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이었던 성인은 1864년 사제품을 받자마자 선교를 위해 조선 땅을 찾았다. 성인은 우리말을 익히기 위해 둔토리 인근 교우촌에 머물렀다. 하지만 박해가 심했기 때문에 이 산 속 동굴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동굴이라기보다는 바위 틈새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높이는 1m가량이라 성인은 허리를 펴고 서 있기도 어렵고, 바닥에 굴곡이 심해 누울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동굴이다 보니 습할 뿐 아니라 여름인데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열악한 장소였다.
성인은 이곳에서 낮에는 우리말과 문화를 공부하고, 밤에는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신자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가 성사를 베풀었다. 청계산에 성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도 있었을까. 성인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려는 그 열정 하나로 이 산을 수없이 오르내렸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성인이 가장 많이 다닌 길은 아마도 둔토리동굴에서 하우현성당까지 이어진 길이 아닐까.
산을 내려와 성당을 찾으니 가슴에 십자가를 품은 한 사제의 동상이 인자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바로 루도비코 볼리외 성인상이다. 성인이 복음의 씨앗을 뿌린 이곳에는 박해 이후에도 교우촌이 이어져 교구에서 3번째로 본당이 설립됐다.
성당은 본당보다는 성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성인상 오른쪽으로는 경기도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된 사제관이 서있다. 초대 주임 신부인 샤플랭 신부가 1906년 세운 건물로 서양식 석조에 한국 전통의 골기와를 올린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졌다. 20세기 초반 한양절충식 건축물로 건축사적 가치가 높은 사적이다.
하우현본당은 현재 교적상 신자수가 200명도 채 안 되지만, 매일 끊임없이 찾아오는 순례자들도 돌보고 있다. 본당에서는 매주 화~토요일 오전 11시 미사가 봉헌되고, 수요일 미사 후에는 묵주기도, 목요일 미사 후에는 성시간 등의 신심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요일 오후 9시부터는 3시간30분에 걸쳐 성령철야기도도 열고 있다. 또 순례자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화~토요일 오후 1~4시와 주일 오후 1~5시 ‘하우현성당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