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거룩한 순교자들의 피, 오늘날 신앙을 꽃 피우다

입력일 2008-09-07 수정일 2008-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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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성월 특집] ① 순교 형태로 보는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시성 추진대상 순교자 124위 중 61.3% '참수형'

대역죄에 내렸던 형벌…천주교에 혹독했던 현실 짐작

신앙선조의 순교 정신과 행적을 기리는 한국교회만의 특별한 절기, 9월.

순교자성월을 맞이해 가톨릭신문은 현재 시복시성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에 주목하고,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다.

기획은 독자들의 보다 쉬운 접근과 이해를 위해 ▲순교 형태로 보는 ▲지역으로 보는 ▲신분으로 보는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등으로 3회에 걸쳐 진행된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순교자성월, 여러 가지 형태의 순교자 분석을 통해 우리 124위 신앙선조들의 아름다운 향기를 느껴보자.

거룩한 순교자들의 피, 오늘날 신앙을 꽃 피우다거룩한 순교자들의 피, 오늘날 신앙을 꽃 피우다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순교 형태는 다양했다. 전체적으로 참수가 76명으로 가장 많았고, 장사가 15명, 교수 11명, 능지처참 2명, 군문효수 1명, 옥사 12명, 순교형태를 알 수 없는 순교자는 7명이었다.

초대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테르툴리아누스는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라고 했다. 처참한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증거하며 생을 마감했던 124위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9월 한달을 묵상한다.

▧ 참수(76명)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순교형태로 분석해보면 ‘참수’가 76명(61.3%)으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윤지충 바오로와 함께 권상연 야고보,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강완숙 골룸바 등 많은 순교자들이 참수로 절명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 특별위원회가 펴낸 약전에는 참수의 경우, ‘칼날을 받았다’고 표현돼 있다.

참수는 목을 베는 처형방법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방법 중 하나이며,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역시 참수형이 있었는데 도적이나 역적과 같은 ‘대역 죄인’을 위한 사형제도였다.

양반이라면 유교사상에 따라 부모가 물려주신 신체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사약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인들의 대다수가 참수형을 선고받은 것을 보면, 당시 천주교인들에 대한 혹독한 평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후에는 ‘먼저 죄인의 목을 베고 나중에 보고하라’는 이른바 ‘선참후계령’이 적용돼 지방관이 마음대로 천주교인들을 살해하고도 적당히 보고를 생략, 수많은 무명 순교자가 생겨나기도 했다.

▧ 장사(15명)

장사로 죽음을 당한 순교자들은 원시장 베드로, 윤유일 바오로, 최인길 마티아 등 밝혀진 숫자만 124위 중 총 15명(12.1%)에 달한다.

말 그대로 매를 맞아 죽음을 당한 것이다. 장사로 숨을 거둔 순교자들을 보면, 대부분 죽을 때까지 매질을 받게 되는데 뼈가 부러지는 것은 물론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큰 돌을 들어 가슴을 여러 번 내리치거나, 불두덩에 달궈진 몽둥이로 짓찧는 등 형태가 참혹하고, 다양하며 여성 또한 매를 맞아 순교하기도 했다.

▧ 교수(11명)

참수형과 장사를 제외하고도 교수형으로 생을 마친 순교자들도 있었다. 박취득 라우렌시오, 유중철 요한, 유문석 요한, 이봉금 아나스타시아 등 11명(9%)이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교수형은 새끼줄로 목을 졸라 죽이는 형태로 행해졌는데 공개 장소에서 정해진 격식에 따라 죽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조선 후기 천주교인들의 경우 사령들이 옥중에서 임의적으로 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참수형보다는 약한 형벌로서 시체를 매장할 수 있었으며, 특히 박해가 가열되면서부터는 참수형보다 손쉬운 교수형이 많이 이뤄졌다. 교수치명이라고 한다.

▧ 능지처참(2명)

조선시대 모반이나 대역죄를 지은 중죄인에게 행하던 가장 잔인한 형벌로서 124위 중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윤지헌 프란치스코 등 2명이 능지처참형으로 순교했다.

죄인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사지를 잘라내고 마지막에 목을 베어 여섯 토막을 내어 죽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몸을 토막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체 토막을 보여주어 대중에게 경계심을 주는 부가형이 가해졌다.

능지처참은 조선 고유의 것이 아닌 대명률에 따른 형벌이었고, 참수형보다도 잔인했다. 천주교인들을 처형할 때에도 능지처참형은 흔히 사용되지 않았지만 유항검, 윤지헌 등이 ‘서양 선박을 불러들여 나라를 해롭게 하는데 앞장섰다’해 반역죄를 선고받고 이 형벌을 받았다. 가족들 또한 유배형을 받고 가산은 몰수된다.

▧ 군문효수(1명)

사형수의 머리를 베어 장대에 매다는 형벌이다.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고려·조선의 5형 중에서 사형에, 사형 중에서도 참수형에 속하는 것으로 대역죄인 등 중범자들에게 행했다.

능지처참의 경우에는 머리를 거두어 갈 수 없었으나 참수한 경우에는 3일이 지나면 이를 거두어갈 수 있다. 군문효수의 경우에는 머리를 군문 앞에 매단 경우는 흔치않았고 실제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시장이나 성문 누각에 매달았다.

▧ 그 외(옥사 12명, 알 수 없음 7명)

이밖에도 여러 고문들을 이기지 못해 옥에서 숨을 거둔 옥사가 12명(9.6%)이었으며, 방 프란치스코, 정산필 베드로, 송 베네딕토, 송 베드로, 이 안나, 박 프란치스코, 오 마르가리타(7명)는 정확한 순교 형태를 알 수 없었다.

사진설명

▲도끼에 목 잘리고 있는 순교자(참수). 매를 맞으며 죽어가고 있는 순교자(장사). 줄로 목을 졸라 사형하는 모습(교수). 이 그림들은 고 탁희성(비오, 조선 왕실의 마지막 궁중화가) 화백이 동양채색화로 그린 신유박해 순교자들의 모습이다.

▲124위 순교자 순교형태별 분류

오혜민 기자 gotcha@catholictimes.org

권선형 기자 peter@catholictime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