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마태오 리치 선종 4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Ⅰ

곽승한 기자
입력일 2010-09-28 수정일 2010-09-28 발행일 2010-10-03 제 2715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리치 신부의 평화적 적응주의 선교방식 돋보여”
심종혁 신부가 9월 16일 국제학술대회 첫날 세션에서 ‘초기 예수회의 교육과 마태오 리치의 선교활동’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예수회 선교사 마태오 리치(Matteo Ricci·1552~1610) 신부의 사상과 영성을 조명하는 학술토론의 장이 마련됐다.

서강대학교(총장 이종욱) 신학대학원(원장 김용해 신부)은 개교 50주년과 마태오 리치 선종 400주년을 기념해 9월 16~17일 서울 신수동 교내 다산관에서 ‘동서양 문명의 만남, 도전과 기회’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마태오 리치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가 동서양 문화에 끼친 영향을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국제학술대회에는 송영배 명예교수(서울대·중국철학)와 심종혁 신부(서강대·영성신학), 정인재 명예교수(서강대·중국철학), 유승상 박사(한국철학사연구회·중국철학), 클라우스 샤츠 교수(상트 게오르겐신학대·교회사), 치하루 미요시 교수(일본 난잔대·역사학), 남태욱 교수(서울신학대·신학) 등 국내외 철학자 및 신학자들이 대거 참석해 각 주제별 발제자와 논평자로 나서 보다 풍성한 학술의 장이 됐다.

참가자들은 마태오 리치 신부가 보여준 평화적 적응주의 선교방식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문명의 충돌’을 넘어 ‘새로운 문명 창출’의 지혜를 모색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주요 내용을 발췌 소개한다.

■ 마태오 리치의 공적 - 송영배 명예교수(서울대 중국철학)

본격적인 동서 문명 교류 이끈 주인공

마태오 리치는 서양의 과학지식과 철학, 종교사상을 중국인들에게 전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유럽어로 발표된 그의 저술과 서신 등을 통해 중국의 사회정체지도나 종교, 철학사상을 서양에 확실하게 전한 사람이다. 말하자면 동서 문명의 본격적인 교류는 그로부터 발단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마태오 리치는 당시 언어와 문화의 습득을 통해 상층 지식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도리를 전파하고자 했다. 그의 전교의 요점은 세 가지로 함축할 수 있다. 즉 유럽의 과학문화를 소개하는 ‘학술전교’요, 중국의 고유한 풍속과 예교를 존중해 합유(合儒)보유(補儒)하는 ‘토착화 정책’이며, 상층(지식인)과 교분을 맺어 위에서 아래로 국면을 타개하는 ‘상층노선의 추구’였다.

마태오 리치로부터 시작된 서양 선교사들의 전교 활동과 학문 활동은 동서 문명의 접촉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중심주의를 표방하는 일부 서양 선교사들과 로마 교황청의 문제 제기로 발단된 ‘예의논쟁’으로 인해 예수회의 해산과 강희제의 천주교 금령으로 1773년 막을 내렸다. 그러나 마태오 리치로부터 발달된 17~18세기의 동서 문화와 문명의 접촉은 중국과 유럽의 사상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 초기 예수회의 교육과 마태오 리치의 선교활동 - 심종혁 신부(예수회·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우정으로 선교한 ‘우정의 순교자’

마태오 리치의 중국 선교에 대한 접근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우정’(friendship)이라 할 수 있다. 이 우정을 통한 폭넓은 교우관계는 그가 중요하게 여겨온 인문주의적 가치로써, 유럽에서 뿐 아니라 중국에서의 리치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마태오 리치는 우정을 통해 관습적인 사회관계의 범주를 넘어 더 폭넓은 관계의 망을 넓힐 수 있었다. 시대의 두 거대한 문명, 즉 중국 청대의 문화와 유럽의 르네상스 문화가 바로 이 우정을 통해 만나게 된 것이다.

마태오 리치가 비교적 젊은 나이인 57세에 세상을 떠난 이유는 자신이 방문하거나 또는 자신을 찾아오는 수많은 친구들이나 방문객들을 접대하면서 과로로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북경에 모여 있던 수많은 중국 선비들이 마태오 리치를 만나기 위해 쉴 새 없이 그를 방문했던 것이다. 현대의 어느 예수회원 중국학자가 일컬었던 것처럼, 마태오 리치는 ‘우정의 순교자’였다.

마태오 리치는 중국 선교의 선구자로서, 그가 세운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수많은 박해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리치 자신은 발리냐노를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 불렀지만, 사실은 리치야말로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 알레니가 본 마태오 리치 - 정인재 명예교수(서강대 중국철학)

선비·대중 상대로 전교한 알레니

알레니(1582~1649)는 마태오 리치의 영향을 받아 중국에서 활동한 제2세대 예수회 선교사다. 우리는 마태오 리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나 알레니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알레니의 저작인 「직방외기」가 번역 출간돼 그의 일부 사상을 알 수 있게 됐다. 마태오 리치보다 30년 뒤에 태어난 알레니는 특히 과학기술보다는 철학 및 신학 분야에서 뛰어난 저서를 집필했다.

그는 1582년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에서 출생했는데, 그 해는 마태오 리치가 중국에 온 해였다. 알레니는 1610년 마카오에 도착해 중국어를 배웠다. 그는 리치와 달리 북경에서 활동하지 않고 복건 등 지방에서 선비와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전교활동을 펼쳤다. 전교 과정에서 그는 이른바 ‘중국화 된 그리스도교’를 만들어냈다.

알레니는 리치의 뒤를 이어 천학(天學)을 중국 땅에 전파했다. 리치는 동서 문화 교류에도 막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특히 중국의 사서(四書)를 번역해 본국으로 부쳤다. 이는 훗날 서구 계몽주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현대 학자들은 평가한다. 알레니는 리치의 노선을 충실히 따라 적응주의를 채택했으며 리치가 하지 못한 점을 보완하기도 했다.

■ 16~17세기 동아시아 예수회의 선교정책 - 적응주의의 배경을 중심으로 - 김혜경 박사(서강대 신학연구소)

아시아 특수 상황 반영한 ‘맞춤식 선교’

‘적응주의’(Accomodationism)는 동아시아 예수회의 선교 방법론으로서 과거 다른 대륙에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아시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아시아에 맞춘 ‘맞춤식’ 선교정책이었다. 이것은 바오로 신학을 근거로 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노선을 4세기가량 앞당긴 대단히 진보적인 방법론이었다.

당시 아시아로 파견된 선교사들은 휴머니즘과 르네상스, 지리상의 대발견과 종교개혁 등 유례없는 격동기를 거치면서 다듬어진 커리큘럼으로 양성된 유럽의 지성인들이었다. 그들은 교회의 권위를 앞세운 중세 교회의 전통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가르침이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선교정책으로 드러냈다. 즉 적응주의의 배경에는 유럽의 휴머니즘과 르네상스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적응주의 선교는 마태오 리치가 고안한 실천 방법이 아닌 당시 동아시아 예수회 관구장 발리냐노의 선교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발리냐노는 이를 통해 동아시아 선교의 교두보를 확보한 독보적인 인물이 됐다. 시대의 징표를 읽고 토착 문화 속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발판삼아 복음을 지향했던 발리냐노의 노력은 르네상스맨 다운 진보적인 자세였다.

■ 종교 간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실제적 대화 - 마태오 리치를 중심으로 - 남태욱 교수(서울신학대 신학)

이웃 종교간 대화의 가능성 보여줘

마태오 리치는 16세기 지배적인 선교 방법이었던 일방적이고 폭력적 방법에 의한 정복주의 선교 방법을 반성하고 예수회의 선교 이념 및 전략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평화적인 방법, 즉 적응주의에 의한 중국 선교를 성공적으로 성취했다. 이는 그리스도교 선교사적으로는 물론 동서양의 문화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였다.

마태오 리치는 자신의 저작 「천주실의」를 통해 가톨릭교회의 하느님과 유교 상제(上帝)의 동일성을 논증했다. 이 같은 시도는 중국 유교문화 속에서 가톨릭 신앙의 토착화를 위한 최초의 시도였다. 아울러 기독교와 유교의 학문적 만남의 과정에서 성취된 결과물인 동시에, 이웃 종교의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이해와 수용으로 이웃 종교 간 대화의 가능성을 보여 준 역사적 사례였다.

우리는 16세기 마태오 리치가 이룬 종교 간 대화의 공헌에서 21세기 평화로운 종교 간 공존을 위한 실제적인 방안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자기 종교의 한계와 상대성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이고, 또 ‘종교 간 대화’에서 ‘종교 내 대화’로의 진전과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위한 투쟁에 있어서 종교 간 연대에 의한 실천적 대화이다.

곽승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