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생명을 살리는 바람 / 채계순 수녀

채계순 수녀(한국가톨릭간호사협회장)
입력일 2011-11-15 수정일 2011-11-15 발행일 2011-11-20 제 277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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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바람은 끊임없이 불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바람이 있는가 하면 생명의 불씨를 꺼버리는 바람이 있다. 부는 바람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반응을 선택할 때는 책임도 함께 깊이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로마 8,28) 하느님이시다. 행동을 선택하기에 앞서 이 믿음으로 성령께 도움을 청하는 것을 신앙인의 습관이 되었으면 싶다.

현대사회는 다문화, 다학제, 다기능, 다양성이라는 단어와 함께 융합, 통섭, 다양성 안의 일치라는 단어들을 자주 만나게 한다. 서로 다른 생각과 문화적 차이를 안고 살아가는 오늘날 사회 속에서 옳고 그르다는 찬반의 의견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는 가운데 일치를 향해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해하고 공감하면서도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을 외면할 수가 없다. 외면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윤리의식이다.

어느 날, 병동 순회 중에 출입문 밖에서 초조하게 서있는 중년남자의 사연을 전해 들었다. 대리모가 분만을 했는데 갈등이 생겼다는 것이다. 쌍생아를 분만했기 때문이다. 거래의 내용에는 한 명의 아이에 대한 값을 지불하기로 되어 있어서 대리모는 한 아이를 자신이 데려가겠다고 주장하고, 아기의 아빠는 그럴 수 없노라며 아기와 함께 도주할 우려가 있는 대리모를 문 밖에서 지키는 중이라 했다. 보에 싸여 신생아실에 누워있는 두 천사를 마음으로 껴안으며 주님의 자비를 청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는데 임신이 되지 않을 때, 종교의 유무를 떠나 인공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임신한 사례 중에는 쌍태아를 분만하는 산모도 많이 만나게 되고, 시험관아기임을 스스럼없이 표현하기도 한다. 1년이 지나면 인공수정을 권유받거나 스스로 선택하여 이직까지 하는 여성들도 있다. 대리모로 누구를 선택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과 갈등을 들었을 때 비록 소수일지라도 심각한 사회적 불행을 안고 있다는 위기감마저 들었다.

인공출산에 대해서, 당면한 부부와 가족은 어떻게 생각하고 윤리적으로는 어느 정도로 의식하고 있을까? 그 시술의 과정에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인간에 의해 통제되는 배아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방송을 통해 대리모에 대한 찬반토론을 한 적도 있었지만 인간출산의 문제를 찬반으로 토론할 문제일지? 다수의 견해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시술의 위험은? 그 결과가 미치는 영향은? 기대효과에 미치지 않는 실상들로 인해 받게 될 고통과 비용은? 부모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인공적인 수단과 방법의 선택이 아이의 미래까지 행복하게 책임져 줄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들과 걱정이 구름처럼 떠있다.

고뇌하면서도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불임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적인 기술에 의존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인간은 자극에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지키기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는 희생을 택할 것인지, 자기중심적인 욕구충족으로 타인을 희생할 것인지는 누가 선택해 주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소중하다. 축복 속에 태어날 아기의 생명이 소중하고, 건강한 생명의 잉태를 기도하는 여성의 생명도 소중하다.

가톨릭의 생명윤리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선물인 생명에 대해 선택의 자유를 지닌 인간의 행동은 생명을 살리는 바람으로 불기도 하고 불씨를 꺼버리는 무서운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윤리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역할극을 통해 올바른 윤리의식을 내면화하고 발생된 사례들로 토론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가치의 우선순위를 학습하는 경험을 갖게 한다.

우리 모두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솔선수범해야 할 신앙인으로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존중 의식을 서로서로 일깨우는 노력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여기에 대중매체의 영향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교회 신문과 방송을 통해 생명존중의 정신을 널리 전파하고, 가정에서의 교육은 물론, 교회문헌과 윤리서적들을 읽고 깨달아, 사람이 되신 말씀처럼 우리도 살아 있는 지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채계순 수녀(한국가톨릭간호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