뷰 통역 과정에서 연상되듯 여러 차례의 단계를 거쳐야 했다. 키릴 신부의 안내 통역자들이 ‘촉각 수화’(tactile sign language)와 ‘지화’(finnger spelling)를 비롯, 컴퓨터와 이메일에 쓰는 점자를 사용하며 작업을 했다.

“그러한 절차들에서 오는 번거로움 보다는 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 놓고 바라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각 어려움의 순간 순간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며 그 당시 겪어야 했던 어떤 감정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키릴 신부는 “자신이 삶 속에서 겪었던 여러 문제들을 모두에게 열고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또 “책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이 지닌 ‘장애’를 ‘문제’로 보지 않고 어떤 사람이든 모두가 하나쯤은 지닐 수 있는 그저 작은 어려움으로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장애는 은총·축복

인터뷰 중에도 그는 여러 차례 ‘장애’라는 것을 ‘은총’, ‘축복’이라 표현했다.

“볼 수 없다는 것,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나의 장애를 통해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고통과 서로 다른 여러 어려움들을 격려하고, 또 그 고통을 통해 우리를 이끌어 준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는 바로 이러한 점이 우리가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소통하며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자서전을 통해 볼 때 그도 인간적인 어려움의 시기를 거쳤다. 특히 2000년경 완전히 시력을 상실했던 당시를 키릴 신부는 ‘크나큰 상실의 시기’로 표현하고 있다. “완전히 길을 잃은 느낌이었지만, 그래서 ‘사제직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실감했고 그 여정은 오로지 신앙의 힘으로만 걸어야 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시청각 장애’는 인생의 좋은 스승이 됐다고 토로한다.

당시 ‘잠긴 문 앞에 열쇠도 없이 서 있는 느낌’ 이었던 키릴 신부는 끊임없이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소리 속에서 인생의 슬프고 행복했던 순간들에 침잠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고 그것은 내적 치유의 원천이 됐다고 했다.

“제게 새롭게 닥친 시각 장애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비록 아름다운 정원을 산책하며 형형색색의 꽃들을 보지는 못하더라고 그 꽃의 향기를 통해 어루만져 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사제’로 산다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 가톨릭 신부로 산다는 것은 ‘완성된 삶’이라고 했다. 어렸을 적 성장 과정에서부터 겪었던 모든 과정이 사제로 살아가기 위한 밑받침 같다는 것이다.

“랍비가 되길 원했을 때 마음처럼 되지 못했지만, 그것은 바로 가톨릭 신앙을 알 수 있게 해준 새로운 문이 되었습니다. 장애를 계기로 가톨릭계 농아학교에서 교육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미래로 통하는 통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제가 되기에 앞서, 가톨릭 신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오늘날의 소명을 주시기 위한 ‘부르심’ 이었을 것”이라 했다. 랍비가 되고자 했을 만큼 정통 유다교 신앙을 고수했던 그는 도서관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우연히 접하며 가톨릭교회에 차츰 관심을 가졌고, 이후 어두운 방에서 섬광 같은 불빛을 체험하면서 가톨릭 신앙에 대한 이끌림을 확신했다. 키릴 신부는 이에 대해 “사제가 돼라는 불러주심으로 깨닫는다”고 말했다.

덧붙여 사제로 살아가면서 감사한 점을 “사제의 삶이기에 늘 예수님께서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계속적인 소명

키릴 신부가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들이 궁금했다. “계속해서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더 많은 나라에서 시청각 장애인들을 만나고, 또 그들의 이해를 돕는 권익을 향상 시키는 단체가 생길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시청각 장애인들에 대해 느낀 점은 어떤 것일까. “한국은 생활·소득수준이 높은 나라이지만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나 정책 상황이 충분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교회 안에서도 장애인사목에 헌신하는 사제·수녀들이 계신 것을 파악했지만, 충분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실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키릴 신부는 “장애인사목 활성화를 위해서는 교회가 우선적으로 장애인들이 가장 절실하게 요청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사목에 앞서 장애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그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와 함께 장애인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입장을 뚜렷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필요한지 잘 알아내서 교회에 요청하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키릴 신부는 보다 염두에 둬야 할 것을, 장애인들 모두 각자 고유의 ‘능력’을 인식하는 자세라고 했다. 방한 일정 동안 강연회를 통해 강조했던 ‘이 세상에 할 일이 있다, 나도!’라는 바로 그 메시지 였다.

헬렌 켈러가 쓴 수필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을 인용, “만약 3일 동안 듣고 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지금 하고 있는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일들을 더 열심히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한계’가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장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시키고 싶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한국교회와 신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인사를 청했다.

“어떤 일이 우리의 인생에 닥치더라도, 그것은 어떤 것을 배울 수 있고 가치를 느낄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의 진실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언어로 출간된 키릴 신부의 자서전.
키릴 신부는 더 많은 나라에서 시청각 장애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권익을 향상 시키는 단체가 생길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사진 조대형 기자 (michael@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