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제13회 한국가톨릭문학상

곽승한 기자
입력일 2010-04-06 수정일 2010-04-06 발행일 2010-04-11 제 2692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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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사(사장 이성도 신부)가 제정하고 우리은행(은행장 이종휘)이 기금을 출연하는 한국가톨릭문학상 2010년 각 부문 수상자가 가려졌다.

한국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이성도 신부)는 문학평론가 구중서(베네딕토), 소설가 김용성(그레고리오), 시인 신달자(엘리사벳), 시인 김형영(스테파노)씨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3월 31일 최종 회의를 통해 소설가 이규희(지타) 씨의 장편소설 「그리움이 우리를 보듬어 올 때」(지식산업사)와 시인 김춘추(루카) 씨의 시집 「등대, 나 홀로 짐승이어라」(솔출판사)를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5월 20일 오후 4시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5층 회의실에서 열리며, 수상자에게는 각각 1000만 원의 상금과 상패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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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한국가톨릭문학상 : 소설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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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 수상자 이규희 씨

“작품 활동에 매진… 격려에 보답할 것”

“가톨릭 신자 문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수상을 꿈꾸는 큰 상을 받게 돼 더욱 영광스럽고 기쁩니다. 앞으로 열심히 작품 활동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격려로 알고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1963년 스물 여섯 나이에 작품 활동을 시작, 올해로 등단 47년을 맞은 원로 여류소설가 이규희(지타?73)씨는 우리 시대의 뭇 작가들과는 다른 행로를 걸어왔다. 굳이 시대의 흐름에 천착하지 않았고, 과작(寡作)도 피했다. 그러면서도 인간소외와 계층 간의 갈등을 다룬 문제작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이번 수상작 「그리움이 우리를 보듬어 올 때」(지식산업사/465쪽/1만2500원)는 1980년대 암울했던 시절 ‘역사의 희생양’이 된 우리네 이웃들의 삶에 주목한 작품이다.

“우리가 신군부 시대의 암흑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 젊은이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겪은 아픔과 절망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소설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생애 최고의 역작(力作)’이라 밝히듯, 이번 소설은 집필 기간만 꼬박 10년이 걸렸다. 함세웅 신부의 도움을 얻어 그때 그 시절을 보낸 젊은이들을 찾아 직접 만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매일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자신을 조금씩 떼어놓듯 글을 써내려갔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자유와 정의를 갈망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그들을 만난 날은 내내 몸살을 앓듯 온몸이 뻐근했지요.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에는 어떤 사명감에 사로잡혀 다른 일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는 “깨끗하고 맑게 솟아오르는 저항 정신의 근원은 인간의 가장 존귀한 내면의 심저에서 솟아오르는 것 같다”며 “그들의 증언들이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 돼 두 번 다시는 그런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 1983년 늦깎이 세례를 받고 가톨릭에 귀의했다. 당시 민주화의 열망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던 고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서였다. 작가 스스로도 질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늘그막에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앞으로도 열심히 작품 활동에 매진해 다양한 중·단편 소설들로 여러분들을 찾아가겠습니다.”

소설가 이규희 씨는…

- 1937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 1963년 ‘동아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속솔이 뜸의 댕이」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집 「황홀한 여름」 「그 여자의 뜀박질은 끝나지 않았다」, 장편소설 「속솔이 뜸의 댕이」 「수렁을 날으는 새들」 「수줍은 연가」 「잃어버린 눈물」, 수필집 「늘 푸르고 싱그러운 날은 언제」 「내 고백은 진달래 개나리로 피고」 등이 있다.

- 「그 여자의 뜀박질은 끝나지 않았다」로 ‘제35회 한국문학상’(1998)을 수상했다.

■ 수상작 「그리움이 우리를 보듬어 올 때」

"생존자 일일이 만나며 10년간 집필"

1963년 ‘동아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원로 여류소설가 이규희씨의 신작 장편소설.

태생과 생활 여건이 다른 이복자매 명지와 세라를 주인공 삼아 1980년대 신군부 치하 한국의 어두웠던 현실을 담담한 언어로 풀어냈다. 총칼과 군홧발로 국민들을 짓밟던 시절은 이미 30년이 흘렀지만, 작가는 삶의 아픔과 회한을 아로새기며 그 시대의 상처들을 적나라하게 증언하고 고발한다.

명지의 남편 순우는 어느날 밤 느닷없이 합동수사부로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한다. 급기야는 방송사 뉴스 앵커 자리에서 해직되고 낭인이 되어 떠도는데….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삶을 통해 피지배계층은 시들어가고 지배계층은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렸다.

작가는 “힘없는 사람들이 그 엄혹한 시대의 어두운 터널을 매미허물처럼 벗어내려면 적어도 백년의 세월을 견뎌내야 한다”며, 책 표지에 ‘모란꽃에도 가슴을 찔리는 사람들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저마다 진정한 자아에 도달해가는 멀고도 먼 울림’이라고 썼다.

소설가 박완서(정혜 엘리사벳)씨는 “조근조근 무던하고 웅숭깊은 농경시대의 진솔한 언어로 그 끔찍한 암흑기의 사회상을 조심스레, 그러나 보여줄 것은 다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며 “과장을 절제한 문장이 오히려 우리가 통과해 온 시대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불러일으킨다”고 평했다.

■ 심사평 - 심사위원 김용성 소설가

"시대의 아픔 드러내 치유 계기 삼아"

제13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소설 부문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문단 경력에서나, 문학적 성취도에서나 만만치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어서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본상이 제정된 정신에 입각, 인간의 삶에 있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인간 구원의 문제에 보다 천착한 작품을 선정하겠다는 기준을 세우고 심사에 임했다.

1960년대 초반 동아일보 장편소설 공모에서 농촌과 농민의 실상을 리얼하게 파헤친 「속솔이 뜸의 댕이」가 당선돼 화제를 모으며 등단했던 이규희씨는 다작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꾸준히 소설을 발표해 온 작가다.

이번 수상작으로 선정된 「그리움이 우리를 보듬어 올 때」는 그의 생애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될 만하다.

이 소설은 1980년대, 이른바 신군부 시대로 일컬어지는 어둡고 엄혹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위해 저항하는 사람들의 행위를 처절하고 긴박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1980년대 초의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에 걸쳐 여러 편 발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이나 지난 오늘에서 작가가 그 시대의 아픔을 파헤친 것은 단순히 자극적 충동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 고통과 질곡을 통해 통절히 반성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 대척적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던 명지와 세라가 두 어머니의 생애를 추적함으로써 통합에 이르게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깊은 공감을 산다.

이 소설을 정독하며 느끼게 되는 장점 하나를 더 말하자면, 작가가 부지런히 자료를 수집하고 어려운 취재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와 같은 치밀하고도 구체적인 자료가 이 소설이 리얼리티를 획득하도록 만든 원천이 아닐까.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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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한국가톨릭문학상 : 시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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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 수상자 김춘추 씨

“시로써 누군가를 치유하고 싶습니다”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엉뚱한 의사에게 이런 큰 문학상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의사’로서는 많은 상을 받았지만, ‘시인’으로서 상을 받는 것은 처음입니다. 참으로 기쁘고 감동적입니다.”

시집 「등대, 나 홀로 짐승이어라」(솔출판사/108쪽/7000원)로 제13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김춘추(루카·66) 시인은 “지난 세월 가톨릭 공동체에 몸담고 지내며 배운 생명 존엄과 인간 존중의 가르침이 나를 의사이자 시인으로 만들어 준 것 같다”며 모교인 가톨릭의대에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 또 “이제는 ‘의사 김춘추’보다는 ‘시인 김춘추’로 불리고 싶다”고 수줍게 밝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사’이면서 ‘작가’였던 이들은 의외로 많았다. 러시아의 안톤 체호프와 영국의 코넌 도일이 그랬고, 독일의 고트 휘트먼과 프랑스의 프랑수아 라블레도 의사였다. 한국에는 김 시인이 대표적이다.

그는 나이 쉰셋이 되던 1997년 첫 시집 「요셉병동」을 내고, 이후에도 여섯 권의 시집을 더 냈다. 그럼에도 ‘조혈모세포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백혈병 치료의 명의’라는 본연의 빛에 가려 시인으로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원래 제 꿈은 문학도였습니다. 의학도가 된 뒤에도 문학의 꿈을 접을 수가 없었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전공하면서, 결국엔 슬픔을 극복하는 저만의 방법으로 ‘시’를 쓰게 됐습니다. 또 의학논문을 쓰는 일이나 시 쓰는 일이나 상상력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는 닮은 점이 많더군요.”

이번 수상작은 시인이 지난해 가톨릭 의대 정년퇴임을 자축하며 펴낸 시집이다. 자서에 따르면 ‘시집도 아니고 시선집은 더더욱 아닌 이 가여운 소출을 2009년 정년퇴임을 맞아 저의 ‘시 묶음’이라 부르고 싶다’는 그것이다.

그는 “그동안 의사로서는 할 일을 다했으니 이제는 시(詩)로써 누군가를 치유하며 살라는 하느님의 뜻을 겸허히 따르고자 한다”며 “한라병원 백혈병센터가 자리잡히는 대로 의사직을 떠나 본격적인 문학의 길로 들어서겠다”고 전했다.

“하느님께서 언젠가 ‘하늘나라에 백혈병 전문 의사가 부족하다’며 저를 부르시면, 그때는 무조건 달려가서 다시 의사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인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될 때, 제가 가진 모든 열정을 문학에 쏟아붓겠습니다.”

시인 김춘추 씨는…

- 194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가톨릭대 의과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 1983년 국내 첫 조혈모세포이식 수술에 성공하며 백혈병 치료에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

1985~86년 영국 왕립 해머·스미스병원 객원교수, 1992년부터 국제골수이식등록학회 자문위원, 1994~96년 아·태 골수이식학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가톨릭 의대 혈액학과 교수와 가톨릭의과학연구원 원장을 역임하고 2009년 8월 정년퇴임했다. 현재 제주 한라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 1998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성(聖)오마니!」, 「요셉병동」, 「하늘목장」, 「얼음 울음」, 「산 속의 섬」, 「어린 순례자」 등이 있다.

- ‘이달의 과학기술자상’(1997), ‘옥조근정훈장(과학기술유공) 포상’(2000), ‘한국BRM학회 공로부문 학술상’(2000), ‘자랑스런 가톨릭의대인상’(2005), ‘쉐링임상의학상’(2006) 등을 수상했다.

■ 수상작 「등대, 나홀로 짐승이어라」

"전 작품 관통해 흐르는 간절한 인간애"

김춘추 시인이 지난해 8월 가톨릭의대 정년퇴직을 기념하며 펴낸 자신의 일곱 번째 시집.

1997년에 낸 첫 시집 「요셉병동」을 비롯해 「성(聖)오마니!」, 「하늘목장」, 「얼음 울음」, 「산 속의 섬」, 「어린 순례자」 등 기존에 낸 시집 여섯 권에서 가려 뽑은 작품과 신작시를 한데 묶어 총 65편을 실었다.

김 시인의 시들은 대부분 짧지만 명징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그려낸다. 애간장을 녹이면서도, 때론 즐겁게 자유자재로 노니는 선 굵은 시다.

시인의 연륜과 세월이 묻어나는 이번 시집에는 일상의 새벽에서 본디의 나와 독대하는 미명, 혹은 바쁜 일상 중 짠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맞닥뜨릴 때 느끼는 살가운 정감의 서정이 가득 담겨 있다.

김남조(마리아 막달레나) 시인은 추천사에서 “김춘추 시인의 작품은 예리하고 청명하면서 슬프도록 간절한 인간애가 전 작품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다. 좋은 시인에게서는 필연 시의 영혼 같은 것이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본인에게 있어 김춘추의 작품에서 나는 시적 영혼을 언제나 절감한다”며 “자기 시의 신념과 가치를 잘 알고 그걸 지키며 시를 쓰고 있는 보기 드문 시인”이라고 평했다.

■ 심사평 - 심사위원 김형영 시인

"생명에 대한 경외심·시적 상상력 돋보여"

수상 후보에 오른 시인들은 면면이 우리 시단의 중진들이어서 어느 한 분을 수상자로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 상의 제정 취지에 따라 ‘가톨리시즘의 구현과 작품의 성취도’를 심사 기준으로 삼은 결과, 김춘추 시인의 시집 「등대, 나 홀로 짐승이어라」를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김 시인은 시인이기 이전에 우리나라 백혈병 치료의 권위자로 너무 유명해서, 그동안 좋은 시를 계속 발표해왔음에도 그에 걸맞은 시인으로서의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는 등단 13년차의 늦깎이 시인이지만, 이미 일곱 권의 시집을 낼 정도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이번 수상작 「등대, 나 홀로 짐승이어라」는 선적(禪的)이라 할 수 있는 천진한 감수성과 기발한 시적 상상력, 대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과 유머 감각 등이 돋보인다. 아픈 곳을 말끔히 닦아 시의 꽃으로 피워내는 원숙함도 보여줬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시에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깃들어 있다. 또 촌철살인(寸鐵殺人)과 같은 시들은 영혼에 강한 전류를 흐르게 한다.

특히 그의 시 의식과 기법, 세계관이 단단한 씨앗처럼 살아 숨 쉬는 작품 ‘쇠똥구리’는 차원 높은 시적 감동을 준다. 그것은 김 시인의 삶에 대한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똥을 빚어 빵을 굽는 / 聖오마니!’와 같은 표현은 더럽고 괴롭고 아픈 것들을 묵묵히 감싸 안는 새로운 어머니상을 창조한 빼어난 구절이다. ‘똥’을 ‘聖’으로 승화시킨 행간의 침묵도 시의 기법 면에서 지금까지 우리 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발전된 성과다.

선인장이 꽃을 피우듯, 혹은 불치병 환자에게 골수를 이식하듯 김 시인은 정서적으로 병든 현대인의 가슴에 맑은 영혼의 시를 이식해 주고 있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곽승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