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대 교황 레오 14세의 즉위 미사가 18일 오전 10시(한국시간 18일 오후 5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다. 교황은 미사 중 목자를 상징하는 ‘팔리움’과 교황 권위의 상징인 ‘어부의 반지’를 받고 로마의 주교이자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공식 직무를 시작한다. 전례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작된다. 교황은 동방 가톨릭 교회 총대주교들과 함께 성 베드로 무덤에서 기도하고 분향하며, 로마 주교와 사도 베드로 사이의 깊은 연결을 강조한다. 이곳에서 순교한 사도들과 신자들이 흘린 피로 교회가 세워졌음을 기리는 것이다. 이어 두 명의 부제가 팔리움, 어부의 반지, 복음서를 들고 성전 앞 광장의 제대를 향해 행렬하며 교황도 이에 합류한다. 대성당 정문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베드로의 대화를 묘사한 ‘기적의 고기잡이’ 태피스트리가 걸린다. 제대 가까이에는 로마 외곽 제나차노에서 모셔온 ‘착한 의견의 성모’ 성화가 놓인다. 미사 말씀의 전례 독서는 스페인어, 화답송은 이탈리아어로 봉독되며, 복음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선포된다. 복음 선포 후 각기 다른 대륙을 대표하는 세 명의 추기경이 교황에게 팔리움과 어부의 반지를 수여하고 하느님의 현존과 도우심을 기원하는 특별기도를 봉헌한다. 팔리움은 어깨에 걸치는 흰색 양털 띠로 여섯 개의 붉은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양 떼를 지키는 목자의 사명을 상징한다. ‘어부의 반지’는 베드로가 낚시하는 모습 혹은 열쇠를 든 모습과 교황의 라틴어 이름이 새겨진 반지이다. 즉위 미사에서 교황 오른손 약지에 끼워지는데, 초대 교황인 베드로가 “사람 낚는 어부”(마태 4,19)로 부름 받은 것을 계승한다는 의미이다. 전례는 상징적 순명 예식으로 이어진다. 전 세계 다양한 계층을 대표하는 12명의 신자들이 교황에게 순명 서약을 바친다. 이후 교황의 강론이 이어진다. 보편 지향 기도는 새 교황의 직무 시작과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지향 등으로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아랍어, 폴란드어, 중국어로 봉헌된다. 성찬의 전례와 영성체 예식에 이어 교황은 교회를 사랑과 일치 안에 굳건히 하시고, 교황 자신과 맡겨진 양 떼를 구원과 보호 안에 두시길 하느님께 청하며 기도하고 로마와 온 세계에(우르비 엣 오르비, Urbi et Orbi)에 강복을 내린다.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 미사에는 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주교회의 사무국장 송영민(아우구스티노) 신부 등이 한국교회 대표로 참석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오현주 주교황청대사도 한국 정부의 경축사절단으로 함께한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들은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 미사에 25만 명의 인파가 운집할 것으로 전망했다.
5월 17일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1873~1897) 시성 100주년이다. 성인은 성 비오 10세 교황(1835~1914)이 ‘현대 최고의 성인’이라며 존경을 표하고, 성 마더 데레사(1910~1997)가 수도명을 그녀에게서 따오는 등 특별히 추앙받았다. 그녀는 1925년 시복 2년 만에 시성된 뒤 선교의 수호성인이 됐다. 선종 100주기인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은 여성으로서는 3번째로 성인을 교회 학자로 선포했다. 이렇게 위대한 성인을 키워낸 가정은 겉으로는 평범했지만 내적으로는 특별했다. 성인의 부모가 한 날 시성 됐고, 성인을 포함한 다섯 자매 모두 수녀회에 입회했기 때문이다. 특히 성가정을 이루는 데는 성 데레사의 부모인 성 루이 마르탱(1823~1894)과 성 젤리 마르탱(1831~1877) 부부의 역할이 컸다. 부부는 평신도로서 결혼 성소의 모범을 잘 보여준다. 사실 이들은 모두 수도 성소를 꿈꿨다. 그러나 하느님의 크신 계획 안에서 각각 거절당한 두 성인은 알랑송에서 만나 1858년 결혼한 뒤 자녀 모두를 주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했고, 훗날 그 꿈을 이루었다. 성 마르탱 부부는 서로에게 신앙의 힘이 됐다. 하느님에 대해 자주 대화하며 깊은 기도에 함께 잠겼다. 매일 새벽에 미사를 참례하고 성체 조배를 했으며 성지 방문과 자선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자녀 훈육에는 엄격했다. 바른 품행과 정리 정돈, 시간 엄수, 부지런함 등을 강조하며 나쁜 버릇을 교정했다. 자녀들은 부모가 몸소 행한 신앙의 모범과 교육을 자연스레 따르게 됐다. 성 루이·성 젤리 마르탱 부부, 교회사 최초 부부 동시 시성 신앙 모범 보인 부모 따라 셩녀와 네 딸 모두 수도회 입회 성 데레사가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잃자, 아버지는 모성애까지 더해주려고 노력했다. 게다가 성 데레사가 요청한 ‘리지외의 맨발의 가르멜 수녀회’ 입회가 14세라는 어린 나이 때문에 거절당하자, 아버지는 교구 주교를 직접 찾아가 입회를 부탁했다. 이에 더해 그들은 레오 13세 교황(1810~1903) 알현 순례에 참가해 교황에게 직접 입회 허락을 청할 정도로 지극 정성을 보였다. 부녀 간의 극진한 사랑은 생애에 걸쳐 이어진다. 성 루이 마르탱이 노년을 요양원에서 보낼 때 성 데레사는 비록 수녀원에 있었지만, 그 마음은 극진했고 늘 아버지를 위해 기도했다. 성 마르탱 부부 시성식은 ‘교회와 현대 세계에서 가정의 소명과 사명’을 주제로 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기간 중인 2015년 10월 18일 열렸다. 프란치스코 교황(1936~2025)은 시성식에서 “이 성스러운 부부는 늘 가족을 위해 봉사하면서 신앙과 사랑의 환경을 창조했다”며 “바로 그것이 성 데레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교회 역사상 최초로 동시에 시성된 부부는 결혼생활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됐다. 성 마르탱 부부의 축일도 그들의 결혼기념일인 7월 13일이며 프랑스 리지외성당에 함께 안장돼있다. 부부의 묘비명에는 성 데레사의 “하느님께서는 땅보다는 하늘만큼 값진 어머니와 아버지를 제게 주셨습니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들의 성가정을 본받고자 광주대교구 가톨릭목포성지 산정동성당 제대 좌우에 성 데레사와 성 마르탱 부부의 유해가 함께 안치돼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선태(요한 사도) 주교는 5월 14일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즈음한 담화’를 발표하고, 차기 대통령에게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어 줄 것을 요청했다. 김 주교는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기본적인 몇 가지 덕목을 함께 나누고 싶다”며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 ▲통합하고 모으는 대통령 ▲평화를 일구는 대통령 ▲공동의 집 지구를 보존하는 대통령이 되어 달라고 전했다. 또한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고 돌봄으로써 나라를 이끄는 최고의 정치 지도자”라며 “새 대통령이 ‘부당한 압력과 관료적 타성을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정치(「찬미받으소서」, 181항)’를 펴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사회는 이념 갈등, 세대 갈등, 성별 갈등 등 갈등과 대립이 점점 격해지고 있다”면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통합하고 모으는 대통령’이 되어 달라고 강조했다. 김 주교는 끝으로 “우리는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매우 귀중한 순간을 맞고 있다”며 “우리 모두가 후보들의 정책들을 꼼꼼히 살피고 식별함으로써 ‘공동선 실현’에 헌신할 수 있는 후보가 뽑히길 바란다”고 전했다. 다음은 담화 전문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즈음한 담화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며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께서 축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지금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주권자들의 귀한 목소리를 모으는 선거는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꽃입니다. 엄혹한 시절에, 우리는 온갖 희생을 치르며 이 꽃을 가까스로 피워 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 꽃을 더욱 아름답고 곱게 피우려고 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모든 사람이 신성한 권리와 의무인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기본적인 몇 가지 덕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고 돌봄으로써 나라를 바로 세우고 이끄는 최고의 정치 지도자입니다. 대통령만이 아니라 국회, 사법부, 검찰, 언론 등 국가의 모든 제도와 관행도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국민을 섬기고 국민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또한 국민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는 제도나 관행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로 선출될 대통령이 국민을 더욱 섬기기 위하여 “제도를 개혁하고 조정하며 최상의 실천을 증진하고 부당한 압력과 관료적 타성을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정치(「찬미받으소서」, 181항)”를 펴기를 바랍니다. 둘째, 통합하고 모으는 대통령 대통령은 모든 국민을 통합하고 모으는 좋은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념 갈등, 세대 갈등, 성별 갈등 등 갈등과 대립이 점점 격해지고 있습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별과 상대적 박탈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사회적 약자는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특히 이주 노동자들과 난민에 대한 차별과 배척도 여전히 심각합니다. 좋은 지도자는 “광신주의, 닫힌 논리, 사회적 문화적 파편화가 증대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모든 형제들」, 190항), 다양한 목소리들이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사실 대한민국은 공화국입니다. ‘공화’는 생각이 다르고 이해가 다른 여러 집단이나 세력이 차별받거나 배척받지 않고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새로 선출될 대통령이 모든 국민과 소통하는 가운데 특히 사회적 약자에 더욱 귀 기울이며 통합과 공존의 시대를 열어 가기를 바랍니다. 셋째, 평화를 일구는 대통령 대통령은 평화를 일구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입니다. 남북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에 매우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고, 국가의 번영과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남북의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한 고된 여정에서 우리는 여전히 힘의 논리와 무력 증강의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무기와 폭력이 해결을 가져다주기보다는 오히려 새롭고 더욱 심각한 분쟁을 조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60항). 무력이 아닌 평화적 수단 곧 대화와 타협으로 남북의 긴장과 갈등은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제 새로 선출될 대통령이 한반도가 정전을 상황을 넘어 평화로, 분단을 넘어 통일로 나갈 수 있도록 참평화를 일구기를 바랍니다. 넷째, 공동의 집 지구를 보존하는 대통령 우리 공동의 집 지구가 죽어 가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점점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탐욕과 이기심이 빚어 낸 비극입니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다음 세대 인류의 삶도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고 파괴될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이 세상을 약탈하지 않고 보호”하고, “오염과 파괴가 아닌 아름다움의 씨앗을 뿌리”며, “가난한 이들과 지구를 희생시키면서 이득만을 추구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야 합니다. 따라서 새로 선출될 대통령이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실천하며, 생태와 환경 보호를 위하여 힘쓰기를 바랍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매우 귀중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대한민국의 앞날을 좌우합니다. 우리 모두가 후보들의 정책들을 꼼꼼히 살피고 식별함으로써, ‘공동선 실현’에 헌신할 수 있는 후보가 뽑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한층 더 성숙하고 또 더욱 아름답게 꽃피우기를 빕니다. 2025년 5월 14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선태 주교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후 가톨릭교회는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개척한 길, 즉 더 포용적이고 더욱 개방적이며 투명한 교회를 계속 지지할 것인지, 아니면 시노달리타스라고 불리는 그의 구상에서 한발 물러설 것인지 133명의 추기경은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다. 그리고 5월 8일, 추기경들은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함으로써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을 이어가기로 했다. 상당수 추기경, 프란치스코 교황 방향성 지지…공의회 정신 이어갈 인물 선택 새 교황, 복음적 원칙 따라 ‘희망의 여정’ 계속할 뜻 천명 예견된 결과 이러한 결과는 예상된 것이었다. 투표권을 가진 80세 미만 추기경 중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을 지지하는 후보가 선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또 다른 근거도 있다.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NCR)지(誌)가 추기경들의 성향에 대해 집계한 바에 의하면, 133명 중 106명이 프란치스코 개혁의 핵심인 시노달리타스를 지지했다. 레오 14세 교황이 된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서 교황청 관료제의 한가운데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명확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시노달리타스는 교회를 더 포용적이고 참여적인 구조로 만드는 시도”이며 “지금 교회를 짓누르고 있는 극단적 분열을 해결하는 핵심 열쇠”라고 강조했다. 5월 9일 미국 주교들은 기자회견에서 추기경들이 어떤 교황을 원했는지를 요약했다. 시카고대교구장 블레이즈 J. 수피치 추기경과 뉴욕대교구장 티모시 M. 돌런 추기경 등은 복음 선포의 열정이 가득하고 교회의 일치를 강화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향성과 개혁을 이어갈 사람을 교황으로 원했다고 밝혔다. 수피치 추기경은 “프란치스코의 사명과 삶, 전통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모든 것들,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까지도 계승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를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공의회, 사회교리 레오 14세 교황이 5월 10일 추기경단을 대상으로 행한 첫 연설은 그의 교황직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요약한다. 첫째,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을 ‘교회의 삶과 활동을 이끌어온 복음적 원칙들’이라며 “이 귀중한 유산을 받아들여 믿음에서 태어나는 희망으로 여정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를 잘못된 길로 이끈다는 비난에 대해 그의 사명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둘째,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보편교회가 수십 년간 따라온 여정에 대해, 완전한 헌신을 새롭게 다짐하기를 바란다”며 공의회 정신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이어 그리스도 선포의 우선성, 선교적 회심, 시노달리타스, 신앙감각(sensus fidei)에 대한 경청,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 현대세계와의 대화 등 공의회 정신 구현의 원칙들을 밝혔다. 셋째, 사회교리의 현대적 적용을 통해 새로운 세기의 도전에 응답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는 최초의 사회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한 레오 13세 교황에서 따온 레오 14세라는 교황명에서 더 분명하게 확인된다. 인공지능(AI) 혁명을 19세기 산업혁명에 비견한 그는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의 증진을 위해 교회의 사회교리를 새롭게 적용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레오 14세 교황직의 또 한 가지 방향성은 ‘평화’다. 5월 8일, 교황으로서의 첫 축복 메시지가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이었고 10일 첫 주일 삼종기도에서도 “전쟁은 다시는 안 된다”며 전 세계 모든 나라들, 특히 강대국들을 향해 평화를 위한 노력을 촉구했다. 평화는 사회교리의 가장 핵심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노드 교회 건설 레오 14세 교황은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며 “다리를 놓고 대화를 나누며 모든 이를 열린 팔로 환영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변방으로 나아가라’며, ‘선교하는 교회’, ‘야전병원’으로서의 교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은 목소리로 들린다. 이제 전 세계의 추기경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을 계승할 새 교황을 선출, 그가 꿈꾸던 시노드 교회 건설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여기고 레오 14세 교황과 함께 개혁과 쇄신의 여정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가톨릭교회 역사상 첫 미국 출신 교황이다.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5월 8일(로마 현지시간) 교황청 시스티나경당에서 열린 콘클라베 네 번째 투표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후 교황명으로 ‘레오 14세’를 택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콘클라베가 열리기 전, 미국 추기경들 중 성 베드로의 후계자가 될 가장 큰 잠재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이끌게 된 레오 14세 교황은 누구인지 알아본다. 최초의 미국 출신 대통령 콘클라베가 열리기 전인 4월 25일, 이탈리아의 유력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는 프레보스트 추기경을 조명하며 “국제적이면서도 수줍음이 많고, 보수적인 동시에 진보적인 인물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라 레푸블리카의 이러한 분석처럼, 레오 14세 교황은 콘클라베에 들어설 당시부터 다른 추기경들과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활동해온 그의 이력은 예외였다. 레오 14세가 걸어온 삶의 여정과 성직자로서의 경력은 그를 자연스럽게 국제적인 인물로 성장하게 만든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1955년 9월 14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올해 만 69세다. 레오 14세 교황이 스스로 명확하게 말한 적은 없지만, 그는 흑인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레오 14세 교황의 외할머니 루이스 바쿠이에는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서인도제도 혼혈 흑인으로 알려졌다. 레오 14세 교황의 모계 가족은 20세기 초까지 흑인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크레센트에서 거주하다가 시카고로 이주했다. 교회법 전공하고, 페루에서 20년 넘게 활동 레오 14세 교황은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운영하는 빌라노바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해 학사 학위를 받았고, 1977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소재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에 입회해 수련기를 시작했다. 이후 1978년 9월 첫 서원, 1981년 8월 장엄 서원을 한 뒤 1982년에는 시카고 가톨릭 신학원에서 신학 학위를 받았다. 또한 수도회로부터 파견받아 로마 교황청립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에서 교회법을 전공했다. 로마에서 체류하던 중 1982년 6월 19일 사제품을 받았으며, 학업을 계속 이어가 1984년에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5~1986년 페루 피우라주 출루카나스에서 선교활동을 했고 1987년에는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에서 지역 장상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에서 교회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레오 14세 교황은 1987년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 성소 책임자 겸 선교 책임자로 선임됐지만, 1988년 페루 트루히요 선교지로 파견돼 1999년 시카고에 있는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 관구장으로 선출될 때까지 주로 페루에서 활동했다. 이어 2001년 열린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총회에서 총장으로 선출됐으며, 2007년 총회에서 연임됐다. 2013년 10월,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로 돌아온 레오 14세 교황은 양성 책임자 겸 관구장 대리로 봉직하던 중 2014년 11월 3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페루 치클라요교구장 서리로 임명돼 11월 7일 취임했다. 이어 12월 12일 과달루페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페루 북부 치클라요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주교품을 받았으며, 이듬해 9월 26일 치클라요교구장 주교로 임명됐다. 2020년 4월 15일에는 페루 카야오교구장 서리로도 임명돼 2021년 5월까지 재임했다. 레오 14세 교황이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선교사와 주교로서 페루에서 활동한 기간은 20년이 넘는다. 미국과 페루 시민권 모두를 가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레오 14세 교황은 2023년 1월 30일 교황청 주교부 장관 겸 교황청 라틴아메리카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대주교가 됐고 그해 9월 30일 추기경에 서임됐다. 레오 14세 교황은 교황청 주교부 장관 외에 복음화부의 첫복음화와 신설개별교회 부서, 신앙교리부, 동방교회부, 성직자부, 축성생활회와 사도생활단부, 문화교육부, 교회법부, 바티칸시국위원회 위원도 역임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2023년 5월 주교부 장관으로서 주교들의 역할에 대해 역설하며 특히 교회 일치를 증진할 의무를 강조했다. 교황은 “일치의 부족은 교회에 매우 고통스러운 상처를 준다”며 “교회의 분열과 양극화는 교회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주교들은 교회의 일치와 친교 증진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주교들은 하느님과 동료 주교들, 사제와 모든 하느님의 백성과 친밀해야 하고, 홀로 떨어져 있으려는 유혹에 약해지거나 사회나 교회에서 특정 수준을 정해 놓고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레오 14세 교황은 미국과 페루, 지역교회와 보편교회에서 다양한 역할과 문화를 체험하면서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에 능통하고, 라틴어와 독일어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언어 구사 능력을 지니고 있다. ■ 레오 14세 교황 약력 1955년 9월 14일 미국 시카고 출생 1977년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입회 1978년 9월 첫 서원 1981년 8월 29일 장엄 서원 1982년 6월 19일 사제수품 1984년 교황청립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에서 교회법 석사학위 취득 1985~1986년 페루 피우라주 출루카나스에서 선교활동 1987년 교황청립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에서 교회법 박사학위 취득 1988~1998년 페루 트루히요 선교지 파견 1999년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장 선출 2001~2013년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총장 재임 2013년 10월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 양성 책임자 겸 관구장 대리 2014년 12월 12일 주교수품 2015년 9월 26일 페루 치클라요교구장 주교 임명 2020년 4월 15일 페루 카야오교구장 서리 임명 2023년 1월 30일 교황청 주교부 장관 겸 라틴아메리카위원회 위원장 임명 2023년 9월 30일 추기경 서임 2025년 5월 8일 제267대 교황 선출
삼일제약(회장 허승범 알베르토)은 5월 13일 서울대교구청 교구장 접견실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에게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이하 WYD)를 위한 기부금 7억 원을 전달했다. 정 대주교는 “WYD는 천주교 신앙에 바탕을 한 축제이지만 가톨릭 청년만이 아닌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이 모이는 축제”라며 “교황님을 모시고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함께 기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삼일제약에서 큰 기여를 해주신 소중한 뜻을 잘 살려 대회를 잘 준비하겠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허 회장은 “종교를 넘어 세계 속에 한국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뜻깊은 행사에 조력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기회가 된다면 빈민국 청소년들이 방문했을 때 가능한 부분을 지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WYD가 열리는 2027년 창립 80주년을 맞는 삼일제약은 ‘360도 휴먼케어’를 지향하며, 기부 등 국내외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는 5월 11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볼리비아 산타크루즈대교구 그리스도 살바도르성당에서 교구장 레네 리그 세사리(René Leigue Cesari) 대주교와 대구대교구의 볼리비아 선교 30주년 기념 미사를 공동집전했다. 그리스도 살바도르본당은 1995년 대구대교구가 처음으로 볼리비아에 파견했던 최창호 신부(야고보·원로사목자)가 부임했던 사목지다. 라틴아메리카 내륙에 위치한 볼리비아는 경제 사정이 어려운 나라 중 하나다. 국민 약 70%가 가톨릭신자지만 사제 수가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마저도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온 선교사다. 대구대교구는 최창호 신부를 시작으로 30년 동안 꾸준히 볼리비아에 선교 사제를 파견하고 있다. 현재 김건호(그레고리오) 신부 등 8명의 교구 사제가 파견돼 산타크루즈대교구를 중심으로 도시와 밀림이 공존하는 현지에서 원주민을 사목하고 있다. 한편 조환길 대주교는 5월 1일부터 17일까지 16박17일 일정으로 라틴아메리카를 사목 방문했다. 9일부터 11일까지는 볼리비아 산타크루즈대교구를 방문해 그리스도 살바도르본당 외에도 누에스트라 세뇨라 아파레시다본당, 성바울로공소, 센트로 필로메나 장애학교 등을 찾았다. 볼리비아 방문에 앞서 조 대주교는 파라과이 아순시온대교구를 방문해 3일 아순시온대교구장 아달베르토 마르티네스 플로레스(Adalberto Martínez Flores) 추기경과 환담했다. 4일에는 성 남종삼 요한 한인본당(주임 오창영 바오로 신부)에서 견진성사를 거행했다. 5일부터 9일까지는 미주지역에 파견된 사제 14명과 함께 파라과이에서 미주지역 사제모임을 가졌다. 파라과이에는 교구 오창영 신부가 2022년 처음 파견됐다.
인천교구 주안7동본당(주임 장준혁 바르톨로메오 신부)은 5월 18일 오전 10시30분 인천시 미추홀구 미추홀대로 575번길 41 현지에서 교구장 정신철(요한 세례자) 주교 주례로 새 성당 봉헌식을 연다. 2023년 1월 16일 초대 장준혁 신부 부임과 함께 신설된 본당은 그해 11월 10일 성당을 짓기 시작해 올해 1월 24일 준공했다. 올해 1월 14일 새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기 전에는 인근 상가에서 신앙생활을 해왔다. 성당은 대지면적 1190.2㎡, 건축면적 719.96㎡, 지상 3층 규모다. 1층에는 사무실과 식당, 사제 집무실, 사목회실, 교리실을, 2층에는 대성당과 교리실과 유아실을, 3층에는 사제관을 갖췄다. 본당은 모 본당인 주안1동·3동·8동본당 신자 1534명(671세대)이 2023년 3월 전입한 이후 신자가 증가하고 있다. 장준혁 신부는 “올해 4월 20일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 때만 해도 304명의 신자가 참례한 가운데 새 신자 4명이 세례를 받는 등 두 살 남짓한 신생 공동체임에도 활기찬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정부교구가 교구 관할지역 내 수도자들을 초대해 축성생활의 해를 기념했다. 교구장 손희송(베네딕토) 주교는 5월 7일 경기도 의정부교구 주교좌의정부성당에서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축성생활의 해 기념미사를 봉헌하며 한국교회가 보내고 있는 특별한 1년을 축하했다. 미사 후에는 수도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간담회도 열었다. 행사에는 교구 수도자와 사제 등 120여 명이 참석했다. 손 주교는 강의와 미사에서 수도자들에게 요구되는 순명과 청빈, 정결의 의미를 거듭 강조했다. 손 주교는 강론에서 “진정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계획과 이상이 아무리 좋다고 생각돼도 포기하고 봉헌할 줄 아는 사람”이라며 “마찬가지로 수도자를 수도자답게 만드는 순명과 정결, 청빈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봉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예수님의 자기 포기적 사랑은 그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이들을 통해 이어지고 힘을 받는다”고 말했다. 손 주교는 강의에서도 사제 생활을 하며 교회 장상에게 순명했던 때를 되짚으며 교회 공동체 전체와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됐던 기억을 공유했다. 행사에서 수도자들은 예물 봉헌 중 올해 기준 교구 내 수도회들의 지구별 현황을 담은 ‘수도회 지도’를 함께 봉헌했다. 봉헌된 지도는 제대 앞에 놓였다. 수도자들은 축성생활의 해를 맞아 열린 이번 행사가 함께 모여 소통하며 각자의 생활을 점검하고 수도 생활을 이어나갈 힘을 얻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의정부교구 수녀연합회 회장 임현숙(루치아·전교가르멜수녀회) 수녀는 “주교님과의 만남은 축성생활의 해를 보내는 수도자들이 하느님 앞에 봉헌의 삶을 살고 있다는 기쁨을 증거하고 다시 한번 쇄신한 은총 충만한 하루였다”며 “오늘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해 주신 모든 분과 주교님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손 주교는 이날 수도자들에게 주문 제작한 묵주를 선물하고 격려했다. 이에 화답하듯 수도자들은 교구장 착좌 1주년을 맞이한 손 주교에게 축하 꽃다발을 전했다. 손 주교는 2024년 5월 2일 의정부교구장에 착좌했다. 미사 후 주교좌성당 강당에 모인 참석자들은 준비된 음식을 나누며 담소를 나눴다. 의정부교구에는 현재 32개 수도회 200여 명의 수도자가 8개 지구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수도자들은 본당과 수도원·수녀원 등을 비롯해 민족화해센터, 모듬살이(새터민 아동공동생활가정), 구리 엑소더스 등 다수의 기관에 파견돼 복음을 전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잇따른 성당 시위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가 대화에 나섰다. 정 대주교는 5월 7일 명동 서울대교구청 교구장 접견실에서 전장연 관계자들과 만나 ‘장애인 탈시설 정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앞서 전장연은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었던 4월 18일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 종탑을 무단 점거하고 탈시설을 주장하는 현수막을 걸고 고공농성과 집회를 진행했다. 이어 5월 1일에는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성당, 수원교구 정자동주교좌성당 등 여러 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집회를 벌였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애도 기간인 지난 4월 24일에는 정자동주교좌성당 제대에 설치된 교황 빈소의 영정 앞에 현수막을 펼치고, 추모미사에 참례하려는 신자들 앞에서 시위해 물의를 빚었다. 정 대주교의 만남 제안에 전장연은 15일간 이어진 혜화동성당 종탑 고공농성을 종료했다. 종탑을 무단 점거한 활동가 민푸름·이학인 씨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정 대주교는 두 활동가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두 활동가에 대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전장연의 이어진 시위는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가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안’ 폐지 청원을 진행한 것에 대한 항의에서 비롯됐다. 사회복지위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이 중증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어려운 점, 자립보다 주거 전환만을 강조하는 점, 장애인 거주 시설을 일방적으로 탄압할 근거가 되는 점 등을 들며 법률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 대주교는 이날 만남에서 “다른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위험한 곳에서 농성하는 분들이 안전하게 내려오길 기도하고 있었다”고 활동가들의 안부를 묻고 “교회도 인권과 자기 결정권을 중시하며 큰 틀에서는 전장연과 근본적인 지향점은 다르지 않다”고 대화의 물꼬를 열었다. 그러나 “무연고 중증 발달장애인의 경우, 당사자와 가족의 의사를 존중하며 보호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며 “전면적이고 강제적인 탈시설은 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일괄적인 탈시설 추진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날 참석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측과 대화로 풀고자 했으나 성사되지 않아 농성이 길어졌다”며 “이번 만남이 큰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면담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정영진 신부, 사회사목국장 윤병길 신부, 문화홍보국장 최광희 신부와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박경인 공동대표, 박초현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대표,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 등이 참석했다.
5월 9일 아침. 풀과 나무, 꽃이 만발한 인천교구 부천 삼정동성당(주임 남재현 티모테오 신부)의 정원은 호미와 쟁기, 쪽가위를 들고 조경에 나선 신자들의 구슬땀으로 아름답게 가꿔지고 있었다. 마당 한복판에 섬처럼 조성된 십자가의 길 동산에는 신자들이 돌봐온 금낭화 무더기가 녹음 한가운데 분홍빛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자주색 진달래와 붉은 철쭉 덩굴 틈에는 하얀 튤립이 한 송이 피어 있었다. 사무실과 성모 동산, 사제관 앞 수십 그루 키 작은 소나무도 주기적으로 가지치기를 받은 가지런한 모습이었다. 대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 빨강과 노랑, 보라색 꽃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성당을 ‘푸른’(綠) ‘동산’(園)으로 가꾸는 본당 신자들의 모임(會)인 ‘녹원회’(회장 박상욱 베드로) 회원들의 솜씨다. 녹원회는 나무와 화초에 애정을 가진 신자들이 30여 년 전 결성한 단체다. 성당이 누구에게나 ‘오고 싶은 곳’이 되게 하고자, 올해 주임으로 부임한 남재현 신부의 응원을 받으며 2월부터 활동을 재개했다. 석 달 만에 후원회원과 활동회원 60명이 모였다. 10여 명 회원은 매달 첫째·셋째 토요일 아침 7시에 모여 성당 내 모든 교목과 관목 가지치기, 잡초 제거와 방제 작업, 거름주기, 화초 심기와 가꾸기를 하고 있다. 사다리차와 외부 전문가 손길이 필요한 키 큰 나무들의 가지치기 외의 모든 조경 봉사를 손수 한다.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L'essentiel est invisible pour les yeux,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 일부러 심지 않아도 훈풍을 타고 날아와 어느 틈에 뿌리 내려 피어나는 이름 모를 꽃들, 알아서 연초록빛으로 태동하는 새싹들…. 녹원회 활동의 보람은 자연 속 가만히 지켜봐야 보이는 창조의 신비를 찾는데 있다. 동산과 정원이 가시적인 것 너머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공간임에 눈뜨게 되자 잠깐의 편리함을 위해 “이곳에 주차장을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힘을 잃는다. 박홍(하상 바오로) 총무는 “하느님이 주신 아름다운 정원을 유지해, 신자가 아닌 이웃 주민들에게도 ‘성당은 이렇게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고 돌볼 줄 아는 곳이구나’라는 선교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원 박현지(로즈마리) 씨는 “우리가 진정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푸른 생명들을 가꾸고, 성당에 오고 가는 교우들과 그 아름다움을 나누고 있다는 데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