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41) 신독(愼獨), 감히 할 수 없는…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6-26 수정일 2018-06-26 발행일 2018-07-01 제 310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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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지방에 있는 우리 수도회 행사에 몇몇 형제들과 다녀왔습니다. 본 행사가 있기 전날, 각자의 사도직에서 헌신적으로 살고 있는 수사님들과 오랜만에 만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중에 선배 수사님이 말하기를,

“나는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나 편한 대로 살고 싶어지더라.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수도 생활하면서도 요령을 피우거나, 꾀를 내기도 하고.”

그러자 나는 농담하는듯한 말투로 마음 편안하게 있는 선배 수사님에게,

“헤헤, 우리 삶은 언제나 신독하며 사는 거잖아요. 푸하하하.”

그러자 다른 수사님 한 분이,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찾더니,

“아, 여기 있네. 신독이라, 음.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언행을 삼간다.’ 우와! 이런 말도 있네요. 신독은 중국의 고전 중 중용에 나오는 말인데, ‘군자는 보지 않는 곳에서 삼가하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정말 멋진 말이기는 하네요. 남들이 보지 않는 곳, 심지어 혼자 있을 때에도 마치 남들이 있는 것처럼, 스스로 삼가하며 살아간다는 말! 정말 우리가 은장도처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중요한 가치네요.”

나 역시 한 마디 더 거들며,

“우리 삶, 아무도 안 본다고 하지만, 하느님 그 분만은 다 보시잖아요. 그처럼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기에 신앙인들에게 신독은 ‘하느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바로 그것을 묵상하게 하네요.”

아무튼 그날 저녁식사를 하고 차도 마시면서 오랜만에 만난 수사님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보낸 후, 미리 마련해 놓은 숙소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세면을 하고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이어서 시간 맞춰 수도원 행사장을 향해 갔고 운전은 내가 했습니다.

화창하고 맑은 날, 시골이지만 유난히 넓게 트인 도로. 토요일 아침 시간이라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조용한 도로. 그 확 트인 도로를 운전하는 동안 처음 몇 번은 계속해서 신호가 파란 불이 되어 차는 기가 막히게 잘 달렸습니다. 그렇게 운전을 하며 가는데, 사방에 차가 한 대도 없는 큰 길 사거리 앞에서 빨간 불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순간 생각이 났습니다. ‘이 신호만 잘 넘어가면, 계속해서 파란 불이 될 수도 있겠는걸!’ 그리고 잠깐 주변을 둘러봤더니, 차 안에 있는 모든 수사님들이 잠자고 있는 듯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속으로 ‘히히, 아무도 안 보겠지. 그래, 에잇’ 하며 순간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빨간 불인데도 불구하고 사거리를 그냥 지나버렸습니다. 그러자 뒤에서 나지막하면서도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강 신부님, 신독을 하셔야죠, 신독.”

‘헐-!’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잠자는 것 같던 수사님은 눈만 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내 곧 조수석에 앉은 선배 수사님도 눈을 뜨며 말하기를,

“아니, 자신이 어제 신독에 대해 말해 놓고 이렇게 신독을 안 지키네. 이건 말이 안 되지. 신독을 말한 지가 12시간도 안 되었는데, 어떻게 빨간 불에 그냥 확 - 지나갈 수가 있어!”

그날 하루 종일 행사 시간만 빼고는, 차 안에 함께 있었던 수사님들은 나에게 온종일 ‘신독’, ‘신독’ 했습니다. 심지어 서울로 돌아와 각자의 자리로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나에게 ‘신독’, ‘신독’했습니다. 그날 얼마나 ‘신독’이라는 말에 시달렸던지, 밤에 자는 동안에도 꿈속에서 누군가 ‘신독’하는 소리에 온몸이 경기(驚氣)를 하며 깼습니다. ‘휴…. 신독 너무나 무섭네, 무서워. 내 살면서 신독이라는 말을 다시는 꺼내나 봐라…. 아, 신독!’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