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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그리스도인 - 세계교회사 인물 100選] (37) 수도회 창설자편 (1) 베네딕토 (상)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04-11-07 수정일 2004-11-07 발행일 2004-11-07 제 2422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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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밭 뒹굴며 욕정 이겨내
동굴서 철저한 은수생활
수도공동체 규칙 만들어
「베네딕토 규칙서」는 12세기까지 서방교회 수도생활의 규칙서였으며, 유럽 수도원 생활의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하느님의 사람 베네딕토는 뛰어난 분별력과 명쾌한 표현으로 규칙서를 저술하였다. 그분의 성품과 생활을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사람은 그분이 행동으로 가르친 모든 내용을 이 규칙서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신이 직접 생활하셨던 것과는 다른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는 분이었기 때문이다』(그레고리오 대교황 대화집 중).

여기서 언급된 규칙서, 즉 「베네딕토 규칙서」는 12세기까지 서방교회 대부분의 수도원에서 지켜졌던 수도승 생활의 규칙서였으며 이후에도 서방 수도생활의 기초, 유럽 수도원 생활의 규범으로 자리잡으며 베네딕토(480?∼547?)를 사부로 여기는 수많은 수도승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사후 1500년이 흐른 지금에도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 「유럽 전체의 수호성인」, 「기술자 건축가 개간자들의 수호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베네딕토의 면모는 바로 이 규칙서를 따르는 제자들이 역사 안에서 이뤄놓은 업적을 통해서 더욱 넓혀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네딕토의 생애는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대화집 제2권에 수록된 전기를 통해 참고할 수 있는데 교황은 이 책을 통해 베네딕토의 출생부터 중요한 사건들과 배경, 그리고 죽음까지 전 생애를 묘사했다. 그는 규칙서를 직접 읽고 이를 토대로 베네딕토의 전기를 교훈적 형태로 재구성 한 것으로 풀이된다.

교회 전통에 따르면 베네딕토는 480년경 이탈리아 움브리아의 누르시아에서 태어나 547년 몬테카시노에서 사망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최근의 연구자들은 베네딕토의 생애가 490년에 시작해서 560년에 마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고 만닝(E.Manning)과 같은 학자는 몇몇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며 575년에 사망했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그의 성장 배경은 비교적 부유한 가정 출신인 것으로 알려진다. 청년기에 유학차 로마로 갔던 베네딕토는 당시 로마 상황이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음을 보고 회의를 느껴 유모와 함께 엔피데(Enfide) 지방에 있는 사비너 산들로 옮겼다.

이후 유모와의 관계도 끊고 수비아코의 한 동굴로 들어가 3년 동안 은수생활에 몰입했던 베네딕토는 이 기간동안 일체 외부와의 관계를 끊은채 음식마저도 바구니에 줄을 달아 빵을 전해받는 등 철저하게 기도에 몰입하는 생활을 했다.

이때 베네딕토가 머물렀던 동굴은 「사크로 스페코(Sacro Speco 거룩한 동굴)」라고 불리는데 가파른 절벽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외부사람의 접근이 지극히 힘들었다고 전해진다.

이집트 수도자들이 사막에서 살아간 삶의 형태를 계속 유지하면서 자신의 영혼과 대면하고 악과 어둠의 세력에 대적해 나갔던 베네딕토는 그 지역에서 목축 생활을 하며 목동들에게 설교를 하기도 했다.

부활 축일을 잊을만큼 기도에 몰입하는 수도 생활속에서 베네딕토는 욕정과의 투쟁을 겪으며 가시밭을 맨몸으로 뒹구는 등의 투쟁을 통해 욕정을 제어하고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그같은 베네딕토의 명성은 널리 퍼지게돼 비코바로(Vicovaro)의 한 수도원 원장으로 추대되는 결과를 낳았으나 베네딕토를 시기하는 이들의 음모로 인해 그는 조용히 그곳을 떠나게 된다.

이에 대해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분노에서 초탈하고 높은 인내의 경지에 이른 성덕의 표현」이라고 칭송했다.

이후 베네딕토는 수비아코에 정착 다시금 수도생활에 정진했다. 이곳에서 그는 베네딕토의 성덕을 듣고 몰려온 이들을 지도하며 특별히 12명의 지도자들로 구성된 12개의 수도 소공동체를 만들어 수도생활을 해나갔다.

베네딕토의 명성이 퍼져 나가면서 그의 명성을 시기한 인근 본당 신부가 살인 음모를 지니고 독이 든 빵을 선물하거나 수도 공동체 해체를 위해 젊은 여인들을 수도원 담안에 들여 보내는 등의 일이 발생했는데 이때 그는 모든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임을 알고 몇몇 수도자만을 데리고 새로운 곳으로 향했다.

다시금 베네딕토가 자리를 잡은 곳은 바로 몬테 카시노. 카시노(Cassino) 도시에 인접한 해발 519m의 산(Monte) 정상이었는데 이곳에서 그는 유명한 수도 규칙서를 저술하였고 여러 기적과 모범을 통해 동료 수도자들을 지도했으며 인근 주민들을 복음화시켰다.

몬테카시노는 비록 세상과는 격리돼 있었으나 다른 수도원의 수도자들이나 당대 교회의 주요 인물들이 성인의 영적 가르침을 듣고 대화를 나누고자 찾아오는 자리였다.

베네딕토는 또한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으며 사회적 정치적 일에도 관여, 야만인들의 침입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기근으로 굶주리는 이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레고리오 교황은 성인이 행한 것으로 간주한 많은 종류의 기적들을 서술하고 또한 그의 누이동생 스콜라 스티카의 기적도 언급하고 있는데 스콜라 스티카는 그의 내적 동반자이자 자매로 등장, 성인을 인간 존재의 또 하나의 새로운 측면으로 인도해 가는 역할을 한다.

베네딕토는 생전에 스콜라 스티카와 카푸아의 주교 제르마노의 죽음을 예견하는 환시를 보게 되는데 이것은 성덕의 높은 경지에 이른 베네딕토의 완성, 즉 영광스러운 죽음을 예시하는 것이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