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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탈원자력발전 견학기] 탈원자력발전, 독일에게 묻다 Ⅱ

이우현 기자
입력일 2012-03-06 수정일 2012-03-06 발행일 2012-03-11 제 2786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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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풍력발전 등 재생가능에너지가 대안
▧ 첫인상 - 일상에서 얻은 배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와 천주교창조보전연대, 탈핵에너지교수모임 등 탈원자력에 뜻을 같이하는 20여 명의 독일 탈원자력 견학단 일행은 2월 14일 저녁, 독일 베를린 공항 도착과 함께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했다.

일행을 맞은 독일의 밤거리는 고요했다. 숙소로 가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베를린 시내에는 최소한의 불빛만을 남겨둔 채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일찍 상점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새벽녘까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춤을 추는 우리 밤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첫인상부터 독일 국민들의 일상 속 에너지 절약 정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음날 이른 아침, 미처 시차에 적응할 새도 없이 지하철을 타고 틸플라츠역 인근의 베를린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소로 향했다.

지하철에 승차하려던 일행은 문이 열리지 않자 당황하며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일행의 안내를 맡은 문기덕(브란덴부르크대 환경계획연구소 전임강사)·염광희(베를린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소 연구원)씨가 문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그제야 문이 스르르 열렸다. 독일의 지하철은 승객이 승하차 시에 직접 눌러 문을 여닫도록 돼 있다. 안전은 물론 에너지 낭비를 줄이려는 공공의 노력이 숨어 있다.

▧ 탈원자력을 바라보는 독일 공공의 시선

틸플라츠역에서 5분여 거리의 베를린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소는 독일 원자력 정책과 환경 정책 이론의 권위자 루츠 메츠(Lutz Metz), 마틴 예니케(Martin Yanike) 교수가 함께 설립(1986년)한 독일 환경 정책 대표 연구소이다.

일행은 이곳에서 설립자 메츠 교수를 만나 ‘독일의 원자력 정책’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메츠 교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의 통계 자료를 근거로 원자력발전은 1970~1980년대 잠시 붐이 일었지만 1990년대 이후 하향세라고 설명하고 “2009년 국제에너지기구(IEA) 에너지원별 전력공급 통계를 보면 전 세계 에너지 시스템 안에서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원자력공학은 이미 사양 산업으로 공부하려는 이들도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메츠 교수는 또 “원자력 산업의 기술적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다”며 “2016~2025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약 20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수명을 다해 문을 닫아야 하지만 지금 원자력 산업 추세로 살펴보면 기술적으로 1년에 6기 정도 밖에 지을 수 없기에 문을 닫을 발전소를 대체할 새 발전소는 60기 정도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메츠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력에서 원자력발전의 비중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국가로 기술적인 문제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전력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 또한 지적했다.

아울러 경제적인 면에서도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따른 건설비용이 경제 발전에 따라 점점 더 올라가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핵폐기물 처리에 있다. 메츠 교수는 독일의 아쎄 지역을 예로 들어 “아쎄 지역은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리를 위한 실험 장소”라며 “이 지역 지반에 물이 침투하면서 여기에 묻혀있는 핵폐기물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로 결정했으나 비용(40억 유로 예상)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가능한지 의문이다”라고 전했다. 핵폐기물 매립에 적절한 장소는 찾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독일 내 고준위 폐기물은 처리에 관해서는 결정된 바조차 없는데다 아쎄는 연구 목적으로 만든 곳으로 묻혀 있는 핵폐기물은 일부에 불과한 양이라는 사실이 일행을 놀라게 했다.

이산화탄소(CO2) 발생량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츠 교수는 “원자력 산업계가 원자력발전은 CO2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이라고 말하지만 발전에 필요한 방사능 원료인 우라늄을 농축하고 폐쇄하는 과정에서 어쨌든 에너지가 투입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에 따른 CO2 발생도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며 탈원자력 사회로의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메츠 교수 특강 전경.

▧ 원자력보다 재생에너지

메츠 교수에 따르면 탈원자력 이후 에너지 최적화, 효율화를 위해서는 태양광(열), 풍력발전 등의 재생가능에너지가 대안이다.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재생가능에너지 산업 발전에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일각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가 다른 에너지원보다 비싸기 때문에 사용하는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에 메츠 교수는 처음 어느 정도까지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나 에너지 수출입 등 거시적인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재생에너지의 확대가 엄청나게 큰 이득이 된다고 답했다. 재생가능에너지는 지금 당장 얼마가 든다고 비교할 수 있는 개체가 아니라는 것. 재생가능에너지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 면에서도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미 독일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 활용이라는 대안에 주목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재생가능에너지 산업 발전에 힘쓰고 있다.

“독일 내 전력과 최종 에너지 소비 현황 등에서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율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독일은 2020년까지 최종 에너지 소비 에너지원 중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율을 20%까지 늘리려 합니다. 또 2050년에는 최종 에너지 소비의 60%, 전력의 경우 8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공급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어요.”

강연을 듣고 나오는 길, 입구 계단 옆에 붙은 해당 건물 에너지효율표가 가던 길을 멈추게 했다. 염광희씨가 ‘독일에서는 자동차 연비처럼 건물도 에너지 효율을 표시해둔 곳이 많다’고 설명하자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에너지 효율표를 한참동안 들여다봤다. 다시 한 번 독일의 에너지 절약 정신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일행의 다음 목적지는 독일 국회의사당 내 녹색당 회의실이다. 녹색당은 환경, 반전을 중심으로 결성된 정당으로 1979년 전국적인 조직을 구성했으며 1983년 5.3%의 지지를 받아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했다. 특히, 독일에서 탈핵을 선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녹색당 에너지 정책 담당관 랄프 슈미트 플라츠카씨는 “현 정부는 흑탄 사용을 2050년 4%로 줄이고, 원자력발전은 2050년 0%까지 완전히 없앨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우리 녹색당은 2050년 보다 더 빨리 2030년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플라츠카씨는 이에 발맞춰 재생에너지 저장, 수송을 위한 적절한 인프라 구축이 그에 대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전기 절약, 효율화는 이미 20년 전부터 논의가 돼 왔고 자료도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료가 필요한 시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집안 단열 등 개인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 실천에 나서야 합니다.”

플라츠카씨는 또 에너지 최적화, 효율화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이를 통해 지금 당장이라도 10개의 원자력발전소를 끌 수 있고 19조 원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50만 명의 새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환이 기후보호뿐만 아니라 경제 정책이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녹색당 에너지 정책 담당관 랄프 슈미트 플라츠카씨와의 만남.
독일은 개인이 전력 공급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 독일전력거래소 eex가 분석한 2012년 3월 5일 오전 11시 30분 현재 각 에너지원으로부터의 전력 생산량.

이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