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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는 진행 중… 한국교회와 새로운 복음화] (9) 사목헌장 해설 (상)

정희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2-03-14 수정일 2012-03-14 발행일 2012-03-18 제 2787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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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 실현 위해 노력
교회-세상, 종속관계 아닌 상호적 대화의 관계
복음에 비추어 세상 변화시키는 교회 의무 선포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Gaudium et Spes)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들 가운데 가장 긴 문헌이며 공의회가 폐막하는 날(1965년 12월 7일) 반포된 문헌이다. 사목헌장은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Lumen Gentium)과 더불어 교회의 자기 이해를 드러내는 신학적 문헌이며 동시에 세상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참여를 촉구하는 사목적 문헌이다. 교회헌장이 교회의 본질(nature)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담고 있다면, 사목헌장은 교회의 사명(mission)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포함하고 있다. 사목헌장은 교회가 세상 속에 있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장엄하게 선포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들 가운데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헌이 ‘교회헌장’이라면, 사목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헌은 사목헌장이다.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담겨져 있다는 면에서 사목헌장은 교회 안팎으로부터 가장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교회 안과 밖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문헌이다. 사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들은 공의회 이후 교회의 모습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문헌들 가운데서 세상 속에 있는 교회의 모습과 신앙인의 사회적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헌이 사목헌장이다.

I. 사목헌장의 특성과 의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대표하는 문헌

교회 역사 안에서 공의회들은 주로 신학적 문제를 다루어 왔다. 물론 과거의 공의회들 또한 신자들의 일상생활과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었지만, 공의회의 전반적 핵심 과제는 신학적 이단들에 대한 정통교리의 확립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역시 이러한 보편공의회 전통 속에 서 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전의 공의회들과는 달리, 단순히 신학적 이단과 오류에 대한 교회의 반대와 척결이라는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입장표명에 머물기보다는 복음의 빛에 비추어 시대의 도전과 요구들에 대한 교회 입장과 태도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방식으로 천명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일종의 ‘사목공의회(pastoral council)’라 불리기도 한다. 공의회의 이러한 정신을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내 주는 문헌이 바로 사목헌장이다. 사목헌장은 교회에 대한 교의적 원칙을 제시하는 교회헌장의 신학적 흐름의 맥락을 따라가면서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 대한 사목적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전의 교회 문헌들이 종교적 영역 안에서의 교회의 삶에 대해 다루었다면, 사목헌장은 종교라는 좁은 범주를 넘어 세상 속에 있는 교회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이전 교회의 삶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일종의 새로운 스타일의 교회의 삶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화적 방식을 택한 사회교리

사목헌장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개최한 요한 23세 교황의 사회 회칙 「어머니요 스승」(Mater et Magistra)과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목헌장은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에서부터 「지상의 평화」에 이르기까지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사회 회칙들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공의회 이전의 사회 회칙들은 스콜라철학의 자연법 이론에 근거를 두는 경향이 있었다. 이 스콜라철학의 자연법 사상에 따르면, 인간 이성은 사회적 삶 속에 있는 하느님 계획을 발견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이성적 인간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해야할 의무를 지닌다. 하지만 인간 이성은 언제나 신앙의 도움을 받아서 완전해 질 수 있다. 따라서 사회의 흐름은 언제나 교회의 가르침과 신앙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의회 이전의 사회 회칙들 입장에 따르면, 교회와 사회의 관계가 상호적 대화의 관계라기보다는 지도와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일종의 종속적 관계였다.

하지만 사목헌장은 교회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교회의 사회적 사명에 대한 근거를 자연법 윤리에서 찾기보다는 먼저 성경적, 그리스도론적, 종말론적, 그리고 교회론적 바탕에서 찾으려 한다. 2부로 나누어져 있는 사목헌장 문헌의 전반부는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그리스도교 전통 전체에 기인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물론 사목헌장 역시 교회와 사회의 관계에 있어서 변형주의적(transformationist) 입장을 취한다. 교회는 복음에 비추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세상의 정치와 경제와 문화의 영역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교회 역시 세상 속에서 배울 것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인류가 이미 만들었고 또 아직도 끊임없이 만들고 있는 각양각색의 제도들 가운데서 발견되는 참된 것, 좋은 것, 옳은 것은 무엇이나 다 큰 존경심을 가지고 공의회가 주목하는 바”(사목헌장 42항)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앙과 이성’ ‘교회와 사회’가 서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상호 호혜적 관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기 때문에, 사목헌장은 공의회 이전의 사회 회칙들과는 달리 그 언어의 표현 방식이 대화적(dialogical)이다. 이렇게 사목헌장의 언어가 대화적인 이유는 세상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교회의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교회의 염원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목헌장은 교회의 자기 이해를 드러내는 신학적 문헌이며 동시에 세상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참여를 촉구하는 사목적 문헌이다. 사목헌장은 교회가 복음의 빛에 비추어 세상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세상의 일들에 참여하는 것이 교회 본연의 책임과 의무임을 밝히고 있다.

헌장으로 선포된 사회교리

교회의 사회교리 문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헌이 사목헌장이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 안에서 그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공의회 이전까지만 해도 그러한 생각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사실, 교회와 신앙인들 안에 이러한 생각이 자리 잡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사목헌장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16개의 문헌을 산출했다. 이 16개의 문헌들은 그 문헌들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헌장’(constitution) ‘교령’(decree) ‘선언’(declaration)이라는 표제로 분류되고 있다. 그 문헌들 가운데 ‘헌장’이라는 표제가 붙은 문헌들은 핵심적 교의 문제들을 다루는 문헌으로 가장 장엄하고 공식적인 형태로 선포되는 문헌이다. ‘교령’이라는 표제가 붙은 문헌은 특별한 문제들에 대해 헌장에 구체화된 교의적 원칙들을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헌장’은 교의적 원칙을 담고 있는, 교회 안에서 일종의 헌법적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공의회 과정 중에 사목헌장을 헌장이라는 표제로 부르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교리적 원칙보다는 세상에 대한 교회의 이해와 세상의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답을 추구하는 문헌이 헌장이라는 표제로 선포된 것은 분명 하나의 사건이었다. 또한 교리적 원칙들을 담고 있는 공의회의 다른 세 개 헌장들이 교리적 문제에 대한 권위적 스타일로 작성된 것에 비해, 권위를 강조하기보다는 자유와 겸허와 존경의 정신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과 대화하려는 태도를 담고 있는 사목헌장이 헌장이라는 표제로 선포되었다는 것은 성령의 절묘한 인도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가 복음의 빛에 비추어 세상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세상의 일들에 참여하는 것은 교회 본연의 책임과 의무라는 사실을, 또 교회의 사회참여가 바로 교리임을 사목헌장은 장엄한 형식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극적인 전환으로서의 사목헌장

사목헌장이 잉태되던 시기는 서구 국가들이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새롭게 눈뜨기 시작한 시기였다. 또한 유엔의 결성을 통해 세계평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경제 개발을 통해 번영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높은 시기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동서간의 냉전이 고조되고 핵무기 확산을 통해 위기감이 고조되는 시기였다. 그 시기는 일종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변화의 시기였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는 근대적 변화들-사회주의의 등장과 다원주의로 대표되는 근대 지적운동들-에 대해 여전히 배타적 입장을 취해오고 있었다. 사회주의가 파생시키는 무신론적 경향과 새로운 지적운동들이 성직자들과 신학교수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교회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이브 꽁가르(Yves Congar), 앙리 드 루박(Henri de Lubac), 칼 라너(Karl Rahner), 에드워드 스킬레벡스(Edward Schillebeeckx)로 대표되는 하느님 나라와 사회적 삶의 연관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교회 안의 새로운 신학운동들에 대해서도 교회 당국은 여전히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한 23세 교황의 공의회 개최 선언 이후 교회 안에 미묘한 변화의 싹이 태동되기 시작했다. 요한 23세 교황은 교회가 현대에 적응(aggiornamento)하기를 원했고 또 교회가 세계와 대화하기를 원했다. 이태리와 스페인 출신 교부들은 대부분 변화를 거부했지만, 수에넨스 추기경 등 유럽의 다른 교부들과 경제적 불평등 문제와 사회적 정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가던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교부들은 교회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취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세상에 대항해서 전투하는 전사(戰士)와 요새(要塞)로서의 교회 이미지가 세상과 역사에 연대하는 순례자로서의 교회 이미지로 변화되는 모습이 이루어졌다. 교회헌장은 구원의 보편적 성사로서의 교회와, 세상의 순례자로서 교회라는 종말론적 본성을 지닌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드러냈다. 교회헌장의 교회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세상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참여를 선언하는 사목헌장으로 이어졌다.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사목헌장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보는, 교회헌장 속에서 표현된 교회론의 극적인 신학적 변화를 반영하는 산물이었다. 결국 사목헌장은 ‘사회적 변화’ ‘교회 리더십의 변화’ ‘신학적 변화’가 만들어낸 총체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정희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정희완 신부
정희완 신부는 안동교구 소속으로 1993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미국 버클리 예수회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정희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