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쉼터] 산티아고길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2-08-21 수정일 2012-08-21 발행일 2012-08-26 제 2809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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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걸은 길 그 곁에는 사랑하는 주님이 계셨다
■ 그들이 산티아고로 간 까닭은?

“1000년이 넘는 시간과 1000km 가까이 되는 길,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사람들이 이 길을 떠나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5일간의 긴 거리를 터벅터벅 걸으며 웅장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다다랐을 때 나는 내 자신에게 이 길을 떠난 해답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주준하·가브리엘)

스페인 산티아고에 있는 성 야고보의 무덤으로 가는 길, 로마 중세 때부터 예루살렘과 로마와 나란히 그리스도교의 3대 성지순례의 길 중 하나로 꼽혔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지난 8월 14일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년부(담당 우창원 신부) 산티아고 성지순례단 31명은 예로부터 야고보의 무덤을 참배하기 위해 산티아고를 향해 걸었던 ‘순례자’의 발걸음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떠났다. 2009년 2010년에 이은 세 번째 순례 길이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이전처럼의 종교적 이유뿐만 아니라 여행이나 스포츠를 겸해 걷는 이들로 인해 이 길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많은 이들이 각자 걷는 이유는 다를지라도, 걷는 화두는 하나다. ‘왜 걷는가’. 발에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돋고 발톱이 빠져 나가거나 뼈에 금이 가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사람들은 나름의 영혼의 숙제를 위해 이곳을 찾는다. 지금도 해마다 600만여 명의 사람들이 산티아고로 몰려들고 있다. 순례길에 나선 청년들에게도 같은 질문이 던져진다. 왜 우리는 이 길을 걷는 것일까.

“5일 동안 일어나서 아침 먹고 걷고, 점심 먹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850km의 길을 다 걷지는 못하고 100km쯤 되는 거리를 걷는 동안 지난겨울 영세를 받고 난 후 어느 정도 시들해진 내 신앙심이 순례를 통해 한 뼘 더 자라났고 좀 더 강해졌습니다!”(조윤비·비아)

여러 루트 중에서도 가장 뿌리 깊은 코스는 프랑스 론세스발예스에서 시작하는 800km정도의 순례길이다. 최소한 한 달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는 길. 10박11일이라는 한정된 일정 속에서 청년들은 113km 길을 도보 순례하는 것으로 그 순례 길의 여정을 공감해야 했다.

순례길을 걷고 있는 청년들.
전체 11일 순례 중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7일째까지의 스케줄은 매일 20~30km의 걷는 시간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도착에 이어서 ‘사리아’ ‘포르토마린’ ‘팔라스 데 레이’ ‘아르주아’ ‘몬테 데고죠’ ‘페드로자’를 거치는 동안 청년들은 걷고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며 ‘함께하심’ ‘비움’ ‘공동체’에 대한 특별함을 얻었다.

순례도중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청년들.
“정말로 힘들게 걸어온 길. 그 곁에는 사랑하게 된 이들과 사랑하는 주님이 계셨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 그동안 참아온 눈물이 조용히 내 맘에 내렸다. 곳곳마다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건축물들은 신과 인간의 공존을 알려주었고 그 공존은 드높은 하늘보다 높은 곳에 계신 주님의 현존을 마음 속 깊이 느끼게 해주었다.”(이지용·데보라)

산길, 시골길, 초원길, 진흙길, 고속도로와 평행한 작은 오솔길, 차도옆 보도 블록길, 자갈길까지…. 다양한 길을 걸으며 산티아고로 가는 방향으로 이끄는 노란 조개껍질 표시를 따르는 시간은 인생이라는 큰 도로 안에서 하느님을 향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신앙인의 여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산티아고 방향으로 이끄는 조개껍질 모양의 길표시.
3조로 나뉘어 조별로 걷고 저녁 숙소에서 만나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나눔을 하며 하느님께 하루 순례의 고단함을 맡기고 찬양하는 가운데, 아픈 다리를 서로 만져주고 물집난 발을 서로 보담아 주는 가운데 청년들은 ‘하나’가 됐고 ‘함께’를 이루었다. 그리고 100여km의 도보 순례를 마치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한 순간, 이들은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서로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감사하는지를 깨달으면서.

“진짜 다 왔다. 눈물이 나질 않는다. 전체 800km 중 1/8 밖에 걷질 않았는데 무엇을 얻어간다는 건 어쩌면 큰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대신에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한다.”(강다슬·카타리나)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걸을 수 있고, 이렇게 기도할 수 있게 해주셔서. 이런 사람들과 이런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셔서. Buen Camino(부엔 카미노: 좋은 여행이 되기를)!”(권현미·르클레시아)

*인용글은 2009년 산티아고 순례단 체험기 ‘우리들의 흔적’에서, 사진은 2009 2010년 산티아고 순례 화보에서 발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한 청년들이 사진 촬영을 하며 완주를 기념하고 있는 모습.

◆ 인터뷰 / 우창원 신부

“청년들 신앙성장·일치 위해 마련”

우창원 신부
“2009년 처음 산티아고 성지순례단을 시작한 것은 청년들을 위한 영성 프로그램 마련이라는 취지였습니다. 청년들의 영성을 일깨우고, 또 교회 내에서 열심히 청년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사기를 진작시켜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그런 의미도 있었습니다. 마침 산티아고 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상황이기도 해서 산티아고 도보 순례를 통해 청년들의 신앙을 성장시키고 또 함께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2009년 청년들에게 산티아고를 순례하는 기회를 처음으로 기획하고 그들과 함께 순례길에 나섰던 우창원 신부는 2010년 두 번째 순례에 이어 이번 산티아고 순례에도 어김없이 청년들과 함께했다. “무엇보다 순례에 나섰던 청년들이 함께 걷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하느님 체험을 하는 모습이 보람된 것 같다”는 우 신부.

“걸으면서 노란 화살표가 전해주는 의미에 대해 눈길을 둡니다. 그 화살표가 전해주는 것은 한 곳을 향해 걸어가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그분을 찾아 나섰던 옛 신앙인들의 길인 거죠. 그렇게 단순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 가다 보면 하느님 앞에서도 그 마음처럼 단순해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순례 프로그램도 단순하다. 하루종일 걷고 미사를 봉헌하고 나눔을 하는 일정이 전부다. “청년들이 그러한 단순함 속에 자신을 비워내는 경험 속에 혼자 걸어가는 길이지만, 옆에 누군가 함께 동행 하는 이가 있음을 체험하면서 하느님과 공동체에 대한 마음 속 여운을 길게 가지는 듯 하다”고 우신부는 들려줬다.

“매일 매일 걷는 과정에서 다리에 무리가 가서 힘들어 하는 청년들도 생기는 등 어려움이 없지 않지만, 그들이 서로 서로 아픈 부분을 챙겨주는 모습 등을 목격하면서 또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해 하느님 앞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지켜보며 순례를 통해 그들에게 소중한 신앙 체험을 줄 수 있어 다행이다 싶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는 산티아고 성당 입성 전의 100km 이상을 걸었을 경우 완주 증명서를 받게 되는데, 청년부 순례단 역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앞서 100여 km를 걸었기에 이 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 2009년 2010년, 그리고 올해 순례를 거치는 동안 약 80명 정도의 청년들이 완주 증명서를 수여 받았다. 앞으로도 청년부의 산티아고 순례는 세계청년대회가 열리는 해를 피해 격년 행사 형식으로 준비될 예정이다.

“왜 걸었냐고 물었을때 그것을 종교적 이유라고 청년들이 답한다면, 그러한 종교적 이유를 잘 찾고 삶 안에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도 그런 길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걸으면서 하느님을 찾고, 그 안에서 인생과 신앙의 의미를 연관지어 찾아갈 수 있는….”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