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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16년간 몸담아온‘양업고등학교’를 떠난 전임 교장 윤병훈 신부

이우현 기자
입력일 2013-01-29 수정일 2013-01-29 발행일 2013-02-03 제 2831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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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된 인성교육으로 자발적 학습 분위기 형성”
산악등반·봉사활동·상담 프로그램 등 전개
특성화 교과로 기쁨을 얻는 학습 동력 얻어
생명을 짓고, 생명을 기르며 아이들을 가르치던 한 젊은 교사는 생명이 보여주는 성장과 수확의 기쁨에 행복했다. 어린 생명의 성장 과정에서 오는 희열은 자연스레 생명의 가치를 일깨웠다. 그리고 그 젊은 교사는 생명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이 좋았다.

지난 1월 28일부로 16년간 몸담았던 ‘양업고등학교’를 떠난 전임 교장 윤병훈 신부(청주교구 산남동본당 주임)가 사제가 되기 전 이야기다. 당시 윤 신부는 일반학교 농업 교사로 재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윤 신부는 재배와 사육을 통해 생명이 가져다주는 소박한 기쁨을 인간에 대한 교육의 범주 안에서 더욱 확산시켜 나가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 꿈은 곧 성소로 이어졌다.

“농업 교사 시절,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지켜보며 생명을 가꾸는 법을 배워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재배나 사육을 넘어 인간에 대한 교육을 바탕으로 더욱 심오한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성소를 꿈꾸게 됐어요.”

윤 신부가 한국교회 첫 대안학교인 ‘양업고등학교’를 지금에 이르기까지 성장시킨 것도 사제이기에 앞서, 생명을 키워내는 농부의 마음 위에 학생들과 가까이에서 생활해온 오랜 교직 경험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 교사 그리고 사제

1983년 사제품을 받은 윤 신부는 청주교구 교현동본당 보좌신부로 사목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충북 음성 매괴고등학교 윤리교사로 일하게 됐다. 사회에서의 교직 생활이 사제가 되고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후 윤 신부는 음성본당, 교현동본당 등 본당 주임을 맡으며 윤리교사의 직분을 계속했다.

오랜 시간 교직 생활과 함께 경력이 쌓여가면서 관리자로 발돋움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 윤 신부는 “일반학교 교육현실에서 사제가 학교의 관리자 교장으로서 진학률과 입시 경쟁에 매달리는 모습은 사제의 직무와 어긋난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윤 신부는 교감 자격연수를 선택했다.

1995년, 교감 자격연수 기간 동안 윤 신부는 학교 밖을 방황하는 7~10만여 명의 학생들을 떠올렸다.

“당시 학교 안에서 바르게 자라야할 우리 학생들이 학교 밖을 선택한 것은 학교 교육의 문제임을 환기시키는 여론이 뜨거웠습니다. 이를 계기로 학교 밖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지요. 연수를 마치자마자 당시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님을 찾아뵀고 제 의지를 말씀드리게 됐습니다.”

윤 신부는 바로 교육청 교육감을 만났다. 학교 밖 학생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서로 같았다. 윤 신부는 학교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98년 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양업고등학교’ 설립이 결정됐다.
윤병훈 신부와 학생들.

■ 자유 그리고 방종

학교를 세우고 학교 밖 학생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교육 방침에 대한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지시, 명령 등 외적 통제가 기준이 되는 학교를 만들자는 쪽과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고 내적 통제에 맡기자는 쪽이 논란이 됐지요. 결국 외적 통제를 견디지 못하고 학교 밖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어요. 스스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싶었습니다.”

자유가 주어졌지만 자유를 적절히 활용할 줄 모르는 이들에게 자유는 방종에 가까웠다. 무단결석, 음주, 흡연, 불량 이성교재 등, 자유의 개념은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 정도로 해석된 지 오래였다.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자유의 교육적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내적 통제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기다림이 필요했어요.”

윤 신부와 ‘양업고등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를 세운 뒤 7~8년간은 기다림이 계속됐다. 어느새 학생들도 스스로 바뀌기 시작했다. 심리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윌리엄 글라서의 선택이론과 현실요법을 적용 학생들의 부정적인 행동을 꾸짖기보다 먼저 그 이유를 찾고 도움을 주기 위한 방안을 생각했다.

“예를 들어, 학교나 가정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에게 ‘넌 조그만 놈이 담배냐!’며 윽박지르기보다 담배를 왜 피우게 됐는지를 묻고, 담배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도와주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인간적으로 무시를 당해왔다고 느끼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관심이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을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 인성, 지성, 영성교육

윤병훈 신부는 학생들의 부정적인 행동을 꾸짖기보다 먼저 그 이유를 찾고 도움을 주기 위한 방안을 생각했다.
초등학교 수준의 학습과정에 있는 아이들에게 고등학교의 지식을 가르친다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교실을 어렵고, 따분하고, 견디기 힘든 곳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한 지식교육은 교실붕괴를 낳고, 교실 붕괴는 학교 붕괴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이 우려를 낳고 있다.

이와 같은 교육현실 속에서 ‘양업고등학교’는 산악등반, 봉사활동, 현장 체험학습, 청소년 상담 프로그램, 흙을 가꾸는 노작, 가족관계 내 가족성 회복, 종교 활동 등 인성교육을 위한 7가지 특성화 교과를 편성했다.

“부정적인 생각과 사고에 머물러 있는 학생들을 긍정적인 쪽으로 옮겨가도록 이끌어주는데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비유하자면 인성교육은 나무의 기초를 만들고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토대가 되는 작업입니다.”

각종 핑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을 밀고, 당기며 지리산 등반을 다녀온 뒤, 정상을 오르는 쾌감을 맛본 학생들이 먼저 수학책을 펴놓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미진한 진도는 교사들의 도움으로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다. 인성교육이 지식교육을 몰고 온 것.

“지금까지 재미만을 추구하던 학생들이 고통 속에서 기쁨을 얻는 학습 동력을 얻게 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특성화 교과의 힘입니다. 특성화 교과와 지식교육의 비율이 점차 10대 0에서부터 2대 8까지 변화하는 동안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경험들을 쌓아왔어요. 이러한 경험들이 내적통제와 이를 바탕으로 한 자발성, 자기주도성을 드러나게 했습니다. 흡연과 관련해서도 스스로 결정하고 흡연 문화를 근절하는 등 결실이 따랐지요.”

현장 체험학습과 봉사활동을 연계 해외 체험활동을 떠나기도 한다.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또한 ‘양업고등학교’는 학부모, 교사의 성숙을 위한 교육방침 마련과 가톨릭적 대안교육에 대한 연구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양업고등학교’의 경쟁력을 높이는 매개체가 됐다. 설립 초기, 지역 주민들의 반대와 재정난에 부딪쳤던 ‘양업고등학교’가 입소문을 타고 ‘명문 고등학교’로 탈바꿈 했다. 입학률은 6대1, 8대1에 이르고, 국내외 이름난 대학교 진학하는 학생들도 많다. ‘양업고등학교’의 교육방침을 배우려는 교육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윤 신부는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의 근본이 되는 영성교육에도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 속으로 영성을 체득한 이에게는 지식교육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성교육을 토대로 졸업생 중 신학생이 배출되기도 했다.

“성경 속 예수님은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 스승임을 깨닫게 합니다. 신앙의 의미를 쉽게 파악하기는 어려울지라도, 내면화되는 단계가 되면 그 에너지가 발휘됩니다. 이것이 영성입니다. 영성을 통해 우리 각자가 부활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 ‘양업고등학교’를 떠나며

윤 신부는 ‘양업고등학교’에서 보낸 16년간의 세월을 돌아보며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생명은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문제아라는 인식은 우리 어른들이 직무유기를 하고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여기까지 끌어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 윤 신부는 교구 산남동본당에서 주임 사제로 사목생활을 펼치게 된다. 윤 신부는 “학생들과의 경험을 통해 본당 사목 중에도 고정관념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얻게 됐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