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제15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2-03-20 수정일 2012-03-20 발행일 2012-03-25 제 2788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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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부문 수상자 - 노순자 소설가

“영성소설에 도전 … 창작에 매진 다짐”

노순자 소설가
“생명과 함께 과분한 재능을 주신 하느님 앞에서 조금이나마 덜 부끄럽기 위해 깜냥껏 노력했을 뿐인데, 이런 큰 상을 받게 되어 더욱 떨리는 마음입니다.”

제15회 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 노순자(젬마·66) 소설가는 “최근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소설가로서 충분히 사용하지 못했던 태도에 대해 깊이 성찰한 바 있다”며 수상 소감의 운을 뗐다. 특히 노 작가는 “이러한 성찰은 ‘봉헌’이란 내가 가진 것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은 것을 돌려드리는 것임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했다”며 선물 받은 재능을 오롯이 봉헌할 수 있도록 창작에 더욱 매진할 뜻을 밝혔다.

노 작가는 소설가 김동리를 비롯해 시인 서정주·박목월 등 쟁쟁한 문인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덕분에 배운 몫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지만, 굳이 책을 출간하는 데에는 별 욕심이 없었다. 그래서 10여 편의 장편과 80여 편의 중·단편을 내놓았지만 모두 책으로 엮지도 않았다.

반면 한 편 한 편 작품마다 드러낸 시각은 여느 작가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날카롭고 단호하다. 무엇보다 전인적인 시각과 비판적인 통찰력으로 인간 삶을 바라보고, 그것을 설득력있게 구체화하는 역량이 남다른 작가로 평가받는다. 작품마다 드러낸 주제는 근본적으로 ‘사람다움’에 가닿는다.

“문학은 결국 사람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사람다운 삶을 추구해야 하는 몫을 안고 있지요.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을 때에는 온전했던 사람이 추악한 이기심 등으로 망가질 때가 많지만, 더불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아름다운 본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노 작가는 “제 작품들이 극한의 폭력과 부조리 안에서도 이를 회복시켜 주는 인간 본성을 찾아 알리는 역할에 충실하길 바란다”고 강조한다. 특히 그는 물질이 점점 더 막강하게 정신과 예술, 심지어 종교까지 마구 휘두르는 데 대해 깊은 쓰라림을 느끼는 작가다. 이러한 작가의식에 힘입어 소설집 「기억의 향기」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현실에 희생되거나 파괴되면서도 치열하게 대결하고, 희생적인 용기와 순수한 인간애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가톨릭 혹은 신앙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신앙을 투영한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는 작품도 이 소설집에 담아냈다.

아울러 노 작가는 앞으로는 이른바 ‘영성 소설’을 창작하는데 매진할 바람도 안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문학은 음악이나 운동 등과는 달리 많은 시간을 들여 흡수해야 하고, 즉각적인 효과를 보이지도 않지만 사람의 마음결을 곱게 한다”며 “한국교회사는 전율할 정도로 감동이 있는 삶의 이야기로, 이를 통해 마음 안에 쌓이는 아름다움이 짙어지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아름다움도 본연 그대로 보고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노순자 소설가는…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 1974년 여성동아 장편소설문학상을 수상한 후, 이듬해 「현대문학」지를 통해 단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에 발을 내디뎠다.

창작집으로는 「몽유병동」, 「산울음」, 「진혼미사」 등을, 장편소설집으로는 「타인의 목소리」, 「누이여 천국에서 만나자」, 「백록담 연가」, 「초록빛 아침」, 「마음의 물결」 등을 펴냈으며, 한국소설문학상과 펜문학상, 월간문학동리상, 손소희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 수상작 「기억의 향기」

「기억의 향기」(2010년 작/계간문예)는 총 11편의 중단편을 하나로 엮은 소설집이다. 이번 소설집은 자연주의적인 색채를 띠는 사실주의적 작품이면서도 깊은 서정성을 드러내는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다양한 소재로 길어올린 작품들이지만 각 작품마다 보편적인 객관성을 더해, 작가적 역량과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을 만큼 묵직한 책이기도 하다.

작가가 그려낸 각 주인공들의 모습,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경험들은 실제 우리 사회사와 맥을 같이 한다. 현대화 물결에 의해 사라지는 현실과 사라지고 있는 아름다운 가치들을 재조명한 ‘소설가의 집’, 한국인의 정체성 문제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시킨 ‘봉숭아와 바나나’ 등의 작품을 이 한 권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단편 ‘야훼이레’는 작가가 일생을 두고 탐색해 온 부조리한 존재와 사회 현상 등을 바로잡거나 개선할 수 있는 실마리를 가톨릭 신앙에서 찾고 있는 작품이다.

■ 시 부문 수상자 - 이은봉 시인

"진실·바른 삶 추구가 시인의 참태도"

이은봉 시인
수많은 문예지들이 간행되고 수많은 시들이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시는 왜 끝까지 읽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좋은 시와 마주할 수 있을까.”, “무엇이 좋은 시를 만드는가.”

가톨릭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이은봉(아우구스티노·58) 시인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반문한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큼 절실한 것이 ‘좋은 시’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은 “‘좋은 시’란 우선 내 속에서 불거져 나온 시”라며 “내가 감동할 때 남도 감동하고, 내가 재미있을 때 남도 재미있고, 내가 신선하게 느낄 때 남도 신선하게 느낀다”고 답한다. 덧붙여 ‘좋은 시’는 쉬운 시, 처음 읽었을 때 서정적 충격이 있는 시, 읽을수록 의미가 재해석되고 새로운 감동을 주는 시, 즉 양파처럼 껍질을 까고 또 까도 새로움이 묻어나는 시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시는 단순하지만 그 어떤 예술보다 더욱 응축된 본질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시인은 이른바 ‘민중적 서정시인’으로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평론가와 작가, 교수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에서도 늘 사회의 부조리에 대응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치열한 의식 세계를 펼쳐왔다. 특히 이 시인은 “리얼리티란 단순히 현실 혹은 진리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마음이 담긴, 또는 삶의 의미를 드러내는 진실의 다른 표현”이라며 시의 진실성을 강조해왔다. 따라서 시인이란 그 누구보다 진실되고 바른 삶을 치열하게 갈구해야 하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이 시인 스스로는 1980년대 민주화 시대를 보내며,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더욱 큰 목소리와 몸짓을 표현한 바 있다. 당시 시인은 ‘가톨릭’만이 한국 사회를 바로잡고 이끌어 갈 대안이라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두지 않았다. 그 열정을 한결같이 이어온 시인은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참 교육과 생태영성 실현 등에도 힘을 싣고 있다.

시인으로서 열정적인 삶을 꾸려올 수 있는 원동력으로는 ‘순수함’을 꼽았다. 정직하고, 욕심 없고, 꾸밈 없고 공정한, 이러한 순수함이 바로 열정을 키워낼 수 있다는 말이다.

“가장 폭넓고 순수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시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삶 안에 녹여내야 하는 ‘사랑’입니다.”

아울러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공부, 즉 책과 성경을 읽거나 깊이 사유하는 궁리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러면서도 시는 각자의 생활 안에서 길어 올려지고, 더불어 성스러운 세계를 지향하고 있을 때 쓸 수 있다”고 밝혔다.

“많은 이들이 ‘시의 위기’를 운운하지만 현재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 이른바 개인 영혼의 공간을 가장 풍성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시입니다. 시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서정’의 대표적인 형태로 늘 우리 곁에 함께하며 진실을 나누고 있습니다.”

▲ 이은봉 시인은…

1983년 평론가로서 먼저 문단에 나서, 이듬해 「창작과 비평」 신작 시집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현재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겸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계간 「시와 시」 주간 등으로 활동 중이다.

「좋은 세상」, 「절망은 어깨동무를 하고」, 「무엇이 너를 키우니」,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등을 비롯해 평론집 「진실의 시학」, 「시와 생태적 상상력」 등을 펴낸 바 있다. 한성기 문학상, 유심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 수상작 「첫눈 아침」

「첫눈 아침」(2010년 작/푸른사상)은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으로, ‘생활’과 ‘자연’과 ‘시’를 배경으로 탄생시킨 시 72편을 싣고 있다. 여기서의 생활은 하루하루 겪는 삶이고, 자연은 그날그날 마주치는 초목이다. 그리고 시는 하루하루 읽는 기존의 문학을 가리킨다. 시인은 이 나날의 생활에서 결핍된 작은 깨달음 즉 삶의 진실을 각 작품에 담으려 노력했다. 덕분에 구체적인 일상의 풍경 안에서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진실은 삶과 자연의 부름과 말 건넴에 응답하는 가운데 깨닫고 발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표제시 ‘첫눈 아침’은 오랜 희망이나 꿈 등 진정한 바람은 본래 좀 늦게 이루어지기 마련이라는 유의미한 진실을 드러낸다.

특히 이번 시집에 담긴 시들 또한 시인이 끊임없이 의심하고 거부하면서도 어루만지고 또 다독여온 자신의 삶과, 이 시대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품고 있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