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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제14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수상소감,인사말,축사

입력일 2011-05-31 수정일 2011-05-31 발행일 2011-06-05 제 274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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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 소감

● 시부문 수상자 이일향 시조시인

“시조 창작 소명 주신 주님께 감사”

이일향씨
뜻밖의 수상 통지 받고 정신이 아득했습니다. 너무 큰 상이어서 인터뷰 자리에 앉아서야 비로소 제가 상을 받게 됨을 실감했습니다.

제 인생은 이모작입니다. 처음엔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았고, 다시금 시인의 삶을 통해 새로 태어났습니다. 마흔아홉에 제게 불어 닥친 폭풍우 속을 헤맬 때 앞길이 막막한 저에게 아버지께서는 백수 정완영 선생님을 소개해주셨고, 그때부터 서른 해가 넘게 시조를 붙잡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뒤늦게 시조에 눈뜨면서 저는 비로소 내 나라의 말씀과 내 나라의 글자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깨달았고, 시조가 바로 한국시의 살이요 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삶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어둡고 밝은 것, 슬프고 기쁜 것, 아름답고 아픈 것들을 하나씩 뽑아 서투른 시를 써왔습니다. 이제 시조는 제 몸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워 오래고 깊은 가락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번 열두 번째 시조집 ‘기대어 사는 집’에서는 저와 저의 아들딸들의 바람벽이 되어주는 남편에 대한 마음속의 집을 그려냈습니다.

가톨릭문인 가운데 시조시인은 많지만 문학상을 받은 이는 제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우리 겨레의 시인 시조를 쓰는 것이 오늘 따라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남은 날이 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한 줄의 시라도 오래 남는 시인이 되기 위해 쓰고 또 쓰겠습니다.

마지막 남은 기름 한 방울이라도 헛되지 않게 태울 수 있도록 격려와 사랑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게 하느님은 전부이자 저의 절대자입니다. 저에게 시조를 쓰라는 소명도 하느님께서 주셨습니다. 저도 쓰고 또 쓰며 은총 주신 하느님께 기도하겠습니다.

● 아동문학부문 수상자 이규희 동화작가

“역사, 동화로 풀어내기 위해 노력”

이규희씨
명성황후라는 인물이 제 마음에 들어온 것은 을미사변이 일어난 지 100년 되던 1995년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신문에 실린 자그마한 어진을 보는 순간 대원군과의 갈등, 외세의 틈바구니에서 외줄타기하던 여장부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연약한 여성의 이미지가 다가왔고, 그 눈빛이 너무나 슬퍼보였습니다. 문득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동화로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저는 너무나 어려운 구한말 역사와 자료의 틈바구니에서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아무리 아무리 애를 써도 명성황후가 동화가 되어 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명성황후의 생가를 돌아보다 어린 시절, 몸종 하나쯤 있었겠지, 그가 동갑내기 몸종이었다면 친구처럼 지내다 같이 궁궐로 들어가 궁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구나, 명성황후는 죽었지만 자신은 살아남아 그 뜻을 이어나가지는 않았을까 하는 작가적 상상력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실존인물과 제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쓰면서, 제가 이 이야기를 동화라는 그릇에 담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한계도 많이 느꼈습니다. 이야기를 쓰는 동안 누군가 나에게 글을 쓰게 하는 듯한 희열을 느낄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역사동화를 쓰는 것도 역사라는 소재를 빌려다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역사의 행간에 숨어있는 많은 사람들의 지난한 이야기를 동화로 풀어내는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동화작가로서 과분한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그 고마움에 힘입어 더 좋은 동화 쓰는 것으로 보답드리겠습니다.

■ 인사말

● 이성도 가톨릭신문 사장 신부

“감동·여운 주는 작품 발굴에 기여”

이성도 신부
가톨릭문학상은 한국 가톨릭문학 역사와 발전에 헌신하신 많은 분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정신을 잇는 특별한 의미를 지녀왔습니다.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문화행사 지원을 통해서 사회와 함께 좋은 뜻을 나누고자 하는 우리은행의 후원은 더욱 그 뜻을 빛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문학에는 문외한입니다만 감히 한 말씀 드리자면, 문학은 자신의 고통인 동시에 기쁨이며 다른 사람의 삶에 감동과 기쁨과 여운을 주는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가톨릭문학상이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여운을 주는 작품 발굴과 문학발전에 기여하고 문학발전에 뜻을 둔 모든 분들께 격려가 되는 상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오늘 수상하신 두 분께 다시 한 번 더 축하인사를 드리며 오늘 오신 모든 분들께 격려의 축복 가득하시길 빕니다.

● 이순우 우리은행장

“문학상 후원 지속적으로 힘쓸 터”

이순우 은행장
저희 은행의 작은 성의가 가톨릭 정신을 고양하고 공동선을 확산하는 문학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 된다는 것을 큰 자랑으로 늘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부행장에서부터 수석부행장 등을 거치는 여정 동안 한국가톨릭문학상을 주관했던 경력이 큰 의미를 지닙니다. 앞으로도 우리은행은 한국가톨릭문학상의 위상에 걸맞은 후원을 지속적으로 하는데 힘쓰겠습니다.

우리은행은 지난 1899년 설립된 오랜 역사를 지니며, 가톨릭신문사와도 귀한 인연으로 문학상을 후원하는 영광도 갖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관심으로 저희 은행 또한 꾸준히 발전하고 있음을 기억하며 감사 인사드립니다. 수상자들에게 깊은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 축사

●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교회 사명 문학 작품 통해 드러나”

이용훈 주교
한국가톨릭교회 최고의 역사와 전통, 권위를 지닌 한국가톨릭문학상의 주인공이 되셔서 영광스럽게 상을 받으시는 존경하는 이일향, 이규희 선생님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큰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이 문학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튼실하고 견고히 자리잡아가고, 그 이름에 걸맞게 우리 사회와 교회의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하느님과 교회 사명과 임무를 문학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가톨릭문학상 수상자들이 펴낸 훌륭한 문학작품들은 인류와 세상의 절망, 좌절, 불신과 어둠을 제거하고 새롭게 밝히는 빛과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을 순화하고 정화하는 소금의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톨릭정신과 가르침 담은 문학작품들은 우리 교회와 세상이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 노원호 사단법인 새싹회 이사장

“한국 아동문학 기둥되길”

노원호 이사장
이규희 선생님께서는 1978년 등단하셨으니 문단 경력이 35년 가까이 되셨습니다. 여느 작가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못쓰겠다 못쓰겠다 아우성인데, 이 선생님은 갈수록 많이 또 좋은 작품을 써서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셨습니다.

수상작인 ‘왕비의 붉은 치마’는 명성황후의 어린 시절과 고종황제의 만남을 어린 다희의 눈으로 그려낸 뛰어난 작품으로서, 문학상 수상작으로 모자람이 없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작품에 녹여내는 것은 일반 작품을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라 생각합니다. 자료를 많이 수집해야 하고, 신빙성도 담보돼야 하기에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 어려움을 통해 빚어낸 작품이기에 가톨릭문학상이 수상자에게는 더욱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이 선생님께서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많이 써, 한국 아동 문단의 든든한 기둥이 되길 바랍니다.

● 장경렬 서울대 영문과 교수

“자연의 정기 충만한 작품”

장경렬 교수
이일향 시인님의 시집 ‘기대어 사는 집’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올린 말이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빙허’, 즉 ‘허공에 기대다’였습니다. 이 시인께서 시에 담은 ‘산보다 더 높은 산’과 ‘물보다 더 깊은 물’은 초물리적 또는 영적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시인은 ‘없지만 있는 동시에, 있지만 없는 존재’인 ‘당신’에게 ‘기대어’ 있는 시인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런 시인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했을 때 문득 저에게 ‘허공에 몸을 기대고’ 있는 시인 소동파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이 ‘허공’은 결코 무의 공간으로서의 허공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지만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자연의 정기로 충만한 공간이 아니겠습니까.

소동파의 이미지와 이일향 시인의 이미지가 겹쳐지자, 나는 시인이 시집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