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모성월 특별기고/이홍근 신부] 성모 발현과 사계시

이홍근 신부<원로사목자·전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입력일 2009-05-26 수정일 2009-05-26 발행일 2009-05-31 제 2650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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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사계시는 교회의 보편된 가르침 거스르지 않아
사계시는 특수 상황에서 신앙의 실천 방법 제시
교회는 합당한 조사를 통해 발현 등 인정하기도
이홍근 신부
교회는 5월을 성모성월로 정해 모든 신앙인들이 신앙 모범이신 마리아를 기리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은총을 간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본지는 성모성월을 보내며 성모신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성모 발현과 사계시에 대해 알아보는 특집을 마련한다.

필자 이홍근 신부는 대구대교구 원로사목자로 대구대교구 사목연구원 원장,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하느님의 백성과 구원의 신비」 「영성생활 시리즈」 「예수성심 신심과 성시간」 등이 있으며, 역서에는 「가톨릭 전통과 그리스도교 영성」 「영성 신학」 「교회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사계시란 무엇인가?

계시란 하느님께서 어떤 이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과거나 현재 또는 미래의 어떤 사실을 초자연적 빛으로 밝혀 줌을 뜻한다. 계시의 내용은 하느님 자신이거나 인간의 구원에 필요한 진리(신앙의 대상)이고 계시의 목적은 하느님 당신의 영광을 드러냄과 인간의 구원이다. 하느님은 당신 친히 또는 예언자, 사도 및 성경 기자들을 통해 인간에게 어떤 진리를 밝히신다. 하느님의 계시는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로 나눌 수 있다. 공계시는 마지막 사도의 죽음과 함께 끝나고 교회에 위탁되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이 믿어야 할 신앙의 기초가 된다. 계시의 완성자요 충만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또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공계시는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만민을 구원하기에 충분한 진리이므로 그 이상의 또 다른 공계시는 필요하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이 공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을 통해 가르치고 보존하고 전달하는 신앙의 유산이다. 그렇다고 사계시 즉 종속적이고 보조적인 계시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실상 교회에서는 거의 어느 시대나 사계시를 받는 이들이 있었다.

또 사계시가 교회 전례 축일 제정에 이바지 한 일이 있는데 성녀 대 데레사와 십자가의 요한 같은 신비가의 경우이다. 현대에 들어와 교회의 교도권은 성모 발현과 관계되는 사계시를 인정한 바 있다.

성모 파리 발현과 관계된 기적의 메달(1830)과 라 샬레트(1846), 루르드(1858), 파티마(1917)와 관계된 메시지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사계시는 결코 믿어야 할 새로운 교리나 지켜야 할 새로운 계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 생활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치 성령의 은총이 개별 그리스도인을 감도함으로써 신앙생활을 지도하듯, 하느님의 영은 사계시 기적 등 특은을 통해 교회를 지도함으로써 교회의 선익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사계시는 변천하는 시대의 특수 상황에서 신앙이나 윤리에 관한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공계시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재조명할 뿐 아니라 교회 안에는 항상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계시며 교회를 인도하고 보호하심을 더욱 잘 드러낸다. 공계시가 신앙의 대상인 교리를 가르치는 기능을 수행한다면 사계시는 어떤 지시사항을 전달한다. 따라서 공계시의 내용은 믿어야 하나 사계시의 내용은 실천되어야 한다. 교회는 사계시와 관련된 사건을 합당히 조사한 후 그 사실이 믿을 만하고 또 오류나 기만의 개연성이 없다고 판단 할 때 비로소 그것을 인정한다.

1931~1950년 사이에 22곳의 성모발현 중 오직 벨기에의 보랭과 바늬의 발현만 인정하고 있으며 6곳은 미결 중, 나머지 14곳은 부인됐다.

이와 같은 교회 인정은 고찰된 계시가 신앙이나 윤리에 어긋나는 것을 포함하지 않음과 계시 내용이 공포되어도 좋다는 것과 신자들은 그것을 조심스레 믿어도 좋다는 허가가 주어졌음을 뜻할 뿐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인정된 사계시를 신자들이 사도신경의 신앙개조처럼 즉 공적계시처럼 믿을 의무는 없다. 사계시는 그 내용이 언제나 성경과 사도전승 및 교회의 보편된 가르침에 일치하고 그것을 통해 교회에 유익을 주고 하느님의 영광을 증진시킬 때 진실한 것이 된다.

발현, 예언, 기적 등과 관련된 사계시가 교회신앙 생활에 유익이 됨은 사실이나 초대 교회 시대부터 카리스마에 대한 관심은 많은 이단을 낳았다. 또 성령의 감도를 교회의 권위와 지도 위에 놓음으로써 특은의 소유자와 교도권 간에는 흔히 긴장 관계가 조성되곤 했다. 남달리 특은을 구하는 것은 불건전하고 위험한 소치이다. 그것은 신비 현상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흔히 오류나 기만에 빠져 신앙생활에 큰 해독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가 사계시를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고 실제로 그것이 신앙생활에 좋은 열매를 내는 경우라면 신자들은 인정된 사계시에 유의하고 성령이 그것을 통해 가르치는 실천적 교훈을 배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모 발현과 신앙생활

발현이란 어떤 인격적 존재나 사물이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방법을 초월한 어떤 비상한 방법에 의해 어떤 이의 눈이나 상상에 나타나 보이는 현상이다.

이제 성모 발현과 그것에 관계된 메시지(사계시 혹은 특수 계시)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는 사계시에 대한 가치를 무시하거나 그렇다고 과장해서도 안 된다. 성모 발현 사실과 거기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교회의 신앙 유산에 보탬이 되는 것은 없으나 그것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계시인 한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느님은 인간 구원에 필요 없거나 무관한 사실을 계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모 발현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신앙인들로 하여금 복음의 진리를 재발견하고 실천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발현 사건들과 관련시켜 신앙이나 신심을 표현하기 전에 교회는 그 사건을 법적으로 조사하여 진위를 밝혀야 한다. 19세기 이후 오늘날까지 성모 발현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잠시 살펴보자.

성모 발현과 그것에 결부된 기적과 메시지는 수많은 불신자들에 대한 도전이었다. 17세기 이후 자유주의, 합리주의, 유물론 및 인본주의와 20세기 과학 만능사상은 하느님과 신앙, 교회와 구원의 진리를 버렸거나 부인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합리주의자들은 복음서의 모든 기적을 날조된 것이나 신화로 생각했다.

교회는 신자들이 믿고 구원받기에 넉넉한 계시진리(공적계시)를 보존하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발현이나 메시지나 기적 등이 왜 또 필요한가. 신앙을 잃은 시대, 하느님을 등지고 사는 세상을 구하는 비상한 방법이 아닌가? 즉 하느님께서 주시는 증표는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비상한 은사이다. 불신자들과 죄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잃었던 신앙을 일깨우기 위해 보이시는 과분한 은혜이다.

우리는 1531년 멕시코에 있었던 과달루페 성모 발현을 알고 있다. 발현이 인정된 후 불과 8년 만에 당시 800만 인구 중 700만이 세례를 받은 사실은 하느님께서 비상한 방법으로 베푸신 크나큰 구원의 은총이 아니겠는가?

실상 그리스도께서는 백성들을 신앙에로 초대하여 구원하시려고 공생에 동안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이때 증표는 약한 인간의 신앙을 키워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도들은 수많은 기적, 더욱이나 부활한 그리스도를 목격하고 그분에 관해 끝까지 증언한 이들이 아닌가? 성모 발현과 기적, 메시지는 불신자들을 신앙에로 이끌어줄 뿐 아니라 신자들의 생활에도 자극제가 되고 활력을 준다.

성모 공경을 위한 순례에 참여하는 그리스도 신자들의 신앙 체험은 매우 풍요롭고 다채롭다. 평소 열심하지 못한 이들도 루르드나 파티마, 메주고리에를 순례한 후 신앙생활에 열기를 띄고 생활을 개선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흔히 구원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재생의 기쁨을 맛본다. 성모의 전구하심과 성령의 인도로 그리스도와 더욱 친밀해지고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체험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물리적 신체적 기적(병의 치유)보다 윤리적 영적 기적(회개, 내적 변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성모님은 단순히 당신 자신을 현시하러 오지 않는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모친이요 교회의 능하신 어머니로서 당신 아드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러 오신다. 그분의 메시지는 경고와 호소와 간청으로 차있다.

“너희는 세상의 죄악을 슬퍼하고 회개하라. 닥쳐올 징벌을 피하도록 보속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라.”

이것이야 말로 신구약 성경의 공통된 가르침 그대로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예언자들의 애끓는 목소리를 숱한 예언서를 통해 듣고 있지 않은가? 또한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 주님의 말씀, 사도들의 교훈, 수많은 전교사들과 하느님의 종들이 부르짖는 절규는 한결같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회개는 하느님의 백성이 세상 끝날 때까지 걷는 길이다. 즉 그리스도인의 항구적인 생활 태도이다. 회개는 신앙의 전제 조건인 동시에 받아들인 복음을 활성화시키는데 필요한 요건이다.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는 이는 그 누구나 성모를 하느님의 모친이요, 우리의 어머니이며 능하신 전구자로 여기고 그분을 통해 전달되는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회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하느님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보다 더욱 위대하고 능한 예언자와 전구자가 어디 있겠는가?

사계시는 그 내용이 언제나 성경과 사도전승 및 교회의 보편된 가르침에 일치하고 그것을 통해 교회에 유익을 주고 하느님의 영광을 증진시킬 때 진실한 것이 된다. 순례자들이 루르드 동굴에서 기도하고 있다.
사계시는 새로운 믿을 교리나 계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신자들이 과달루페의 성모 벽화가 그려진 성당에서 기도를 바치고 있다.

이홍근 신부<원로사목자·전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