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 - 각계 인사 추모글 모음

입력일 2010-02-09 수정일 2010-02-09 발행일 2010-02-14 제 2685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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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선진당 총재 이회창 (올라프)

“모든 일 주님께 맡기고 기대며 매사에 활력·영감 주셔”

김수환 추기경님, 그분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오는 기분이 듭니다.

추기경님 생전,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찾아가 뵙고 그렇지 않을 때는 찾아뵙지도 않지 않았나 하는 자괴심에도 사로잡힙니다.

제가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법조 시절의 후배법관들이 회갑기념으로 논문집을 출간한 일이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그 출판기념일에 오셔서 과분한 찬사를 해주셨습니다.

출판기념회에서는 대개 덕담을 하는 것이 관례지만 당시 추기경님의 말씀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식구들에게 “추기경님 말씀이니까 그 칭찬은 전부 진짜야” 라며 자랑한 기억도 있습니다. 제가 김 추기경님을 존경하는 것은 그분의 생각과 말씀이 단순히 성직자나 종교인의 범주를 넘어 인간의 고뇌와 철학을 담고 있고, 때로는 매우 정치적인 배려까지도 아우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야당의 대표로서, 대통령 후보로 정치권에서 부대끼다 보면 때로 심한 좌절과 환멸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김 추기경님은 예기치 않게 전화를 주셔서 “힘들죠?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고 기대세요”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직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언이지만, 그분이 말씀하시면 바로 활력이고 영감이 되었습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패배한 후 찾아뵈었을 때도 김 추기경님은 “이런 결과는 이 총재에게는 안타깝고 섭섭한 일이지만 한편 나라를 생각하면 극심한 동서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섭섭했겠지만, 그분의 말씀이어서 그런 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의무봉(天衣無縫)’ 말 그대로 한군데도 걸리고 막힌 데 없는 분이셨습니다.

김 추기경님이 집전하시는 미사에 참례하면서 때로 그분의 미사드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옆에 들킬까봐 몰래 눈물을 훔치느라 애먹은 기억이 납니다.

진실과 순수함에 대한 속인의 회한 때문이었을까요.

지금도 그분의 웃으시는 사진을 보면서 그분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전재희 (마리아)

“생명의 소중함 일깨우며 나눔·사랑의 가르침 몸소 실천”

어느덧 2월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이셨던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께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곁으로 가신지 벌써 1년이 되어갑니다. 지금이라도 온화한 미소로 “마리아, 고맙습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세요” 라고 따뜻하게 말해 주실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이 보고파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지난 2003년 2월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생명 31운동본부 출범 및 낙태아 추모미사’에서 추기경님을 뵈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연간 수십만 명의 태아들이 낙태되어도 어느 누구 하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오늘날의 반생명문화를 개탄하시며 이 땅에 평화와 새로운 생명문화가 꽃피기를 간절하게 기도하시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모습은 커다란 울림으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이후 한결같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애쓰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언젠가 추기경님과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처럼 어떠한 생명도 버려지고 않고 소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세상이 오리라 믿으며 저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라고. 김 추기경님 역시 평생 이 짧아 보이는 여행을 떠났지만 아직 도착하기에는 멀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김 추기경님이 몸소 실천해 보이신 나눔과 사랑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고 생명이라는 축복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축복의 기간 동안 추기경님의 말씀들을 잊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는 삶에 다가가도록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김 추기경님!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녕 행복했습니다.

부디 천상의 세계에서 영면하소서. 그리고 하늘에서 오래도록 저희들을 기억해 주소서.

조각가 최종태 (요셉)

“소탈하게 머무르셨던 성자”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 이후 그 빈자리를 너무나 절감하며 지내왔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어려움이 있을 땐 항상 따끔한 충고와 지혜로운 당부 말씀을 주시고, 또 직접 행동을 하셨던 분이셨지요. 최근에 김 추기경님이 안 계셔서 큰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분이 계셨다면 우리 사회의 어수선함이 좀 빨리 정리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시간이 흘러 더욱 기억나는 김 추기경님의 면모는 절대 자신을 드러내거나 높이지 않는 소탈함입니다. 사실 추기경 정도 되면 대외적으로 이미지 관리도 좀 할 필요가 있는데, 김 추기경님은 늘 있는 그대로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셨지요. 새삼 소통의 달인이셨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 추기경님께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의 기억도 짙게 남아 있습니다. 한번은 병문안을 하고 돌아왔는데, 집에 들어서고 보니 제가 위문을 간 것이 아니라 되레 위문을 받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침상에서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웠던 분이 저를 기쁘게 해주시기 위해서 온갖 마음을 쓰시며 시종일관 웃음보가 터지게 해주셨지요. 돌아와보니 저는 내내 웃다가 돌아왔더군요. 그분은 온 기력을 다하셨을텐데 말입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또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정말 성자와 같은 분이 아니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지금도 감탄을 합니다.

김 추기경님의 선종 1주기를 맞아 서울미술가회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그분 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김 추기경님은 지난 1971년 서울가톨릭미술가회 첫 전시회 시작할 때부터 거의 해마다 전시회장을 방문해 미술인들의 활동을 독려해주셨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으셨고 음악뿐 아니라 미술 작품을 보는 안목도 매우 높은 분이셨습니다. 제 개인전에 오셨을 때는, 즉석에서 작품명을 두개나 지어주시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름을 짓지 못해 고심하고 있을 때였는데 말입니다. 여인 둘을 형상화한 조각을 보시더니 곧바로 ‘골롬바와 아녜스’라고 말씀하시는게 아닙니까. 또 여인의 얼굴에 후광이 있는 파스텔화를 보시고는 대뜸 ‘영원의 갈망’이라고 작품명을 지어주셨습니다. 제가 찾지 못한 표현 그 자체였습니다. 찰나의 시간에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 보시는 역량에 또 한번 감탄했었습니다.

선종 1주기를 맞아 이 말씀을 꼭 좀 드리고 싶네요.

“김 추기경님, 미술가회원들이 마련한 전시회에 꼭 나오셔서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전처럼 악수도 한사람 한사람 다 해주시고, 천국의 소식도 전해주십시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홍보대사 양미경 (엘리사벳)

“세상에 생명의 빛 주신 분”

한마음한몸운동본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햇살 따가왔던 2004년 여름이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주교님 집무실에서 임명장을 받을 때만 해도 선의를 가지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에 함께한다는 막연한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처음 헌미헌금봉헌의 달 포스터를 촬영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선의의 생각을 현실로 옮길 수 있다는 작은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특히 백혈병어린이돕기를 위한 ‘조혈모세포기증 거리캠페인’에 함께하면서 나의 작은 노력이 한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 기쁨은 배가 되었습니다. 이후 몇몇 행사에 참여하면서 한마음한몸운동본부와 함께 활동하는 것이 나에게 점점 더 큰 기쁨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껴왔습니다. 특히 지난 2008년 대학교에서 전공하던 ‘사회복지학’ 과정 중 실습을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하게 되면서 본부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본부의 설립자가 바로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셨고, 각막기증과 장기기증 신청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아오신 추기경님의 삶에 대해선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장기기증까지 신청하셨다는 것은 제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제가 그동안 고민해온 장기기증을 결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2월 16일 선종하시면서 ‘각막기증’을 실제 하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은 아직도 제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그분께서 생애의 마지막에 행하신 이 거룩하고 위대한 행위는 그야말로 세상에 ‘생명의 빛’을 선사하신 것입니다.

김 추기경님의 선종 이후 본부로부터 작년 한 해 동안 장기기증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가 지난 20년간 참여했던 수를 훌쩍 넘어섰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그 소식이 엄청난 소식이기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김 추기경님이 남기신 ‘생명의 빛’은 세상을 밝게 비추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 추기경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나 구체적인 인연은 없었지만, 각막기증을 통해서 그분의 삶에 동참하겠다는 생각은 저로 하여금 그분과의 친밀감을 극대화 시켰습니다.

올해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와 함께 장기기증캠페인에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국민 한사람이라도 더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도록 도와, 김 추기경님의 아름다운 행위 안에서 모두가 한마음 한 뜻이 되는 행복한 세상을 이룰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뜁니다.

MBC 아나운서 이정민 (체칠리아)

“사회 정의구현에 온 힘 다해”

꼭 1년 전,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 당시 가톨릭신자뿐 아니라 전 국민이 보여준 추모 열기에 크게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선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분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당시 국민들이 보여준 관심과 사랑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 힘은 바로 당신에게서 뿜어져나온 끝없는 따스함이 아닐까 합니다. 눈빛, 표정, 음성 하나에서도 한결같이 묻어나는 따스함은 추기경님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떠나신 이후로도 줄곧 우리 모두는 당신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의 그 미소와 말씀을 더욱 그리워하나 봅니다.

추기경님은 존재 자체로서 하느님을 느끼고, 하느님에 대해 생각하고, 하느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신 분이셨습니다.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분이셨습니다. 특히 저에게는 ‘선교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신 최고의 모범이셨습니다. 저도 신앙인으로서 또 아나운서로서 대중들의 가슴을 울리는 소식을 전하고 생활 안에서 실천함으로써 하느님을 전하고픈 소망이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은 말만으로 일방적으로 지도하고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따라하고 싶도록 삶으로써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김 추기경님 당신을 이 시대 최고의 리더라고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당신의 미소가 당신의 지혜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우리 사회의 정의구현을 위해 큰 바람막이와 기둥이 되어주셨던 그 모습이 그립습니다.

지금 저희 곁에 계신다면 추기경님과 함께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소박한 서민들의 삶, 구수한 우리네 삶의 이모저모를 서로 나누며 추기경님의 혜안이 담긴 말씀과 웃음 가득한 재담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 추기경님, 당신이 남기신 감사와 사랑, 나눔의 여운이 더욱 큰 울림으로 번져나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끝없이 성장하고 드러나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