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유럽 수도원 순례길에서 만난 / 현대의 영성가 안셀름 그륀 신부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1-02-09 수정일 2011-02-09 발행일 2011-02-13 제 2733호 2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교회·영성은 … 하느님 만나는 소중한 체험장소”
"현대인들 영적체험 단절하고 살기에 각박한 세상에 응답하는 ‘영성’ 필요"
"몇차례 방문 통해 한국교회 깊은 인상 하느님 축복 한민족 모두와 함께 하길"
안셀름 그륀 신부
현대의 영성가, 21세기의 영성가로 불리는 안셀름 그륀 신부는 같은 수도회 회원들에게는 아주 미스테리한 인물로 불린다. 그 바쁜 와중에서도 수도원 일과와 묵상 생활을 거르지 않고, 또 수도원 관리 책임의 소임을 맡으면서 왕성하게 책을 저술하고 강연을 다니는 슈퍼맨 같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수련자 시절 한국 선교사를 지원했을 만큼 한국교회에 대한 애정이 깊은 안셀름 그륀 신부를 유럽 수도원 순례 중 그가 거주하고 있는 뮌스터 슈바르작 수도원 방문길에 인터뷰 했다. (그륀 신부의 일정 관계로 추후 이메일 인터뷰가 추가됐다)

-독일 교회 순례 중 방문했던 성당 책방에서는 어김없이 신부님 사진이 눈에 띈다. 지금껏 250여 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신자 비신자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오늘날 사람들은 영적인 것을 매우 갈구한다. 도덕적 설교의 영성이 아니라 성공하는 인생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영성을 찾는다. 내 책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는것 같다. 즉 자신의 고유한 영적 갈구를 마주하면서 자신들의 영적인 체험을 알아채는 것이다. 나는 책을 통해 사람들을 내적인 샘으로 이끌고 싶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모두에게 선사하셨지만 우리는 이를 너무나도 자주 단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위대한 영성가’ 또는 ‘21세기의 영성가’로 부르고 있다.

▲ 그런 표현들은 오히려 영성의 대가를 찾는 인간의 갈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수도자일 뿐이고 수도자로서 하느님을 찾는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가는 영적인 길에서 개인적인 한계와 약점을 발견하고 느낀다. 동시에 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진정 계속해서 그 길에 충실해야 한다는, 그리고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는, 또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도전이 된다는 것을 안다. 이는 사부이신 베네딕도 성인께서 당신의 수도자들에게 요구하신 바 이기도 하다.

-영성의 빈곤 문제를 자주 언급하지만 물질 세속주의가 팽배한 세상 흐름 안에서 교회 역시 이 문제를 푸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 교회는 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람들이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것을 선포하는 성직 수도자들이 먼저 하느님을 체험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인생이 물질 경제에 제한되지 않고 이를 초월해야 한다는 것을, 특히 수도자들이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 수도자들은 세상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그 세상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음을 증거한다. 독일 철학자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교회는 사회 안에서 완전히 다른 존재자에 대한 갈망을 생생하게 유지해야만 한다고 했다. 사회는 철저하게 인간을 조종하려 한다. 이런 사회 안에서 하느님을 증거하는 것이 수도자들의 중요한 몫이다. 수도자들 삶은 단순해야 하며 생동감과 내적인 자유를 드러내야 한다.

- 스스로의 영성 수련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바가 있다면.

▲ 정치 사회적 차원을 무시하지 않는, 개인의 영성에 중점을 둔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영성이 치유 차원과 신비 차원을 지닌다는 것이다. 영성은 하느님을 경험하는 장소다. 또 나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경험하는 장소다.

-기계 문명 앞에서의 인간의 소외 현상, 빈익빈 부익부의 극심화등 요즘의 세계는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다. 현대에 필요한 영성은 어떤 것인가.

▲ 세계화에 응답하면서 이 세상을 그리스도교 가치관에 따라 건설할 영성이 필요하다. 개인들이 창조주와 구세주로 우리를 만나 주시면서 동시에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을 경험토록 하는 영성이 필요하다. 우리 안에는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침묵의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을 체험할 때 우리는 세속적인 모든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 안에서 마치 집에 온 듯이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신비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기 때문이다.

-자주 ‘상처의 치유’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우울증 자살 등으로 표출되는 현대인들의 마음 상처에 대한 견해는.

▲ 우울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자신에 대한 엄청난 기대와 과장된 생각이다. ‘우리는 항상 완전해야 한다고, 성공해야 한다고, 끝내줘야 한다’고 생각 한다. 우울증은 우리 자신에 대한 이러한 엄청난 요구에 항거하는 영혼의 구조 요청이다. 다른 원인은 우리가 영적인 근원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우울증에 굴복하지 않고 견뎌야 한다. 그러면 하느님의 영과 사랑이 이러한 우울한 감정에 흘러 들어오고 그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다.

-유럽 교회 수도원 영성이 현대 교회, 신자들에게 줄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 안에서 베네딕토회 영성이 기여한 바가 있다면.

▲ 베네딕토 영성은 각자의 고유한 진리를 하느님 앞에서 관조하며 그 진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변화되도록 하는 길을 보여준다. 한편 뜬 구름 잡는 영성이 아니라 땅에 두발을 딛고 있는 영성이다. 그것은 전례와 구체적인 삶의 양식에서 표현된다. 잘 짜여진 하루의 일과 속에서 사람이 피조물 세계와 인간들과 노동을 대하는 방식을 통해 그 영성이 표현된다. 또한 예수님의 영 안에서 세상을 꾸미려는 희망으로 가득찬 영성이다. 그리스도교적인 것은 우리가 어떻게 피조물과 노동을 대하는 가를 통해서, 우리의 개별적인 삶 속에서 우리가 표현하는 것을 통해 가시화 되어야 한다.

- 저술 강연 등 외부 활동이 활발하다. 수도원 일과 및 묵상 생활에 참여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 일단 성령의 샘으로부터 일하고자 한다.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완벽한 일을 위해 무진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다. 좋은 리듬을 갖고 있을 뿐이다. 리듬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베네딕토 영성의 비밀- 자신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면서 더 많이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다.

-한국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인상, 그리고 인사의 말도 전해달라.

▲ 한국교회는 젊고 활력있는 교회다. 몇차례 방문을 통해 인상 깊었던 것은 신학적 토론과 영성 생활에 대한 높은 관심이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고유하게 갈 수 있는 충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신자들은 매우 개방적이고 진심 어린 이들로 기억되며 동시에 깊은 영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 신자들이 하느님의 축복에 둘러 싸여 있음을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 또 하느님의 축복이 북한을 포함한 한민족 전체에 함께하시길 기도하겠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안셀름 그륀 신부
1945년 독일 융커하우젠에서 태어난 안셀름 그륀 신부는 1964년 성베네딕토회에 입회, 로마 성안셀모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경과 사막 교부들의 가르침 및 융의 분석 심리학 등을 연구, 현대인들에게 그리스도교 영성을 알리고 있다.

지역과 종교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영성 지도자, 현대 그리스도교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하나로 꼽히며 250여 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들은 28개 국어로 번역 소개되고 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