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초 다 포를리(Melozzo da Forli ·1438~1494)는 15세기 이탈리아 중북부 포를리 지방 출신의 화가이며 건축가다. 그는 원근화법에 투명한 색채로 고전적 건축물의 분위기를 살리고, 절제된 빛의 사용으로 피렌체 ‘빛의 화가들’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브라만테와 같은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마태오 리치가 젊은 시절에 자주 찾았던 ‘로레토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는 멜로초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리치는 이 성당을 순례하면서 새로 장식된 르네상스의 이미지를 접했고, 자연스레 새로운 문화 속으로 들어갔다.
1568년 리치는 로마대학 사피엔자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571년 8월 15일 알렉산드로 발리냐노 신부의 심사를 거쳐 로마의 예수회 수도원에 입회했다. 예수회 대학인 콜레지움 로마눔에서 휴머니즘과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다듬어진 커리큘럼으로 양성교육을 받았다. 1572년 잠시(약 1년간) 인문과학 과목을 이수하기 위해 피렌체 콜레지움에서 지내기도 했다.
리치는 1573년부터 1577년까지 동방선교를 위해 포르투갈의 코임브라로 출발할 때까지 콜레지움 로마눔에서 수사학과 철학을 공부하며, 당대 저명한 과학자며 예수회 신부였던 클라비우스 밑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배웠다. 리치의 탁월한 과학적 재능은 이때부터 이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교황청에서 행정업무를 보며 편안한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동아시아 선교사의 삶을 선택했다. 그것은 힘든 여행을 동반하는 당시로서는 가장 어렵고 위험한 선택이었다.
포르투갈의 코임브라에서 6개월간 포르투갈어 과정을 마친 리치는 1578년 3월 24일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1582년 4월 26일 동아시아 순찰사로 있던 발리냐노의 명을 받고 인도 고아를 뒤로하고 마카오로 향했다.
리치는 루지에리와 함께 마카오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본격적인 중국 선교의 여정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중국 선교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타계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꿈을 이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