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창간 84주년 특집 -한국교회 선교의 뿌리를 찾아서] Ⅳ - 선교·수도회 좌담

정리 임양미 기자
입력일 2011-03-30 수정일 2011-03-30 발행일 2011-04-03 제 2740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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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목숨걸고 박해 속 한국교회 초석 다져
“각 수도회 고유 카리스마로 복음화 기여할 것”
외적 성장보다 영적 성숙 위해 투신해야
젊은이들 위한 사목·성소개발 노력 필요
이제는 해외선교에 관심갖고 지원할 때
복음화율 10%를 넘긴 상황이지만 내적 질적 복음화를 향한 ‘새시대 새복음화’에 대한 논의가 한국교회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는 가운데 본지는 ‘한국교회 선교의 뿌리를 찾아서’를 주제로 특별 좌담회를 마련했다.

창간 84주년 특별기획 일환으로 시도된 좌담은 한말 일제시대, 피바람 몰아치는 박해와 여러 고난 속에서 한국교회 설립의 뼈대를 놓고 기틀을 이뤘던 선교회 수도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교회 초창기의 근원을 살펴보고자 시도됐다.

한국교회가 비록 자생적으로 생겨났지만 선교사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초창기 신앙의 뿌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는 평가다. 이번 좌담회는 그러한 기억 속에 한국교회 설립 당시의 처음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오늘날 한국교회가 반성과 쇄신의 기회로 삼아 새복음화를 향해 새롭게 재창조할 수 있기를 바라는 취지로 준비됐다.

3월 24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오기백(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지부장), 홍세안(파리외방전교회 지부장), 함제도(메리놀외방전교회 지부장), 오윤교(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도서관책임) 신부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본지는 창간 84주년을 맞아 3월 24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한국교회 선교의 뿌리를 찾아서’를 주제로 특별 좌담회를 마련했다.

■ 일시: 2011년 3월 24일 오후 2시

■ 장소: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사회: 이주연 기획특집팀장

이주연 기획특집팀장

홍세안 신부(파리외방전교회 지부장)
오윤교 신부(성 베네딕도회 도서관책임)

함제도 신부(메리놀외방전교회 지부장)
오기백 신부(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지부장)

이주연(이하 이): 한국교회 안에서 파리외방전교회의 경우 한국인 사제 양성, 메리놀외방전교회(이하 메리놀회)는 평신도 쇄신운동, 성 베네딕도회(이하 베네딕도회)는 전례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이하 골롬반회)는 신심 부흥운동을 일으키고 한국교회가 외방선교에 눈뜨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평을 듣습니다. 각 선교회별 한국 진출 역사 안에서 성과 부분에 대한 말씀을 먼저 듣고 싶습니다.

- 홍세안 신부(이하 홍): 파리외방전교회가 한국에 입성한 것은 1836년의 일입니다. 최초의 선교사였던 모방 신부는 한국 청년 신자 중 세 사람을 뽑아 마카오에 있는 신학교에 보냈고, 그 중 김대건과 최양업 두 한국인 사제가 탄생했지요. 파리외방전교회의 설립 취지가 각 나라의 한국인 사제를 양성해 세상 곳곳에 자립 교회가 들어서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던 만큼,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배론에 신학교를 지어 한국인 사제 양성을 위한 노력도 계속했고요. 비록 계속되는 박해로 배론 신학교에서는 단 한 명의 사제도 배출할 수 없었지만 당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사제가 3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선교사를 파견해 한국인 사제를 양성했던 것이 파리외방전교회가 한국교회에 기여한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오윤교 신부(이하 오): 성 베네딕도회는 성당 건설이나 사제양성 등 직접 선교보다는 수도원을 통한 교육사업 등을 통해 간접 선교에 힘썼습니다. 베네딕도회는 한국 수도생활, 특히 남자 수도생활이 뿌리내리도록 하는데 기여했고, 원산교구 등 한국교회 내 교구 제도 정립의 기틀도 다졌습니다. 수도생활과 선교가 동시에 이뤄지는 새로운 선교 개념이 자리 잡도록 했지요. 수도생활을 통해 한국교회 전례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도 받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부터 이미 신자석을 향해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고, 공동집전 형태의 미사도 처음 시도했고요. 미사양식, 어린이 미사양식과 해설 등 전례 출판 면에서도 많은 성과를 냈습니다.

- 함제도 신부(이하 함): 1923년 북한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메리놀회는 평신도를 위한 교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요. 한국에는 평신도에 의해 처음 신앙이 들어왔기 때문에 특히 평신도가 교회에서 역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들고자 많은 노력을 했어요. 메리놀회가 북한에 진출했을 1923년 당시 북한에는 개신교가 많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메리놀회는 개신교도들과의 일치에도 관심을 기울였어요. 하지만 북한에서는 20년 정도 밖에 선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념 대립과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메리놀회의 많은 사제들이 옥살이를 하거나, 본국으로 송환돼야 했습니다. 이후 메리놀회는 남한으로 내려와 청주교구에 자리 잡았지만, 늘 북한 땅 선교를 위한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 오기백 신부(이하 백): 골롬반회는 1933년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골롬반회의 목적은 교회 설립을 통한 복음화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골롬반회는 선교의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일제치하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던 아일랜드 신부들이 가택연금을 당하고,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출신 신부들은 모두 추방을 당해야 했습니다. 또 한국전쟁 때에는 선교사의 25%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60~70년대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농촌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던 많은 선교사들이 도시로 나와 본당 사목을 시작했습니다. 전 미카엘 신부, 두봉 주교, 양노엘 신부 등 많은 사제들이 빈민사목, 노동사목 등에 관계하며 사회사목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단주·단도박 운동, 레지오 신심운동 등도 도입했고요. 현재는 한국인 해외선교사 양성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 여기 계신 선교·수도회 모두 박해시대·일제치하·한국전쟁 등 한국 역사의 격변기를 함께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시복시성운동도 추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역사 속에서 아쉬운 점, 부족했다고 여기는 점도 있을 텐데요.

- : 박해 때문에 파리외방전교회의 목적이었던 사제양성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김대건 최양업 신부 이후엔 사제의 대가 끊겼습니다. 배론에서 신학교를 시작했었지만, 박해 때문에 학교가 폐쇄됐지요. 당시 한국에서 사제를 양성하는 일도, 외국으로 데려가 사제를 양성하는 일도 너무 위험하고 어려웠습니다. 그 부분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 : 메리놀회가 선교를 시작한 북한 땅에서 선교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북한교회는 고통받는 교회, 침묵의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기도와 지원이 필요한 곳입니다. 메리놀회는 남북의 통일을 위해 언제나 기도하고 있습니다.

- : 한국 문학에 대해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문학에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한국의 심리나 현실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했을 것 같아요. 역사 기록에 소홀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자료가 없다보니, 선교에 관한 모든 경험들이 돌아가신 선배 선교사들과 함께 날아가 버렸습니다. 70~80년대 당시에는 농촌에서 도시로 오는 수많은 신자를 수용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실용적인 차원에서 성당을 짓다보니 미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명동대성당이나 용산에 있는 예수성심성당처럼 아름다운 성당을 보면, ‘우리 골롬반회도 더 아름다운 성당을 지었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웃음)

- : 한국교회의 기틀을 다지느라 수도생활의 뿌리내림, 특히 남자 수도생활의 뿌리내림에 대해 상대적으로 신경쓸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초기 서울 수도원 시절 미술, 독일어 사전, 농업 양잠서 등을 펴내며 연구에도 굉장히 많은 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덕원, 연길 등으로 근거지를 옮김으로써 교회를 짓고 넓은 구역을 관할하는 본당 사목을 중점적으로 펼치게 됐어요. 베네딕도회의 본질적인 카리스마를 너무 많이 희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한국교회에서는 현재 내적 영성의 부족이나 질적 복음화문제가 계속 화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선교·수도회에서 생각하실 때 한국교회 복음화 현실은 어떠한지요. 또 남겨진 과제는 어떤 것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 한국교회 안에 젊은이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고방식도 많이 변했어요. 때문에 앞으로 젊은이를 위한 사목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줄어드는 젊은이들과 함께 성소 개발도 문제입니다. 아직 신학생들은 많지만, 수도원, 수녀원 성소는 정말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이 부분은 한국교회 뿐만이 아니라 모든 교회가 안고 있는 과제입니다.

- : 제가 한국에 온 것은 1960년 즈음입니다. 그로부터 51년간 물질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했고, 영성적으로도 많은 발전을 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와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합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매스컴을 활용하는 미디어 사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와 함께 해외 선교에 대한 중요성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교회의 풍성한 은총을 다른 나라에 전할 때입니다.

- :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에 대한 신앙적 토착화를 이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한국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에 대한 신학적인 고찰과 연구를 강화해야 합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한 신학적 고찰을 해본다면, 또 생태적 이슈 앞에서 타종교와 손을 잡는 모습에 대해 고찰한다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소중한 뜻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유교가 한국교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평신도가 아니라 성직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유교의 가부장제도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또 교회 내에서 여성의 지위는 어떠한지, 새로운 사목적 도전은 없는지에 대한 신학적 연구와 고찰을 통해 언제나 새로운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 : 한국교회는 짧은 시기에 역동적으로 성장했지만 외형적 성장에 비해 영적 빈곤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교회, 더 많이 배운 사람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차지하는 교회, 역동성과 생명력이 떨어지는 교회가 돼 버렸습니다. 생명의 중요성, 친교, 평등, 노동자 권리, 자연의 창조질서 보존 등에 교회가 투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교회의 근본적인 가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한국교회는 기형적일 정도로 교구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베네딕도회가 한국에 온지 100년이 넘었는데도 수도회의 존재나 역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구와 수도회는 갈등관계나 적대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때로 영적 현실적 협력보다는 무관심이 만연합니다. 현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초기에 가졌던 복음적 가치를 회복하고 평신도, 수도회 등 모든 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균형적인 발전과 성장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때가 아닐까요?

: 이러한 한국교회 상황에서 각 선교·수도회는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을는지요?

- : 한국 수도회들은 1980년대를 지나면서 각각의 고유한 정체성과 카리스마를 발견하고 있어요. 그 전엔 한국교회에 선교가 급하다 보니 모든 수도회가 대동소이한 선교 중심의 삶의 양식을 지니고 살았죠. 이제는 시대 상황도 변했고 한국교회도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각 수도회의 다양한 카리스마들이 교회 안에서 꽃 피울 수 있도록 협력해나가야 합니다. 교구와 교구, 수도회와 수도회, 교구와 수도회가 서로 협력하면서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과 카리스마를 확립해 간다면 한 단계 더 성숙한 교회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 : 골롬반회는 세월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로 위로받고 있지요.(웃음) 한국에 있는 다른 선교회들과 함께 장상연합회 산하 해외선교위원회를 꾸렸는데, 앞으로 이 같은 형태로 함께 활동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입니다. 또 세계 곳곳에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과정 안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에 피지에서 온 평신도 선교사 두 분이 있는데, 이들이 강북 삼양동 선교본당에서 신자들과 어울리면서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한국인 선교사가 페루, 칠레, 피지 등으로 나가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작지만 이런 교류를 통해 하느님을 새롭게 느끼게 되고, 교회의 쇄신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 : 골롬반회와 마찬가지로, 파리외방전교회 또한 사제 수가 많이 줄어 현재 12명의 사제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연로하고요. 이때문에 한국교회 안에서 큰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만의 카리스마를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작은 일이라도, 특히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이주민사목, 교정사목, 병원사목, 젊은이사목 분야에서 우리만의 카리스마를 살리면서 선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봅니다.

- : 메리놀회 역시 성소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목소리 없는, 힘 없는 이들을 위해선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함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함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선교회에는 복음전파를 위한 ‘협조사제’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제들이 메리놀회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 현재 한국교회도 해외로 선교사를 파견, 나누는 교회로 발돋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해외 선교와 관련한 제안 그리고 조언 부탁드립니다.

- : 1975년 설립된 한국외방선교회의 역사가 벌써 36년이 됐습니다. 사제도 많이 양성됐고요. 이처럼 일단 한국에서 많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해외로 선교를 떠나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 사고방식에 대해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내심과 이해심이 중요합니다. 제가 올해 78세인데 한국에서 60년을 보냈으니 저도 이제 한국사람이 다 됐습니다(웃음). 먼저 그 나라의 문화를 익히는 것이 우선시 돼야 합니다.

- : 같은 생각입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경우에는 어느 나라를 가든지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데에만 3년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다른 보직은 주어지지 않아요. 오로지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데만 3년을 투자합니다. 한국의 선교사들도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익히는데 먼저 주력하는 것이 좋습니다. 40세가 넘으면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데 어려움이 있으니 젊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선교사로 떠나는 것이 바람직한 일입니다.

파리외방전교회도 ‘준회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적을 따지지 않고 회원을 받고 있어요. 프랑스에서 1년의 양성기간을 거친 후 일본 등 다른 나라로 선교활동을 떠나게 됩니다. 현재 프랑스에서 한국 사제 한 명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 : 두 분 모두 강조했지만 다른 나라에서 선교사 생활을 하기 위해선 그 나라 문화를 좋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지요. 한국에서는 한 달 정도 사전 교육을 받고 파견을 준비하는데 그 교육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해외선교를 떠나면 3~4년간은 적응하는 데 시간을 보내게 되기 때문에, 선교를 떠날 때에는 7~8년 정도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떠나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이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해요. 이들은 다른 교회 경험을 통해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경험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또 한국교회가 조금 더 체계적으로 선교사들을 후원했으면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선교사들이 언제나 본 교회의 도움으로 선교활동을 해왔는데, 선교사들이 그 나라 교회를 대표해 외방 선교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의 경우 골롬반회, 말씀의 선교회, 예수성심선교회 등이 주교회의와 사전에 논의해 1년 동안 한 교구에서 홍보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습니다. 주교회의 명의의 협조 요청 공문도 발송되고요. 모든 신자들이 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 : 선교를 떠날 때에는 한국교회의 옷을 벗고 그 나라 교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고 이태석 신부님께서도 그것을 몸소 증명했습니다. 그들에게 한국적인 것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친구가 돼 주는 것이 참된 선교라는 것을요. 오랜 기간 그 나라에 머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헌신하는 삶으로 그들과 하나가 되는 사랑의 선교를 해야 참된 선교가 이뤄진다고 봅니다. 다만 각 수도회의 고유한 방식으로 선교를 해야 합니다. 모두가 한 가지 방식으로 선교를 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교회도 자기 성당, 자기 수도회만이 아니라 다른 교회에 대한 선교, 타 종교와의 일치 등을 통해 고통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희망을 발견하는 신앙생활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때라고 생각합니다.

정리 임양미 기자 (sophi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