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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성지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사람들] (3) 그리스도교인 · 끝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3-03-20 수정일 2013-03-20 발행일 2013-03-24 제 2838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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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신약 배경되는 ‘성지 중의 성지’ 
팔레스타인 출신·유다인 가톨릭신자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앙 생활 이어가 
이스라엘. 지리적으로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교차로에 자리한, 중동의 한 작은 나라에 불과하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에게 ‘이스라엘’은 구약과 신약의 배경이면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장소이고 공생활의 발자취가 곳곳에 배어있는 ‘마음 속 신앙의 고향’, ‘성지 중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이 성지순례로 이스라엘을 찾고, 또 가톨릭을 비롯해서 아르메니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등 그리스도교 안의 다양한 종파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 성지의 가톨릭 신자들

예루살렘의 번화가 ‘벤 야후다’ 거리에서 가까운 하라브 쿡 거리 10번지. 이스라엘 성지관구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성 시메온과 안나에게 봉헌한 수도원 건물이 있는 곳이다. 한때 이탈리아 영사관으로 쓰이기도 했던 이곳에서 유다 가톨릭 신자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히브리어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매월 1·3째주 토요일 11시에는 이스라엘 한인 가톨릭 공동체가 미사를 봉헌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공동체 내 유다 가톨릭 신자들 수는 약 50여 명 정도. 매주 토요일 오후 6시30분에 봉헌되는 히브리어 미사에는 어린 아이부터 연장자들까지 연령을 초월한 가톨릭 신자들이 모인다.

기자가 미사에 참례한 2월 10일 주일에도 각 연령층의 신자들이 작은 성당을 가득 메운 채 기타 반주에 맞춰 히브리어 성가를 부르며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개종이 쉽지 않은 유다교인들 안에서 가톨릭 유다인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지 한인가톨릭공동체의 한 관계자는 “아마도 신자들 대부분은 디아스포라 시기에 다른 나라에 살면서 그리스도를 알게 된 이들로 추측된다”고 했다.

이 공동체는 예루살렘 라틴총대교구 소속 ‘성 야고보 연합’이 지도하고 있었다. 1955년 히브리어 가톨릭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 설립된 성 야고보 연합은 현재 예루살렘을 비롯해서 텔아비브 - 자파, 하이파, 브에르쉐바, 티베리아스와 나자렛 등 이스라엘 내 6개 도시에서 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성 야고보가 누구인가? 전승에 따를 때 예루살렘의 첫 주교로 알려진 성 야고보는 서기 50년 경 열린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참석했고, 유다인들의 존경을 받아 ‘정의의 야고보’라고 불리었지만 서기 62년 경 신앙을 증거하다가 유다인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성 야고보를 연합회의 주보 성인으로 정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다.

히브리어 가톨릭 공동체 책임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네우하우스 신부(예수회)는 자신들의 목적을 “이스라엘에서 ‘소수’로 살아가고 있는 유다인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을 돕고 보편교회와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성지 이스라엘에서 평화·화해·일치를 위한 증거자의 몫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전체 인구의 대다수가 유다인인 사회에서 가톨릭 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새롭지만 쉽지 않은 경험들”이라고 했다.

나자렛, 베들레헴, 카나 등지에서는 팔레스타인 출신 가톨릭 신자들의 분포도 제법 있는 편이다. 이스라엘 관광청 자료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지역 최대 공동체는 베들레헴과 라말라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에도 1만여 명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동예루살렘과 나자렛 지역에도 각각 5000여 명과 4500여 명의 신자들이 분포돼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지역의 신자들은 지역에 따라 무슬림들의 세력 강화 속에서 원활한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도 맞고 있다. 베들레헴의 경우 1948년에 전 지역민의 80%를 차지하던 그리스도교인들이 최근에는 20%까지 떨어진 처지다. 무슬림들의 박해 때문에 고향을 등지는 그리스도교인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인 가톨릭 공동체 역시 30여 명의 ‘소수’ 공동체이지만, 지속적으로 한국어로 말씀과 전례를 이어 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988년 경 모임이 만들어 졌다고 소개한 김 클라라 회장은 “그야말로 소공동체 이지만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한인 가톨릭 신자들에게 성지의 의미와 신앙 생활의 맥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면서 “한인 신자들이 좀 더 성서 안에서 많은 체험으로 성숙해져 갈 수 있는 공동체이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좁은 시장 골목길의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십자가의 길)에서 신자들이 주님 수난을 묵상하고 있다.
예수님무덤성당 내의 비아 돌로로사(십자가의 길) 12처.
예수님무덤성당 내 ‘염’ 자리. 예수님 시신을 염했던 장소로 기념되는 곳이다.
예루살렘 겟세마니 동산의 대성당 외관.

■ 성지와 작은형제회

예루살렘 십자가
‘예루살렘 십자가’. 이스라엘 성지를 순례할 때 순례 장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십자가가 있다. 흰색 바탕에 붉은색의 다섯 개 십자가가 조합된 모양인 십자가인데, ‘예루살렘 십자가’로도 알려진 이스라엘 성지 십자가다. 이 십자가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성지보호관구의 공식 문양이다.

가톨릭 교회 역사 안에서 성지 이스라엘을 이야기할 때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를 빼놓을 수 없다.

1342년 교황 클레멘스 6세는 ‘그라시아 아지무스’(Gratias Agimus)와 ‘누페르 카리시메’(Nuper Carissimae)를 칙서로 발표하면서 작은형제회에 ‘성지’(The Holy Land) 보호를 공식적으로 명했다. 이후 현재까지 8세기에 이르는 동안 작은형제회원들은 교회 이름으로 성지에 봉사하고 있다. 이들은 이 사명을 ‘성지수호사명’(Custody of the Holy Land)으로 부른다.

성지에서 작은형제회가 봉사한 것은 수도회 창설 시기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209년 창설과 함께 곧바로 해외 선교를 시작했던 수도회는 1217년 총회 결정으로 수도회를 관구 단위로 나누었는데 이때 성지관구가 탄생됐다.

지금은 30여 개 국에서 290여 명의 회원들이 봉사하고 있는데 예루살렘 예수님무덤성당을 비롯해 베들레헴, 나자렛 등 이스라엘의 주요 성지 및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사이프러스, 이집트 지역의 74개 성지를 관할한다.

지난 1992년 11월 21일 클레멘스 6세 교황의 칙서 반포 650주년을 맞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작은형제회 헤르만 샬뤽 총 봉사자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성지가 작은형제회에 맡겨진 역사적 사건을 상기시키는 한편 성청에 의해 주어진 사명을 계속적으로 따르고 그 사명에 항구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성지들을 ‘보호하는 자들’의 임무가 새롭게 인식되어진 것이다.

지난 2006년부터 성지관구에 파견돼 활동 중인 김상원 신부는 “성지 안에서의 역사는 곧 수도회의 역사와 같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던 땅과 우리의 구원이 성취된 장소인 이곳 이스라엘은 수도회가 충실한 선교사들이자 가톨릭 교회의 교계를 옹호하는 자들로서 계속해서 일을 해 나가게 하는 신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대사전을 참고할 때 이스라엘 내 가톨릭 신자 인구는 총 인구의 1.9%에 해당하는 11만 7천 명 정도로 추산된다. 교계 제도상으로는 라틴 가톨릭 총 주교좌와 그리스 정교회와 멜키트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총 주교대리를 합쳐 2개의 총 주교좌가 존재하고, 2개의 대교구, 동방대목구 5개, 그리고 80여 개의 본당이 존재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작은형제회 회원들이 행렬하는 모습.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