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분갈이 / 이인옥

이인옥(체칠리아·수원가톨릭 대학교 성경연구실장)
입력일 2012-05-22 수정일 2012-05-22 발행일 2012-05-27 제 279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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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옥
실로 몇 년 만에 분갈이해준 화분에서 꽃들이 활짝 피어나고 있다. 천사의 나팔, 군자란, 부겐빌레아, 모두 부모님께서 아끼던 것들이라 더 흐뭇하다. 화초 가꾸기에 유난하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병환 중이던 어머니의 손을 거쳐 내게 온 이후로 버려지다시피 한 화분들. 두 분의 극진한 사랑에 보답하여 꽃 피고 열매 맺어 철 따라 기쁨을 선사했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겨우 몇 개 남은 것마저 시들시들했다. 화초에도 미안했고, 하늘에서 내려다볼 분들께도 정말 죄송했다.

생명은 무한정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모님도 그렇고 화초도 그렇다. 그러기에 그 척박한 환경을 견뎌준 나무들이 고마웠다. 흙을 골라주고 가지를 쳐주고 큰 화분으로 옮겨 물을 주다가 문득 나 자신도 새롭게 만났다. 화분 하나 돌보지 못할 만큼 팍팍했던 시간을 돌아본 것이다. 딱딱한 흙에 숨통을 터주는 일은 나에게 숨을 터주는 일이었고, 거름과 물을 주는 일은 나에게도 위로와 축복을 부어 주는 일이 됐다. 역경을 이겨낸 내가 새삼 대견하였고, 지켜주신 주님께도 감사가 절로 나왔다.

이렇듯 생명을 보살피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어루만지는 일이다. 생명을 돌보면 생명으로 보답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를 되찾고 나의 뿌리인 부모님을 추억하면서 모든 생명의 뿌리인 주님까지 만나게 한 뜻깊은 분갈이를 한 것이다.

산과 들, 숲과 뜰에 꽃이 만개한 아름다운 계절이다. 돌 틈에 핀 작은 꽃이 들려주는 가녀린 속삭임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시들해진 생명을 충만하게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요즘 천혜의 축복을 누리고 있다. 양옆에 길게 늘어선 은행나무 길을 올라가면 꽃이 만발한 캠퍼스 뒤로 건달산 신록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에서 매일 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종일 생명의 말씀으로 내 마음 쓰다듬어지고 있으니, 내 생명 이곳에서 활짝 피어나는 중인가보다.

이인옥(체칠리아·수원가톨릭 대학교 성경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