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68) 영국 더럼의 ‘비미쉬 박물관’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rn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입력일 2018-09-11 수정일 2018-09-11 발행일 2018-09-16 제 3112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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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촌 모습 그대로 살려 마을 전체를 박물관으로
손때 묻은 소장물품 31만점
광부와 가족들 기꺼이 기증
들판도 오솔길도 야외박물관
생활문화 체험에 역사공부도

영국 더럼 지역 비미쉬 박물관은 옛 탄광을 비롯해 그곳에서 사용했던 운반차와 철도레일 등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음악당이나 도서관 같은 문화기관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풍요로움을 전해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문화기관이 대도시에 집중해 있어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기는 쉽지 않다.

영국에서도 런던을 비롯한 도시에 문화기관이 편중돼 있어, 오래전부터 문화 소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배려할 것인지 고민했다. 근래에는 작은 도시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소규모의 문화기관이 문을 열고 있다.

마을에 있는 성당이나 공공기관에서는 주민들을 위해 작은 도서관이나 전시장과 같은 문화 공간을 꾸며 제공하고 있다. 기존 건물의 공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불필요한 공간을 문화 공간으로 내어 주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영국 북동부 지역도 런던과 멀리 떨어져 있어 문화적으로는 낙후된 곳이었다. 더럼(Durham) 지역의 비미쉬 박물관(Beamish Museum)은 이처럼 문화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1970년에 개관해 주목을 받아왔다.

더럼 지역은 산업혁명의 원동력이었던 석탄의 주요 생산지였으나, 후에 산업이 쇠퇴하면서 대부분의 탄광촌이 문을 닫게 됐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였지만, 주민들과 지방 정부에서는 폐광촌을 살리기 위해 지혜를 모았다. 탄광촌의 산업 유산을 폐기하지 않고 잘 보존해 마을 전체를 생활 박물관으로 꾸미기로 결정하고 실행해 비미쉬 박물관이 탄생했다.

이곳에서는 18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산업 유산과 지역 사람들의 생활용품을 비롯한 다양한 수집품을 볼 수 있는데, 소장물품은 31만 점에 이른다. 이처럼 많은 물품을 소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박물관을 만들고자 하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광부와 가족들은 폐광촌을 다시 정비하고 각종 장비들을 손질했고 자신들의 손때가 묻은 귀중한 유물이나 물품을 기꺼이 기증했다.

오늘날 비미쉬 박물관 직원 대부분은 탄광에서 일했던 광부들과 가족들이다. 수백 명의 자원 봉사자들도 박물관 곳곳에서 방문객을 환대하면서 도움을 준다. 특히 이곳의 직원이나 봉사자들은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복장을 하고 그들의 모습을 재연하고 설명해줌으로써 방문객들을 그 시대로 이끌어 머물게 해준다.

도시에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대부분 좁은 공간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이곳에선 탄광과 마을, 들판과 오솔길 등 전체가 야외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석탄을 캐던 탄광과 운반차, 철도 레일과 석탄 장비는 오래 전부터 있던 자리에 그대로 보존돼 있다. 1825년경의 탄광 모습과 마찻길도 볼 수 있고, 1913년경의 건물로 채워진 마을과 기차역도 만날 수 있다. 누구든 마을 사람들이 살았던 집과 학교, 상가와 농장, 교회와 놀이터 등도 방문할 수 있다. 오래전에 사용했던 마차나 트럭, 2층 버스나 전차, 증기 기관차를 전시하거나 운행하는 것도 비미쉬 박물관이 보여주는 특징이다.

마을 학교는 방문객 교육 공간으로 사용한다.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걸었던 성화도 예전 그 자리에 있다.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한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 같은 분이시다’라고 쓰인 포스터와 함께 등불을 들고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예수님을 묘사한 유리화가 있다. 탄광에서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살았던 광부들과 가족들의 신앙이 얼마나 애절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도 잘 보존돼,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교실 칠판 가까이에는 커다란 성화도 걸려 있다.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아이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최우선에 두고 교육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교실의 작은 의자에 앉아 박물관의 유래와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 관해 들으며 이 지역의 역사를 공부한다.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비미쉬 재단에서 관리한다. 재단에서는 오늘날에도 작품의 수집과 연구, 보존과 전시를 계속하며 박물관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석탄 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서면서 폐광촌이 늘어나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폐광촌 지역에 카지노와 같은 유흥업소를 만들어 지역을 살리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업소가 진정으로 마을과 주민을 살릴 수 있는지 비미쉬 박물관을 거닐면서 묻게 된다.

우리 교회 안에도 사용하지 않는 건물이나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방치하면 훼손되기 쉽다. 교회에서도 용성이 떨어진 오래된 건축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단순히 건물에 대한 보존이나 활용뿐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과 공간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지 고민할 때다.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묻은 곳은 모두가 다 소중하다. 이런 것은 한 번 사라지면 복원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오래된 건물 뿐 아니라 사람들이 걸었던 길과 나무들, 작은 정원이나 돌담 사이사이에도 우리가 아직도 다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도 더없이 소중하다.

흔히 사람들은 박물관이라고 하면 대부분 건물 안에 전시된 유물이 있는 공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박물관에는 건물과 그 안에 있는 전시물 그리고 정원과 주변 환경 등이 모두 다 포함된다. 비미쉬 박물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박물관의 개념이 훨씬 더 넓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박물관과 같은 문화 공간의 내·외부에 머물면서 지나간 사람들의 삶과 문화와 예술을 더듬어보며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rn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