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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사목 50년 발자취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08-10-12 수정일 2008-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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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올해를 ‘한국 노동사목 50주년’으로 지정한 것은 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이하 가노청, J.O.C)를 한국 노동사목의 효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사목의 시작, 가노청의 태동과 과거 활약 등을 돌아본다.

1958년 : 한국 가톨릭 노동청년회는 1958년 1월 서울대학교 병원의 간호사 박명자(마리아)가 이해남(요셉)을 통해 가노청을 접하게 되면서 태동됐다. 이어 서울대학교 병원 간호사 10여명이 모임을 갖기 시작, 가노청 국제본부에서 2개월 동안 지도자 훈련을 받았던 박성종 신부가 지도를 맡았다가 11월 가노청 설립자 벨기에의 카르딘(Joseph Cardijn) 신부가 한국교회를 방문함에 따라 공식적으로 창립됐다.

이후 한국 가노청은 1959년 6월 빈민촌 무료 진료를 시작으로 대외 활동을 전개했고 안양 본당에 처음으로 가노청 팀을 설립했다.

1960년대 : 1960년 7월 전국 조직 본부를 서울 경향신문사에 설치하고 이듬해 서울, 대구, 전주, 대전교구의 남녀 대표들이 모여 제1차 전국 평의회를 개최한다. 또 주교회의에서 평신도 사도직단체로 정식 인준을 받게 되면서 초대 총재로 노기남 주교가 선임됐다.

이들은 1960년 선면 공업 주식회사와 드레스 미싱에 노조를 결성했고, 이어 ‘제지 공업’ 임금 인상 사건 등에도 관여했다. 또 넝마주이들의 의식주 문제와 정서 교육을 위한 교도사업과 노동자를 위한 보리싹 식당 운영, 식모 문제 해결을 위한 여론 조사, 서독 파견 광부들을 위한 활동과 해외 이민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 윤락 여성 선도 및 근로 재건대 활동 등도 실시했다.

1967년 당시 김수환 주교가 2대 총재로 취임, 1968년 강화도 심도 직물 섬유노조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가노청 회원들이 주축이 돼 노조를 결성하자 회사 측에서 탄압을 가한 것으로 한국 주교단에서는 ‘사회 정의와 노동자의 권리 옹호를 위한 성명서’와 공동 교서 등을 발표, 회사 측에 대처했다.

1970년대 : 가노청은 1970년대에 접어들며 광산 노동자 실태 조사, 여차장 삥땅에 관한 심포지엄, 박신정 사건, 천요셉 산업 재해 사건, 한국 모방 퇴직금 체불사건, 삼립식품 사건 등 노동현장에서 노동 조건 및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구체적 활동을 벌였다.

이에 정부와 기업은 가노청을 지속적으로 탄압했는데 특히 1974년 지학순 총재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강제 연행된 후 가노청 회원들에 대한 정부와 회사의 탄압이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 가노청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노동자들도 회원으로 받아들여 조직을 확장했고, 각 지역별로 훈련회를 개최해 노동운동에 대한 재교육을 실시한다.

1980년대~90년대 : 1984년 가노청은 ‘가톨릭 노동 사목 연구소’를 창립해 노동 현실에 대한 실태 조사와 노동법 개정연구, 노동 문제에 대한 초보적 권리 자각 활동을 전개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에 참여하고 7,8월 열린 노동자 대투쟁에서는 경제 성장과정에서 묵살됐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며 노동자들의 자주성을 회복한다.

90년대 들어 가노청은 위기상황을 맞는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며 노동 청소년과 청년은 크게 감소했고 노동 형태가 유연해지며 노동자 인식 또한 희박해졌다. 이에 가노청은 노동운동 중심에서 생활운동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따라서 1994년 5월, 학원가가 밀집한 노량진에 가톨릭 청소년 상담 센터를 개소했다.

2000년대 : 가노청의 생활운동은 2000년대 들어 더욱 활기를 띈다. 2002년 6월, 회원 확장과 가톨릭 홍보 그리고 쉼터 제공을 목적으로 노량진에 있는 가노청 전국 본부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찻집을 마련했다. 2005년 가노청은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이어지는 노동 청소년·청년들의 노동형태와 청년층 실업 등에 관심을 갖고 대책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

사진설명

▲1958년 11월 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원들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첫 선서식을 열었다.

▲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원들이 선서식 후 기념 촬영했다.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