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데스크칼럼] 어떻게 살 것인가 / 마승열 편집국장

마승열 편집국장
입력일 2012-05-29 수정일 2012-05-29 발행일 2012-06-03 제 279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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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아마 이 질문은 죽을 때까지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그냥 사는 대로 살다가 가는 거지’라며 조금은 무책임하게 말하거나, ‘모든 것은 하늘에 달렸다’란 운명론적 생각을 펼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의 삶은 잠시이고, 진정한 삶은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기 위한 것이니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한다.

인간으로 살면서 아무 걱정이 없는 시기는 유아기에 불과하다. 그 이후는 학업과 취업, 경제적인 어려움 등으로 고민하며 치열한 삶을 산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식 걱정, 돈 걱정을 한다. 이것이 보통 서민의 삶이다.

동물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눈을 감지 않는다. 철저히 오감(五感)에 의존해서다. 동물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명상이나 깊은 생각을 위해 눈을 감는 시간이 있을 뿐, 그들의 삶은 오감과 이성에 의존한다. 이들의 의사결정은 선천적인 능력에 의해 수집된 데이터로만 구성된다. 벽이 보이면 피해 가고, 돈이 없으면 걱정하고, 고통 가운데 슬퍼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기뻐하는….

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의지적으로 눈을 감는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성의 활동을 돕는 차원이 아니라 겸손함으로 기도한다. 아버지 하느님께 의탁해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묵상한다. 눈을 감고 기도하며 슬픈 현실 가운데 기쁨을 얻고, 고통 가운데 희망을 본다. 신앙인들은 오감과 이성에 의한 정보에만 의존하지 않고 하느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빵으로만 살아가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기에 의지적으로 눈감는 시간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어떤 눈앞의 목표나 앞날에 대한 걱정거리를 안고 산다. 시험에 붙어야 하고, 취직을 해야 하고, 집을 장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지 쉴 새 없이 계산을 한다. 하지만 시험 합격이나 취직 그 자체가 한평생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무엇 때문에 합격하려 하고 무엇을 위해 취직하려고 하는가? 많은 이들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좀처럼 묻지 않는다. 눈앞에 닥친 현실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바둑 두는 사람이 중앙의 대마를 잃는 줄도 모르고 귀퉁이 몇 집 확보했다고 희희낙락한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삶의 궁극적인 의미와 전략 없이 당장의 전술에만 집착하면 작은 것을 얻는 대신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현실 속에서 복잡하게 살다보면 정작 소중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다. 어쩌면 생각할 것은 하지 않고, 생각해 봐야 아무 도움은커녕 업만 되는 어리석은 일에 매달리며 살아가기도 한다. 사람이 짐승이나 미물과 다른 점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그 가능성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참모습을 깨우치지 못하고 허상에 매달려 오십년, 백년, 천년을 살았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남기신 말씀이 생각난다. “주님,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 대한 저의 사랑도 재지 않겠습니다. 그저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것이오니 그대로 당신께 맡깁니다.”

진심어린 이 어른의 말씀에 고개가 숙여진다. 참 그리스도인을 꿈꾸는 우리는 추기경님의 이 말씀을 깊이 새겨야할 것이다. 주님만을 믿고 따르며 그분의 말씀을 통해 삶의 기쁨을 체험하는 삶. 이러한 사랑과 기쁨을 소외된 이웃들과 나누고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참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짐일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세상 그 어떤 고통과 절망도 이겨낼 수 있도록 이끄시는 든든한 아버지가 계신다.

마승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