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백년해로의 노부부 / 박영호 기자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2-05-22 수정일 2012-05-22 발행일 2012-05-27 제 279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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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연으로 평생을 함께하는 일이 오늘날에는 참 귀한 듯하다. 그렇지 못한 것을 전에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어찌 된 것이 “어떻게 그렇게 사냐?”는 농이 그저 농담으로만 들리지는 않으니 어찌 된 일인지….

서울 한 본당에서 주임신부의 부모님께서 혼인하신지 70주년을 맞아 조촐한 잔치를 가졌다. 어르신들을 업어 모시고, 천수를 누리시도록 절을 하는 동안, 아직 식사기도 전인 잡채와 불고기로 자꾸 눈길이 가긴 했지만, 서로 대면대면해보여도, 곁에 둔 것만으로 온갖 복을 다 누리시는 듯한 두 분 어르신의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다.

사람이 제 명으로도 백년을 살기 어려운데, 어찌 두 분이서 백년에 가깝게 함께 계셨는지 참으로 사람의 힘이 아니고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 가능할 일이다. 전장에서 목숨이 경계를 오가는 병사가 아내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에 나온 ‘백년해로(百年偕老)’라는 말은 사람이 누리는 가장 큰 복의 하나를 이른 것이리라.

비록 오늘날 많은 이들이 잘못 생각하듯, 그저 한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지지고 볶으며, 때로는 갈라서고 등지고 싶은 생각도 들겠지만 미운 정 고운 정 모두 모아 평생의 돌탑을 쌓는 일이 결코 지루하고 못난 일은 아닐 것이다. 그 깊고 은근한 사랑의 맛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 시시각각 움직이는 사랑의 시대라고 할지라도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만만한 품격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하고 모든 것이 상대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 해도, 아무리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게 마련이다. 사랑을 포함해, 모든 것은 변한다고 하는 주장에 백 번 양보해도, 그러면 모든 것이 변한다고 하는 그 주장은 변하지 않지 않는가? 사랑은 물론 끊임없이 변한다. 하지만 겉모습이, 표현이 변한다고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리라.

조금씩 변하셨지만, 70년을 그렇게 서로를 곁에 두고 살아오신 두 분 어르신의 해로의 삶이 우리에게 본이 될 것이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