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제14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1-04-12 수정일 2011-04-12 발행일 2011-04-17 제 2742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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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사(사장 이성도 신부)가 제정하고 우리은행(은행장 이순우)이 기금을 출연하는 한국가톨릭문학상 2011년 수상작에 이일향씨의 시조집 「기대어 사는 집」과 이규희씨의 동화 「왕비의 붉은 치마」가 각각 선정됐다.

한국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이성도 신부)는 문학평론가 구중서(베네딕토), 시조시인 박시교(제노비오), 시인 신달자(엘리사벳), 동화작가 정두리(세라피나)씨로 심사위원회를 구성, 심사와 회의를 통해 각각의 수상작을 확정했다.

특히 올해에는 가톨릭문학상 제정 이래 처음으로 한국시 전통성과 서정의 기둥인 시조가 수상작으로 선정돼 더욱 큰 관심을 모은다.

◆ 시 부문 수상자 - 시조시인 이일향씨

“시조 선정, 문학상 제정 이래 최초”

시조시인 이일향씨.
“부족한 저를 통해 ‘시조’가 한국 가톨릭문학상의 영광을 안게 돼 가장 큰 기쁨입니다.”

이일향(세레나·82) 시조시인은 “인터뷰 자리에 앉아서야 비로소 상을 받게 됨을 실감한다”며 먼저 시조의 아름다운 가치에 대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시조시인다운 올곧은 의식과 겸손함이 한껏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시조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신, 고유의 가락과 정서 등이 모두 녹아들어 있는 전통 정형시입니다. 시가 갈수록 난해해지고 산문화 되어가고, 각종 외래어와 인터넷 속어 등이 범람하는 요즈음 세상에서 시조는 우리말을 정화하고 고유의 아름다움을 살려나갈 뿌리가 됩니다.”

이러한 시조의 틀을 빌려 그가 나누어온 주제는 대부분 삶에 대한 명상이다. 시인은 일상에서 따낸 쓰디쓰면서도 달콤한 삶의 열매들을 사랑과 그리움, 기도의 마음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왔다.

수상작 「기대어 사는 집」은 열두 번째 작품집으로, 이 시인의 문학적 사상과 정서가 총체적으로 녹아들어 있다. 기도 안에서 온전히 비운 마음, 하느님께 기댄 묵상의 뜻도 절절이 담았다.

이 시인은 “하느님은 저의 전부이자 절대자”라며 “내 힘으론 딛고 설 수 없는 참담한 아픔을 겪으면서 하느님을 더욱 절실히 체험하고 그분의 도우심으로 시조를 쓰며 숨 쉬어 왔다”고 역설한다.

이 시인은 시적 재능을 품고 있었지만 결혼을 계기로 자신만의 꿈은 의식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남편을 잃고 한없는 절망감에 빠져있던 그에게 구명대가 된 것이 바로 시조였다.

“제 인생은 이모작입니다. 처음엔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았고, 다시금 시인으로서의 삶을 통해 다시 태어났지요.”

당시 이 시인은 민족시인이자 저항시인으로 잘 알려진 아버지 이설주 시인의 권고로 시조 습작을 시작했다. 49세 늦깎이로 시인의 삶을 시작했지만,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성실함으로 시집을 통해 선보인 작품만 1000여 점에 이른다. 사랑과 봉사, 신앙을 근간으로, 관념이나 감성에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삶 안에서 친숙한 풍경을 시어로 표현하면서 작품마다 기대 이상의 호소력과 공감대도 얻었다. 특히 이 시인은 쉼 없는 습작 활동을 통해 시조 쓰기의 방법을 스스로 익히면서 완숙의 경지를 향해 걸어왔다.

“머리와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정제하고 다져 시조 가락에 얹어왔습니다. 시조를 쓰는 것은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소명입니다. 저에게 남은 마지막 남은 기름 한 방울도 마지막 창작의 순간까지 태울 수 있도록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 이일향 시조시인은…

이일향 시조시인은 1979년부터 백수(白水) 정완영 선생을 사사, 1983년 「시조문학」 추천 완료를 시작으로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왔다. 첫 시조집 「아가(雅歌)」 출간 이후 「세월의 숲속에 서서」, 「구름해법」, 「기도의 섬」등 12권을 선보였다.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에 이어 윤동주문학상, 정운이영도문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신사임당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여성시조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과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한국여성문학회 자문위원, 한국시조시인협회 및 시인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 수상작 「기대어 사는 집」

「기대어 사는 집」은 이일향 시인의 열두 번째 작품집이다. 이 시인은 “이제 나를 비워놓고 영혼이 남아서 기대어 살아갈 집 그 뜨락에 뿌린 시의 씨앗을 거두어 본다”는 말로 작품집의 문을 열고 있다.

이번 작품집에서는 연작 ‘돌아가는 길’을 비롯해 ‘너를 운다’, ‘부활의 노래’ 등 총 68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 글자 그대로 가슴 속에서 꺼내 씻고 다듬어 한 자 한 자 새긴 언어들이다. 특히 시조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면서도 완결성을 보이는 창작물들로 평가받고 있다.

■ 심사평 / 심사위원 박시교 시조시인

"삶의 진솔한 이야기 율·격 살리며 풀어내 "

박시교 시조시인.
심사에 오른 세 분 시인의 시집을 숙독하면서 먼저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년에 이르러 우리 시가 마치 시 본래의 궤도를 벗어나 난삽과 치졸, 문법과의 과도한 충돌, 중언부언 넋두리 사설화 되어간다는 인상을 지워버릴 수가 없는 염려스러운 때에 아직도 온전히 시의 위의(威儀)를 지키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한결같이 고수하고 있음을 목격할 수가 있어서 적잖은 위안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한 권의 시집만을 가려서 상찬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 앞에 고민해야 했고, 심사위원 두 사람은 마침내 이일향 시인의 「기대어 사는 집」을 낙점하였습니다.

시가 바로 우리들 삶의 진솔한 이야기이며 또한 그 절절한 옹이의 노래라는 데 동의한다고 할 때, 「기대어 사는 집」에 수록된 여러 편의 정형시 즉 시조는 보다 구체성을 띠며 읽혀지고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시에는 시만이 담아낼 수 있는 율(律)과 격(格)이 살아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둘의 조화가 시적 화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만큼 공감은 곧 시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집 첫 머리 ‘돌아가는 길’ 연작 여섯 편은 시인 자신의 아픈 여정과 내일의 염원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어서 시 읽기의 시작부터가 친근감을 느끼게 했고, ‘전야(前夜)’, ‘너를 운다’등의 작품에서는 내면의 응혈을 다스려 보듬는 품이 곡진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를 시로 승화시킨 ‘엽서’ ‘세월의 저편’ 등은 서정시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해 주는 가작이었습니다.

권위와 전통의 가톨릭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아동문학 부문 수상자 - 동화작가 이규희씨

“역사 속 약자의 아픔 나누고 싶어”

동화작가 이규희씨.
“역사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약자의 고통과 아픔을 동화를 통해 알리고 나누어 현재의 세상을 사랑으로 채워나가는데 작은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동화작가 이규희(클라라·59)씨의 작품에서는 한결같은 따스함이 묻어난다. 약자에 대한 관심이 그 근원이다.

올해 가톨릭문학상 수상작 「왕비의 붉은 치마」 또한 질곡의 역사 흐름 한가운데서 희생된 명성황후의 열정적인 삶에 시선을 주면서 만들어졌다.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이 되던 1995년에 구상했지만, 이후 10여 년 이상 영감이 다가오질 않아 미뤄두었던 작품이었다.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당당한 국모로서의 삶뿐 아니라, 가여운 여성으로서의 삶에도 마음이 가 닿았다.

가상의 인물 다희가 당시 여성들에게 주어진 삶의 한계를 딛고 일어서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움직임에는 작가 스스로도 마음이 떨렸다.

특히 이씨는 “세례를 받은 이후에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것도 은총이었다”며 “덕분에 가톨릭 신앙과 박해 등의 이야기도 알고 또 작품에 담아낼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는 지난 2007년 늦깎이로 세례를 받았다. 일상의 삶에서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으로 스스로 명동성당을 찾았고, 평소 가톨릭신앙에 관심이 있던 남편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등장인물 다희가 종현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것도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길어 올려졌다.

이씨는 평소 역사동화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작가 스스로는 어린 시절 강원도 영월에서 자란 덕분이라고 짐작한다. 영월에 남은 단종의 흔적이 그의 작가적 상상력을 거쳐 「어린 임금의 눈물」이란 책으로 승화된 것도 한 사례다.

1978년, 별 생각 없이 참여했던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면서 동화의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당시 수상작은 이씨가 세상에 내놓은 첫 작품이었다.

사실 학창시절에는 소설을 쓰고자 했다. 하지만 공모전 수상을 계기로 동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창작동화의 텃밭은 그리 풍요롭지 못했지만, 꾸준히 창작활동을 지속했다. 지금까지 30여 편의 책을 발간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동화라고 해서 꿈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과 아픔도 많이 녹아있지요. 하지만 한 생을 보다 올곧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씨앗을 심어주는 일이 바로 동화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동화는 어른들에게도 좋은 글이지요.”

이씨는 앞으로 일만위 무명 순교자의 삶을 동화로 그려낼 예정이다.

이씨는 “순교사에 대해선 넝쿨에서 튼실한 고구마가 알알이 달려오듯 써나가야 할 인물과 이야기가 넘쳐난다”며 “현재 자료를 한창 모으는 중인데, 작가로서 신자로서 소명을 부여받은 마음”이라고 밝혔다.

■ 이규희 동화작가는…

1978년 중앙일보사가 주관하는 ‘소년중앙문학상’에 동화 「연꽃등」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동화와 그림책, 청소년소설 등을 써왔으며 이주홍문학상과 세종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특히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창조하는 팩션(Faction) 분야에서 큰 두각을 드러내왔다. 어린이들에게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한 동화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저서로는 「아버지가 없는 나라로 가고 싶다」, 「어린 임금의 눈물」, 「열세 살에 만난 엄마」,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 「두 할머니의 비밀」, 「조지 할아버지의 6.25」, 「흙으로 만든 귀」 등이 있다.

■ 수상작 「왕비의 붉은 치마」

명성황후, 조선 말기 슬픈 역사의 상징으로 남은 인물이다.

한 나라의 황후라는 고귀한 신분이었지만 일본 정부의 주도 아래 일본 낭인들의 손에 의해 시해되고 시신조차 훼손되는 비극을 겪었다.

그가 역사의 거센 물결 속에서 나라를 지키며 당당한 국모로 서기 위해 걸어온 길을, 요즘 어린이들은 올바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역사 교과서나 TV 드라마 등에서 보던 명성황후에게는 세상이 마냥 즐겁기만 하던 어린 시절과 가슴 두근거리던 사춘기가 있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상작 「왕비의 붉은 치마」는 가상의 인물 ‘다희’의 눈을 통해 명성황후의 어린 시절과 고종황제와의 만남 등을 그려내 눈길을 끈다.

다희의 입을 통해 소개되는 명성황후의 모습은 당찬 ‘여장부’의 모습이면서도 언니처럼 친근하고 속 깊은 모습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조선 후기 천주교 신앙 전파와 박해 등의 역사적 사실도 자연스럽게 들여다볼 수 있다. 다희의 부모가 청년 김대건을 만나는 장면부터, 부모의 신앙을 물려받아 다희가 세례를 받고 프랑스 유학을 떠나는 등의 흐름은 교회사를 배경으로 한다.

어둡고 비극적인 역사지만 불편하지 않게, 섬세하고 따뜻한 필체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수상작은,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역사의 한 부분과 인물을 동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 심사평 / 심사위원 정두리 동화작가

“쉬운 문체에 역사의식이 담긴 작품”

동화작가 정두리씨.
제14회 가톨릭문학상 아동문학 부문의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김율희 동화작가의 「도깨비 쌀과 쌀 도깨비」(개암나무)와 이규희 동화작가의 「왕비의 붉은 치마」(계림북스) 두 편이었다.

김율희 작가의 「도깨비 쌀과 쌀 도깨비」는 시대를 아우르는 주제인 도깨비 동화다.

도깨비는 사람들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주인공인 아빠 도깨비 ‘우달’과 아들 도깨비 ‘또리’ 역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함을 보여주는 선한 도깨비들이다. 착한 마음은 전염이 된다고 믿는, 사람보다 착한 도깨비 이야기.

그들이 펼치는 사건을 따라가면 저학년 어린이들에게는 끝까지 재미있게 읽히는 동화이지만, 전체적으로 긴장감과 현실감의 부족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규희 작가의 「왕비의 붉은 치마」는 명성황후의 일생을 여종 ‘다희’의 시선으로 그린 역사동화다.

이미 알려진 역사적인 사실을 재조명하여, 역사의 기록을 나열하지 않고도 초등학교 전 학년의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종의 시각으로 그린 신선함이 이 작품의 장점으로 돋보인다.

명성황후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 조금 더 조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상전을 모시는 ‘다희’의 여성다운 심리 묘사, 쉽게 이해되도록 잘 짜여진 구성, 그리고 마지막 부분을 마무리한 공감대는 작가의 힘으로 여겨진다.

명성황후의 일생과 그 시대 서민들의 생활양식과 풍습을 그려낸 섬세한 표현과 동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인다. 전아하고 섬세한 동화 문체에 민족사의 역사의식도 담겨있는 작품이다.

이에 따라 두 분의 작품 중에서 이규희 작가의 「왕비의 붉은 치마」를 수상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