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창간86주년 특집 설문조사]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100인에게 묻다 - 조사 결과 종합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3-03-26 수정일 2013-03-26 발행일 2013-03-31 제 2839호 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세속주의, 교회 정체성 위협 … 기본 진리 수호 우선”
세속주의·상대주의 대처
으뜸 필수과제로 제시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로 복음적 청빈 의미 재확인
“공의회 정신 구현에서 새 복음화 핵심 찾아야”
가톨릭신문은 창간 86주년을 맞아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100인에게 묻다’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는 최근 제266대 교황의 새로운 행보에 발맞춰, ‘새로운 복음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과정으로서도 의미를 지닌다. 조사 대상자는 전국 각 가톨릭대학 교수진을 비롯해 신학과 철학, 종교학, 교회법 등 교회 유관 학문을 전공한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 학자 및 연구자들(이하 신학자로 통칭)이다. 대상은 총 100명이며, 교황의 사목적 과제는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처’, ‘빈곤과 세계화의 문제’ 등 총 15개 문항으로 나눠 제시됐다.

특히 이번 조사는 교회학문 연구는 물론 다양한 사목 현장에서 활동 중인 신학자들의 의견을 총체적으로 수렴하기 위해, 각자 항목 중 2가지씩을 선택하고 그 배경과 대안 등에 대한 의견을 간략하게 기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국교회 신학자들은 현대교회는 교회 본질인 ‘증거하는 삶’을 구현하기 위해 기본 진리를 충실히 지켜나가는 것에 보다 큰 힘을 실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또 신학자들은 비유럽권 교황이 선출됐다는 것도 교회 내 여러 가지 변화와 쇄신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의 하나라고 밝히고, 현 교황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세상 밖으로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교회 안에서부터 쇄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러한 맥락에서 제시됐다.

구체적으로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100인에게 묻다’ 설문조사에서는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처’(18.5%)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현’(13.5%)이 새 교황이 앞장서 실현해야할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시됐다. ‘빈곤과 세계화의 문제’(12%), ‘교황청 쇄신’(10%)도 각각 실현에 박차를 가해야할 필수 과제로 꼽혔다. 뒤이어 낙태와 피임, 동성애 등을 포함하는 ‘생명·가정 윤리 문제’(8%),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7%), ‘생태 문제에 대한 통합적 접근’(6%), 사제독신제 등을 포함한 ‘직무 사제직 문제’(6%) 등이 주요 과제로 순위를 올렸다.

반면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에 이어 ‘종교간 대화와 그리스도교 일치’를 주요 과제로 제시한 신학자 수는 5%를 밑돌았다. ‘주교단의 단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교회 안에서의 여성 역할’을 주요 과제로 제시한 이는 각각 2명(1%)에 머물렀다.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는 응답자가 없었다.

‘기타’ 의견으로는, 각각의 사목적 과제들을 ‘새로운 복음화’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실천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 등이 관심을 모은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내적 쇄신, 특히 사제들의 내적 쇄신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지적됐다.

지난 해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열린 세계주교시노드 한국 대표로 참가한 이병호 주교(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전주교구장)는 “‘새로운 복음화’는 온 세계교회가 직면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별도의 다른 주제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절실한 문제”라며 “그런데 정작 무엇이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는지에 관한 반성은 없이 말머리만 ‘새로운 복음화’를 옮겨 쓰고 있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처

이번 조사에서 신학자들은 교회 뿐 아니라 세계 전반이 처한 위기 상황은 현세지향적인 삶에 무게를 두는 가치관의 혼돈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세속주의와 도덕적 상대주의 등은 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말이다.

구요비 신부(서울 포이동본당 주임)는 “새 교황님은 예수회의 영성과 신학사상을 간직하시기에 이 시대의 사조들에 대한 대처에서 새롭게 응답하실 수 있다고 보여진다”며 “선출 이후 특별히 복음적 청빈의 정신과 가난한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임을 확인시켜 주신다”고 전했다.

▨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실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실현에 관해 신학자들은, 공의회가 폐막한 지도 40년이 지났지만 ‘세상을 향한 교회, 세상을 위한 교회의 모습’은 여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 이 공의회 정신을 올바로 이어갈 때, 교회는 가장 본질적이고 원천적인 자세로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총장)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은 ‘새로운 복음화’가 지향하는 핵심을 담고 있다”며 “공의회 정신을 살아가는 대안과 방향이 새로운 열의와 방법, 표현으로 드러나는 ‘새로운 복음화’”라고 덧붙였다. 전원 신부(서울 제기동본당 주임)도 “문헌만 난무하는 현대교회는 생명이 없다”며 “공의회 문헌에 나타난 실천적 과제들을 하나씩 지역교회가 실현하도록 역량을 모아야할 것”이라고 전했다.

▨ 빈곤과 세계화의 문제

빈곤과 세계화의 악순환은 현대사회가 풀어야할 대표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 항목을 시급한 사목적 과제로 선택한 신학자들은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교황을 맞이한 것은 제3세계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새로운 기회라고 전하고, 불의한 국제 경제 구조를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최현민 수녀(씨튼연구원)는 “특히 이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의 문제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며 “새 교황께서는 각 지역교회들이 사랑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방안과 함께 교회가 세상과 연대를 해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 주시길 기대한다”고 응답했다.

▨ 교황청 쇄신

이번 설문에서는 교황청이 교회 쇄신의 표상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새 교황 선출과 즉위에 앞서 전 세계의 시선은 교황청 비리 문제 등에 더욱 집중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이근덕 신부(수원 화서동본당 주임)는 “교황청 비리 문제가 일반 언론에 공공연하게 보도되면서 성직자들의 도덕성 실추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선용 신부(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부소장)는 “교황청의 쇄신은 교회 밖의 시각에서 보면 가톨릭교회 전체 쇄신의 상징으로 이해된다”며 “가톨릭교회는 더 이상 ‘박물관’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호흡하는 유기체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쇄신의 상징은 보다 젊고 넓고, 생명력 넘치는 교회의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생명·가정 윤리 문제

설문에 응답한 신학자들은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의 대표적인 폐해로 생명·가정 윤리의 파괴를 꼽는데 뜻을 같이 했다. 특히 이용훈 주교(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수원교구장)는 “생명과 가정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은 교회와 세상을 지키는 본질적인 요소이자, 사제·수도자 성소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며 “보다 적극적인 대처 방안을 찾아 전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정우 신부(가톨릭대 교수)도 “다만 현대인들이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논리와 표현, 신앙적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고, 자연법과 양심에 따르는 삶이 충만한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올바로 알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타 응답들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의 중요성과 평신도들의 자율적인 역량을 지원하는 일도 주요 과제로 지적됐다. 또한 김항섭 교수(한신대 종교학과)는 “장기적으로 볼 때 교회 활력과 건전성은 평신도들이 얼마나 뚜렷한 자기의식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있다”며 “교회 역동성을 회복하려면 일반신자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욕구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회나 장치를 마련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생태 문제에 대한 통합적인 접근’은 인류 미래와 직결하는 중요한 과제로 손꼽혔다. 동방교회와 같이 독신과 기혼사제 제도를 병행하는 방식, 수녀회 관구장 및 총장이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여성사제직 도입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 필요성도 조심스럽게 제안됐다. 아울러, 평신도들이 교회 운영 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종신부제직 등에 대한 철저한 신학적 연구와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안됐다.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와 관련해 유흥식 주교(주교회의 선교사목주교위원회 위원·대전교구장)는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리스도인들의 구체적인 삶과 활동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며 “예수님께서는 최고의 선교 방법으로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여라’라고 명확하게 제시하셨다”고 강조했다.

지난 1월 25일 워싱턴에서 열린 ‘생명을 위한 행진’에서 한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낙태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모습.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