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마태오 리치 선종 400주년 기념 지상 사진전 (중) 마태오 리치, 중국을 위한 선교사로 성장하다

김혜경(세레나·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입력일 2010-08-24 수정일 2010-08-24 발행일 2010-08-29 제 2711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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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교 첫걸음 … 마카오로 향하다
이탈리아 마체라타에서 35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로레토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제의실의 천장(15세기). 멜로초 다 포를리는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본’ 앙시도(仰視圖) 기법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멜로초 다 포를리(Melozzo da Forli ·1438~1494)는 15세기 이탈리아 중북부 포를리 지방 출신의 화가이며 건축가다. 그는 원근화법에 투명한 색채로 고전적 건축물의 분위기를 살리고, 절제된 빛의 사용으로 피렌체 ‘빛의 화가들’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브라만테와 같은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마태오 리치가 젊은 시절에 자주 찾았던 ‘로레토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는 멜로초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리치는 이 성당을 순례하면서 새로 장식된 르네상스의 이미지를 접했고, 자연스레 새로운 문화 속으로 들어갔다.

1568년 리치는 로마대학 사피엔자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571년 8월 15일 알렉산드로 발리냐노 신부의 심사를 거쳐 로마의 예수회 수도원에 입회했다. 예수회 대학인 콜레지움 로마눔에서 휴머니즘과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다듬어진 커리큘럼으로 양성교육을 받았다. 1572년 잠시(약 1년간) 인문과학 과목을 이수하기 위해 피렌체 콜레지움에서 지내기도 했다.

리치는 1573년부터 1577년까지 동방선교를 위해 포르투갈의 코임브라로 출발할 때까지 콜레지움 로마눔에서 수사학과 철학을 공부하며, 당대 저명한 과학자며 예수회 신부였던 클라비우스 밑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배웠다. 리치의 탁월한 과학적 재능은 이때부터 이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교황청에서 행정업무를 보며 편안한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동아시아 선교사의 삶을 선택했다. 그것은 힘든 여행을 동반하는 당시로서는 가장 어렵고 위험한 선택이었다.

포르투갈의 코임브라에서 6개월간 포르투갈어 과정을 마친 리치는 1578년 3월 24일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1582년 4월 26일 동아시아 순찰사로 있던 발리냐노의 명을 받고 인도 고아를 뒤로하고 마카오로 향했다.

리치는 루지에리와 함께 마카오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본격적인 중국 선교의 여정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중국 선교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타계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꿈을 이루게 된다.

마태오 리치가 명암과 원근화법을 살려서 그린 책표지 그림. 리치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이런 기술은 그가 르네상스 작가들의 후예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화에서 나타나는 원근화법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피에트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 ‘이상적인 도시’(15세기). 우르비노에 있는 국립 마르케 미술관 소장. 그림은 1400년대 이상적인 도시의 공간성을 상징한다. 기하학과 원근화법을 잘 활용했다. 르네상스의 원근화법은 과학적 기반을 토대로 회화를 대표하는 기술뿐 아니라, 그 시대의 철학적 개념인 ‘창조질서’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리치가 도착할 당시의 마카오를 소개하는 지도.
크리스토퍼 클라비우스(Christophorus Clavius·1538~1612)의 초상화. 독일인 수학자·천문학자로 그레고리우스 교황의 율리우스력 개혁을 위한 ‘교황청 위원회 수석 수학자’로서, 그레고리우스력 달력 개정에 크게 기여했다. ‘16세기의 유클리드’라 불리는 갈릴레오와도 20년 이상 친구로 지냈다. 갈릴레오의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해 달의 분화구를 연구하기도 했다.
해시계, 모래시계 등 당시에 나온 여러 가지 시계 관련 발명품. 자명종은 훗날 리치와 중국 황제 만력제와의 관계를 이어준다.
1594년 발리냐노가 동아시아 일대 토착 성직자 양성의 못자리로 세운 마카오의 성 바오로 신학교 전경. 동아시아 일대에서 가장 큰 서양식 학교로 훗날 신학생 김대건과 최양업도 이곳에서 사제가 됐다.

김혜경(세레나·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