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10) 도미니코 (하)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본당 주임)
입력일 1999-12-05 수정일 1999-12-05 발행일 1999-12-05 제 217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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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과 설교 조화롭게 통합
복음화 영성의 근원과 모범 제시
“공부는 사도직 준비의 중요 요소” 강조
3. 도미니코의 영성

성 도미니코는 설교 수도자들의 영성의 기초를 무엇보다 관상에 둔다. 그 관상은 세상과 격리된 채 이루어지는 은수적 성격을 띤 것이 아니고 사도직 활동과 조화를 이루는 선교적 차원의 것이다. 설교는 관상의 결실을 전하는 것이며 공부는 설교준비를 위한 관상의 방편이다. 그리고 성인은 설교자들의 삶의 전형을 사도들의 선교활동에서 찾고자 한다.

3.1 관상과 활동의 조화와 균형

도미니코는 열렬한 기도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사도직 활동을 병행하는 수도회, 즉 관상과 설교활동이 조화롭게 통합된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의 수도회가 설립되던 13세기 초에는 두 가지 유형의 수도회들이 있었다. 한 유형은 봉쇄적 관상수도회이고 다른 한 유형은 활동에 전념하던 수도회였다. 물론 그 전에도 시토회 등 일부 수도회에서 관상과 활동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없지 않았으나 소극적 자세에 머물렀던 데에 비해 도미니코는 그 두 측면의 조화와 균형을 이룬 수도공동체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관상하라. 그리고 관상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라』 설립자의 정신을 요약하는 이 모토는 관상의 중요성과 사도직의 소명을 통합하는 수도회의 사명과 목적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과연 첫 회헌(1505)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 수도회는 시초부터 관상한 것을 알리고 설교하며 가르치는 것을 특별히 본질적이고 원칙적인 목적으로 삼아왔다』

3.2 사도시대의 선교 영성에 복귀

도미니코는 복음화 영성의 근원과 모범을 예수께서 제시하셨고 사도들이 실천한 선교활동 모습에서(마르 6, 7~12 참조) 찾고자 하였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두 명씩 제자 파견, 식량자루와 금전을 지니고 다니지 말 것, 필요한 음식을 구걸하는 것 등이다.

도미니코가 살던 12, 13세기 교회의 상황은 사도시대 및 초기교회의 것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받을 만큼 변형되어 있었다. 그는 그러한 상황의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사도들의 방식을 따르기로 결심했으며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동참을 바라면서 초대하였다. 그의 그러한 삶의 결단은 복음적 매력을 과시하여 설교의 효과를 높이려는 데 있지 않았다. 그 동기는 보다 단순했으며 깊었다. 그는 사도들의 삶의 모범에서 올바른 영적 가치를 보았고 그러한 모방에서 자신이 설교하는 그리스도의 삶과 보다 긴밀한 일치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복음적 영감이 일으킨 결과는 탁발(托鉢:수도승이 돌아다니며 동냥하는 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난한 삶과 충만한 그리스도인 생활의 쇄신이었다. 도미니코는 참된 설교가는 좥걸인좦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전하려는 말씀은 기도로써 하느님께 청하고 육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은 사람들에게 겸손되이 동냥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참된 설교가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가 설교가로서 일을 시작할 때 채택한 탁발제도는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 줄 사람들의 관대함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지원받을 「권리」를 찾지 않았다. 그는 자유로운 지원을 받고 싶었다.

도미니코와 그의 동료들은 매우 단순한 자세로 규칙을 지키고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육화한 사도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미니코가 지향하고 따르고자했던 사도들의 본질적 전형은 머리누일 자리조차 없이 떠돌아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셨다.

3.3 설교: 관상의 결실 선포

도미니코가 설립한 수도회의 카리스마의 첫째가는 본질적인 요소는 설교이다. 이 설교는 하느님의 말씀·진리를 선포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용서와 화해,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다. 설교는 궁극적 목적인 인간들의 구원을 위한 봉사의 방편이다. 도미니코와 그 동료들은 설교를 통해 모든 믿는 이들이 복음화 되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깨닫도록 하는 데 진력하였다. 그러나 설교자들 자신이 먼저 복음화 될 때에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음을 잘 알았다. 도미니코가 지향하는 설교 영성의 특징은 이러하다.

1) 설교는 항구하고 지속적이야 한다. 2) 설교는 공동체적이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 전체가 설교하는 것이고 이로써 지속성과 항구성이 유지될 수 있다. 3) 설교는 성령의 이끄심과 하느님 말씀의 풍요로움으로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은 설교자의 영적 자세에 관한 것이다. 설교자는 권력을 지닌 자가 아니라 카리스마를 지닌 영적 스승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에 헌신하기 위해서는 관리나 행정직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4) 설교는 교의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신학적이고 관념적인 것이란 뜻이 아니고 초기 사도들이 했던 것처럼 그리스도로 인해 주어진 구원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5) 설교는 긍정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윤리적 권고나 보속에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선물임을 선포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선하심을 알리는 것이다. 6) 설교는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한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는 수도자의 삶의 교본이고 하느님 사랑에 관한 책이다. 바로 그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다. 7) 설교는 예언적이어야 한다. 설교는 깊은 관상과 하느님 말씀의 빛 안에서 해석될 수 있는 미래를 비추어 줌으로써 하느님의 구원의 뜻을 밝히고 역사 안에 존재하는 시대의 징표를 알려야 한다.

3.4 공부: 관상의 방편

도미니코는 그의 수도자의 생활에서 또 하나의 중요 요소로 공부를 채택하였다. 그에게 공부는 진리에 대한 관상이고 성화되는 길이며 사도직 준비를 위한 필수적 수단이다. 다른 수도회들도 공부의 필요성을 간과하지 않았지만, 도미니코 수도회가 역설하는 공부의 독특성은 사도적이라는 것이다. 도미니코 가족은 공부를 통하여 마음으로 하느님의 다양한 지혜를 묵상하고 교회와 모든 이를 위한 복음화의 방편으로 설교 봉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사도적인 공부란 공부 자체에 대한 정신적 만족감에 빠질 수 있는 지식에 대한 심미적 추구라는 유혹을 벗어나 머리 뿐 아니라 기도의 마음도 함께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식별을 위한 빛을 받고 식별된 진리를 전하려는 마음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규칙과 함께 프레몽트레회의 관습을 따르던 도미니코와 그 동료들은 1216년의 제 1차 참사회 및 220년의 총 참사회에서 그들의 카리스마 및 영성의 특성을 부기하였다. 그 중에서 수도회 제일의 목적인 인간구원을 위한 설교에 필히 요청되는 공부에 관한 사항이 부각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독서(lectio divina) 및 육체 노동 대신 거룩한 진리에 대한 면밀한 공부의 필요성, 공부에 도움되는 침묵 강조, 거룩한 진리를 공부하는 데에 방해되지 않도록 간결하고 경쾌한 합창일도를 바침, 병고 뿐 아니라 공부와 사도직의 이유로도 관면을 주는 것 등이 그것이다.

도미니코가 엄격히 부과한 거룩한 진리에 대한 공부는 설교수도자들로 하여금 관상적 태도를 갖추게 했고 그 관상의 결실을 설교를 통해 전하도록 한 것이다. 그들은 성서 말씀 안에서 뿐 아니라 역사 안에서 뜻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표지를 또한 관상하고 식별하고자 했다. 그들에게 공부가 카리스마 식별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며 사도적인 것이라는 것이 최초의 회헌에서부터 잘 나타난다. '우리는 주로 이웃의 영혼에게 유익이 되게 할 목적으로 열심히 또 최고의 열성을 가지고 공부해야 한다'(서론) '형제들이 신심을 잃지 않고 아무 방해를 받지 않고 공부하도록 교회에서 바치는 모든 시간경은 간결해야 한다.(4절).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