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2018 한국 종교지도자 루터교회 성지순례

핀란드·스웨덴·덴마크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8-06-26 수정일 2018-06-26 발행일 2018-07-01 제 3101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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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개혁 바람 불던 곳에서 종교 본연의 모습 돌아봤다
7대 종단, 이웃종교 이해의 장
북유럽 대표적 루터교회 돌며 “한 뿌리에서 난 가지임을 느껴”

“삶이라는 것은 길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함께 걸어가는 겁니다. 다른 형제들과 함께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형제들로 인정하고 함께 걸어갑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4년 8월 18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한국의 종교지도자들과 만나 이러한 권고를 전했다. 한국의 종교지도자도 교황의 뜻에 공감하며 종교간 협력과 화합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뜻을 밝힌 바 있다. 사단법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공동대표의장 김희중 대주교, 이하 종지협)가 2010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이웃종교 체험 성지순례’ 또한 이웃종교를 보다 깊이 알고 이해함으로써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함께 형제애를 실천하며 살아갈 디딤돌을 놓는 노력의 하나다.

6월 19일 종교지도자들이 ‘이웃종교 체험 성지순례’ 중 문화탐방 일정의 하나로 노벨상 시상식 축하연회가 열리는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 황금의 방을 돌아보고 있다.

2018 이웃종교 체험 성지순례는 그리스도교 중 특별히 루터교(The Lutheran Church)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종교간 유대를 다지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특히 김희중 대주교는 이번 순례를 통해 “아래에서부터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면 배는 결국 침몰하고 만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기층 민중들의 쇄신과 의식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7대 종단이 힘을 합쳐 보편적인 윤리도덕과 정신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노력을 범국민운동 차원으로 펼쳐나가는데 힘써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정은 6월 16~22일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의 대표적인 루터교회 순례로 진행됐다. 순례에는 종지협 공동대표의장인 김희중 대주교(주교회의 의장)와 공동대표 설정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엄기호 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한은숙 교정원장(원불교), 김영근 관장(유교 성균관), 이정희 교령(천도교)을 비롯해 문화체육관광부 김갑수 종무실장, 종지협 운영위원 등 17명이 참가했다.

순례는 루터교회의 총본산인 핀란드 헬싱키교구 헬싱키 대성당(Helsinki Lutheran Cathedral)에서부터 시작했다. 이 성당은 해마다 40여만 명의 순례객 및 관광객이 오가는 헬싱키의 명소이기도 하다. 핀란드는 스웨덴에서 전파된 루터교를 적극 받아들였으며, 현재 국민의 70%가량이 루터교 신자로 추산된다. 대성당에서 도보로 20여 분 거리에 자리한 템펠리아우키오 교회(Temppeliaukio Church)는 암석을 쪼아낸 자리에 전례공간을 꾸며 자연환경과 조화를 잘 이룬 형태로 더욱 유명하다. 스테인드글라스나 성화 한 점 없이 울퉁불퉁한 돌덩어리가 그대로 노출된 벽면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구리돔과 유리로 덮인 공간 속에 들어온 이들은 누구나 자연 채광 아래에서 따스함을 느끼며 기도하고 최상의 음향으로 오르간 연주 등을 감상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종교는 닫혀 있어선 안 됩니다. 특정한 사람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하며 권위주의나 전통에 얽매여 닫힌 모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열려 있으면 대화가 됩니다. 교회 건물 하나하나도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햇살을 가득 품은 템펠리아우키오 교회에서 잠시 참선하듯 묵상을 한 설정 스님이 전한 말이다.

“루터교회를 순례하면서 종교의 본연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 루터의 개혁 또한 사람을 사랑하신 하느님의 본뜻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아니었을까요. 사람을 존중하는 가치를 다시 세운 교회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한은숙 원불교 교정원장은 “종교의 본연은 사람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루터교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의해 재발견된 복음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세워진 개신교회다.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은총으로’(Sola Gratia),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를 기치로 내걸고 바른 교회로 돌아가자고 외친 복음운동에서 시작, 북유럽과 서유럽 등지로 번져나갔다.

이어 순례단이 발걸음을 옮긴 곳은 북유럽 루터교 확산의 중심이었던 스웨덴이다.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에 자리한 왕실 공식 루터교회는 대성당(Stockholm Cathedral)이라고 불린다. 스칸디나반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세워진 스웨덴 웁살라 대성당(Uppsala Cathedral)의 이름도 여전히 성당이다. 가톨릭 성당에서 루터교 예배당으로 바뀌었지만 옛 형태를 대부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민들도 성당이란 표현에 거부감이 없다고 한다. 헌법으로 루터교를 국교로 지정하고 있는 덴마크에서도 ‘성당 교회’라는 표현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수도 코펜하겐 아말리엔보르 궁전과 마주하고 서 있는 프레데릭 교회(Frederik’s Church)의 웅장한 돔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본따 설계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무릎을 꿇고 성찬례를 하는 등의 가톨릭 전통도 남아 있다.

“북유럽 루터교회들도 모두 한 뿌리에서 태어난 가지들입니다. 무엇보다 신앙의 진리는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문화 속에 녹아들어가야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곳에서도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정희 천도교 교령은 “진리는 삶과 떨어질 수 없으며, 모든 종교가 한 뿌리에서 났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희중 대주교는 “그리스도인들만을 위한 에큐메니컬(교회 일치)을 넘어서, 이웃종교인들도 에큐메니컬의 정신을 공유할 때 교회 일치와 종교간 화합은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더 이상 차이점과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는 대화가 아닌, 신앙의 공통유산을 더욱 확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을 비롯한 이 땅의 종교인들이 우선적으로 실천해야할 과제”라고 조언했다.

6월 20일 덴마크 안스가교구 성 안스가 대성당에서 최재철 덴마크 주재 한국대사가 지역 문화·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암석교회라고도 불리는 템펠리아우키오 교회 내부.

핀란드 루터교회의 총본산인 헬싱키 대성당과 그 앞에 펼쳐진 원로원 광장의 모습.

6월 20일 종교지도자들이 덴마크 코펜하겐 프레데릭 교회 순례 후 아말리엔보르 궁전 광장을 지나고 있다.

핀란드·스웨덴·덴마크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