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권철신·일신 형제 학문 토론지 ‘감호암’ 발견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0-04-27 수정일 2010-04-27 발행일 2010-05-02 제 2695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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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는 ‘양평읍 양근리’설 확인
권철신·일신 형제가 학문을 토론했다는 감호암 전경.
한국교회의 창설 주역 권철신과 권일신 등이 학문을 토론했다는 감호암(鑑湖岩)이 경기도 양평읍 양근리(구 갈산리)에서 발견됐다. 정약용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감호’는 권철신이 살던 곳으로, 이로써 권철신 생가가 ‘양평읍 양근리(구 갈산리)’라는 설이 힘을 얻게 됐다.

발견된 감호암은 경기도 양근성지 인근의 일명 ‘떠드렁산’이라고 불리는 섬에서 약 2km 떨어진 하류지점에서 발견됐는데, 바위에 한자로 ‘감호암(鑑湖岩)’이라고 뚜렷이 새겨져 있다.

신해박해(1791년)때 동생 권일신이 순교하자 권철신은 “문을 닫고 슬픔을 머금은 채, 10여 년간 산문(山門, 뒤는 막히고 앞은 대문처럼 좁혀진 산 어귀) 밖을 나오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산문’이 현 양근리와 흡사한 지형을 보이고 있는 점, 그리고 양근 앞 강물을 ‘감호’라고 불렀던 점 등의 이유로 그동안 학계에서는 양근 성지가 위치한 양근리가 권철신의 생가 지역으로 유력시되어 왔다.

이러한 가운데 ‘감호암’이라고 적힌 바위가 양근 인근 지역에서 발견돼 권철신 생가의 위치가 확인된 것이다. 바위 위에는 권철신 형제가 선비들과 시회를 열고 학문을 토론하던 ‘감호정(鑑湖亭)’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현재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만이 자리하고 있다.

권일수 신부(양근성지 전담)는 “수상성지순례투어 중 몇 사람과 함께 우연히 감호암이라는 바위를 발견했다”며 “초기 신앙공동체가 시작된 이곳은 교회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라고 말했다. 권 신부는 또 “양평읍 사무소 앞 우물자리가 권철신의 가족들과 손님들의 식수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