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특별기고] 최석우 몬시뇰의 선종을 슬퍼하며/김송현 간디학교 이사장

김송현·간디학교 이사장
입력일 2009-08-12 수정일 2009-08-12 발행일 2009-08-16 제 266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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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적 품위에 사랑·존경심 가져
김송현 간디학교 이사장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에 이어, 얼마 전 최석우 안드레아 몬시뇰이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최 몬시뇰과 오랫동안 그렇게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학자적 무게와 성직자로서의 품위에 항상 사랑과 존경심을 보내던 터였다.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의 태두 최 몬시뇰을 처음 만나뵙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 서울 신문로 ‘한글회관’ 옆 어느 허름한 사무실에서였다. 사무실 문에는 ‘한국교회사연구소’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최 몬시뇰은 나에게 교회사 연구 논문의 발췌문 영역을 부탁했다. 제의를 기꺼이 수락했다. 이후 오랜 기간 동안 「한국교회사 논문집」, 「교회사연구」 등에 실린 논문의 발췌문을 영역하는데 신부님을 도와드렸다. 당시 연구소원이던 차기진 박사가 중간에서 함께 돕기도 했다. 논문출판 일을 돕고 있는 동안 신부님은 종종 ‘한글회관’ 근처 허름한 식당에서 술과 밥을 사주시며 교회사에 관해, 천주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 논문번역 일을 계기로 나는 우연찮게 골롬반회의 브레난(Robert Brennan) 신부님과 메리놀회의 릴리(Robert Lilly) 신부님과 함께 103인 한국순교성인의 영문번역 일도 떠맡게 되었다. 이것이 ‘성 황석두 루가 서원’에서 출간된 「The Korean Martyr Saints」이다. 신부님 덕분(?)에 번역 일을 통해 얼마간 교회에 봉사한 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다. 서울에서 사는 동안 명동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사무실로 찾아가 인사드리곤 했지만, 10여 년 넘게 서울을 떠나, 깊은 시골 산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평안한 안식을 영원히 누리시길 빈다.

김송현·간디학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