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평신도희년] 평신도사도직단체를 찾아서 (8)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18-07-03 수정일 2018-07-03 발행일 2018-07-08 제 3102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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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마디 말보다 ‘성미술’로 깊은 하느님 사랑 전해
각자 받은 탈렌트 활용해 신자들 신앙성숙에 기여
정기회원전·세미나 등 열어
한국 성미술 발전 방안 모색

때로는 말 보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노래가, 아름다운 작품 한 점이 더 큰 위로로 다가올 때가 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 가르침보다 성(聖)미술 작품 한 점이 우리를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실제 교회 역사 속에서 성미술은 신자들의 신앙과 정신을 고양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처럼 아름다운 작품 창작 활동을 통해 하느님 사랑을 드러내는 평신도사도직단체가 있다. 전국 14개 교구에서 미술을 전공한 회원 900여 명으로 이뤄진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회장 안병철, 담당 지영현 신부, 이하 미술가회)다.

이번 호에서는 하느님께 탈렌트를 부여받은 가톨릭 미술가들이 한데 모여 작품 활동을 통해 평신도 사도직을 실천하고 있는 미술가회의 활동을 들여다본다.

■ 성(聖)미술, 가톨릭미술가들의 평신도 사도직

미술가회의 주보 성인 프라 안젤리코(1395~1445)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수도자이자 화가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를 ‘모든 예술가의 주보’로 선포했다. 기도하지 않고는 결코 붓질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할 만큼 진실하고 겸허한 수도자였던 그의 삶과 영성은 그의 그림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김형주(이멜다) 작가의 작업실. 그의 작업실에는 추상화 작품과 함께 성경을 주제로 한 유화 작품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그는 서울가톨릭미술가협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성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회원들과 함께 피정을 하고 한 달에 한 번 전례 미술에 대해 배우면서 성미술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 20년 동안 국내 110여 개 성당의 성미술품을 만들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땐 가로 3m, 세로 2m에 달하는 대형 걸개 124위 복자화 ‘새벽빛을 여는 사람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미술가회 활동은 주님께 받은 탈렌트를 활용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라면서 “앞으로 더 많은 가톨릭 미술가들이 성미술에 관심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회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국내 성미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작업실 한편에는 현재 작업 중인 한국 103위 순교 성인의 초상화 한 점도 놓여있었다. 옥색 바탕에 고운 분홍 저고리를 입은 동정녀 이영덕 막달레나 성녀의 모습이다.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한국 103위 순교 성인 초상화 작업’에는 미술가회 회원들이 운영위원 등으로 동참했으며, 올해 미술가회의 주요 작업 중 하나다. 지난 3월 한국 103위 순교 성인 중 개별 초상화가 없는 63위 성인의 초상화를 완성하기 위한 공동 작업에 돌입했다.

■ 한국 가톨릭미술가로서의 활동

미술가회 회원들은 작품 활동을 통해 그리스도교 정신을 구현하고, 성미술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2015년 9월에는 ‘한국 교회미술 재정립을 위한 연구 세미나’를 열었으며, 2016년 8월에는 ‘병인 순교 150주년 기념 한국 교회미술 연구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또 각 교구 미술가회별로 정기 회원전을 열어 신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나누고 체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특별히 서울가톨릭미술가회는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와 공동으로 ‘미혼모자 시설 돕기- 성(聖)미술 나눔전’을 마련하고 전시 수익금을 미혼모자시설 등에 전달하기도 했다.

올해 ‘2018 한국 가톨릭미술가협회전’은 11월 9~14일 원주 치악예술회관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희망’을 주제로 개최할 예정이다. 전시에는 14개 교구 회원 200여 명이 참여한다.

내년 2월에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를 맞아 다양하고 특별한 문화 행사를 마련하기로 했다.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문화예술단체들과 함께 김 추기경의 삶과 정신을 기억하고 되새기기 위해 ‘그립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주제로 기획 중인 행사다.

아울러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에는 한국 성미술 반세기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성미술 정립과 발전을 도모하는 50주년 기념 대규모 전시와 「한국 가톨릭 교회미술 50년사」편찬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미술가회는 해마다 프라 안젤리코 복자 축일(2월 18일)에 맞춰 가톨릭 미술상 시상식도 주관하고 있다. 가톨릭 미술상은 1995년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가 우리나라 성미술의 발전과 토착화를 위해 제정, 올해 2월엔 ‘제21회 가톨릭미술상 시상식’을 진행했다.

지난 2월 22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4층 강당에서 열린 ‘한국 103위 순교 성인 초상화 제작자 워크숍’에 참가한 가톨릭 미술가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 제공

지난 2월 19일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 진행된 ‘미혼모자 시설 돕기-성(聖)미술 나눔전’ 수익금 전달식.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 제공

6월 29일 김형주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성녀 이영덕 막달레나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 제공

2015년 9월 4일 서울 혜화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 교회미술 재정립을 위한 연구 세미나’.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 제공

■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 안병철 회장

“작품 하나하나에 신앙심 담는 것이 신자 미술가 의무”

작품의 체계적 보관·관리 위한 ‘가톨릭 미술관’ 건립 추진 중

“하느님, 예술로써 찬미 받으소서. 저희 마음에 함께 하시듯 저희 창작에도 함께 하소서.”

안병철(베드로·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 교수)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 회장은 올해 연말 완성 예정인 ‘한국 103위 순교 성인 초상화’가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훌륭하게 제작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러면서 성(聖)미술은 신자들의 신앙과 정신을 고양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일이며, 그 속에 담긴 성스러움은 우리를 내면의 눈으로 보도록 초대한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거나 파이프 오르간의 장엄한 선율이 들리면 신앙심이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잖아요. 그럼 ‘저 성당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되지요. 미술 작품 하나하나에 신앙심을 담는 것이 가톨릭 미술가들의 의무이자 미술 활동을 통한 평신도 사도직 역할 아닐까요.”

현재 그가 가장 관심 갖고 추진하고 있는 것은 ‘가톨릭 미술관 건립’이다. 교회 내적으로 가톨릭 미술관의 필요성이나 의의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운영비용 등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미술가회는 역대 가톨릭 미술상 수상자들의 전시회 등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계획 중이다.

가톨릭 미술관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교회 미술사적으로 50년 이상 된 보존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보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50년 이상 된 작품들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데, 현재 교회에는 1954년도 작품을 비롯해 50년 이상 된 작품들이 많이 있다.

그는 “보존 가치가 충분한 작품들이 교회 건물 곳곳에 분산돼 있다”면서 “이 작품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계성여고의 많은 교실 중 일부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작품 수장고와 함께 특별한 주제에 따라 미술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술가회는 조만간 ‘가톨릭 미술관 건립을 위한 기도문’도 완성해 배포할 예정이다.

앞으로 그는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을 준비하며, 회원들의 영적 성장과 새로운 성미술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면서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으로 재도약하고, 미술 활동을 통한 평신도 사도직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