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르포] 예멘 난민 지원 나선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를 찾아가다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8-06-26 수정일 2018-06-27 발행일 2018-07-01 제 3101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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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들을 만났다, 곤경에 처한 이를 외면 않는… 

제주교구 차원서 생필품·성금 모아 전달하고 신자들은 지낼 곳 제공하기도
‘난민 반대’ 집회 등 사회적 갈등 고조 속 “신앙인의 소명 무엇인지 새겨봐야”

난민 문제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제주에 찾아온 예멘 난민들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나그네를 맞을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전쟁으로부터 몸을 피해 온, 500여 명이 넘는 예멘 난민들과 그들을 맞는 제주를 찾아갔다.

6월 22일, 제주시 관덕로길 8길 14에 위치한 제주교구 주교좌중앙성당과 바로 뒤편에 위치한 교구 ‘이주사목센터 나오미’(이하 ‘나오미 센터’) 인근에선 예멘 난민들이 삼삼오오 오가거나 모여 있다. 살짝 검은 피부색, 큰 눈망울에 순한 얼굴들이었고, 조금은 불안해 보였다. 영어로 말을 건네니 수줍은 손짓으로 “노 잉글리쉬”라고 말한다.

■ 이주사목센터 나오미

나오미 센터는 4층, 크지 않은 거실 한쪽 벽에는 여기저기서 약속한 난민 후원 물품 목록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작은 테이블과 의자들 뒤로는 후원 받은 휴지와 비누, 라면 등이 갈 곳을 기다리고 있다. 부엌 테이블에는 개인 상담을 하러 온 예멘 청년 4명이 아랍어와 영어가 가능한 카림(가명)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도 난민의 신분인 카림은 다른 방에서 또 다른 예멘 친구들을 위한 통역을 해주는 중이었다.

오후 4시, 후원물품을 전달하러 오기로 한 제주의 한 국제고등학교 학생들이 약속 시간인데 도착하지 않는다. 입국한지 한 달 됐다는 예멘의 젊은 부부는 미리 와서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다. 21세인 여성은 2주 후면 아기를 출산한다. 먹고 살기도 급급한데 출산은 큰 부담이다. 통역을 해주던 예멘 청년 알리는 이들 부부와 사촌간이다. 2014~2016년 한국에 머물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예멘 국내 상황이 안 좋아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나 친절하게 대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최근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신분 노출은 꺼린다.

5시가 조금 넘어서야 도착한 학생들은 모빌, 체온계, 목욕 도구 등 출산용품들을 몇 보따리씩 들고 센터 4층으로 올라온다.

한 학생은 “국적을 떠나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저희들이 직접 성금을 마련하고 출산용품들을 구입했다”면서 “난민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그런데 힘든 사람들을 돕는 것에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나?”라고 되묻는다.

개인 음악 연습실에 머물고 있는 난민. 전쟁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조차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다. 사진 이창준 제주지사장

■ 제주교구, 주보 통해 후원물품 받아

외부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센터장 홍석윤 신부와 김상훈(안드레아) 사무국장,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신강협(요셉·난민활동가) 소장은 상기된 얼굴로 쏟아지는 일거리들을 소화하고 있다.

후원을 받고 나눠주는 일은 센터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다. 최근 난민들에 대한 악화된 여론을 해소할 방안 또한 논의해야 한다. 취업을 원하는 예멘 친구들을 위해 일자리를 수소문하는 것도 큰일이고, 가지고 들어온 돈이 떨어져가면서 노숙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 예멘 난민들을 위해 숙소도 마련해야 한다. 경찰에 치안 강화를 요청했는데, 이는 예멘 난민들의 범죄를 우려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에 대한 혐오를 표시하는 일부 현지인들의 행동을 우려하는 측면이 있다.

홍석윤 신부는 “난민들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과 거부감이 증폭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 누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자는데 극구 반대를 하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며 “오해가 풀리고 그들의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게 되면 누구나 포용의 자세를 갖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제주교구는 지난 6월 8일 사제성화의 날 피정 자리에서 교구장 주교의 허락을 받고 예멘 난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공지를 통해 5가구에서 난민들을 수용하겠다고 자원했고, 센터에서도 서너 명의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다. 교구는 연 2주째 주보 공지를 통해서 가족 단위 혹은 여성 난민 숙소와 각종 생필품 및 성금 후원 신청을 받고 있다. 각 본당에서도 자발적으로 모은 성금과 후원물품을 나오미 센터로 보내오고 있다.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에서도 관심을 갖고 제주교구의 난민 지원 활동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전해왔고, 여러 수도회들이 지원을 약속했다.

■ 그리스도인의 환대

무엇보다도 뜻있는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난민 가족을 수용한 모습이 눈에 띈다. 음악을 전공, 개인 연습실을 운영하는 하연수(가명)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제주의 예멘 난민 소식을 듣고 “숙소 필요하신 분 전화주세요”라는 공지를 띄웠다. 현재 그의 연습실에서는 20여 명의 예멘 난민들이 기거하고 있다. 하씨는 “이들을 끝까지 보살필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는 친구들과 지내는 것처럼 살다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난민들에게 숙소만 제공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음식은 한 본당의 단체가 십시일반으로 손을 보태 제공한다.

이정연(가명)씨는 큰 딸, 작은 딸과 힘을 합쳐 2주째 40대 남성과 5남매 가족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있다. 전쟁통에 이들 가족은 아내이자 엄마를 폭격으로 잃었고 그 후유증으로 셋째아이는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이씨의 큰 딸은 본당에서 주임 신부의 강론을 듣고 큰 고민 없이 이들 가족을 집에 들였다. 이씨는 이미 삼남매를 키우고 있는 큰 딸의 그런 선택을 한 것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작은 딸 역시 기꺼이 예멘 일가족을 수용하기로 했다.

이씨는 “처음에는 조금 우려되는 것이 있었지만 엄마 잃은 아이들의 안쓰러운 얼굴들을 보니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이 부끄러웠다”며 “이 아이들도 모두 내 자식이라는 마음으로 품어주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6월 22일 제주 중앙주교좌성당 뒷편 ‘제주교구 이주민센터 나오미’를 찾은 난민들이 상담하고 있다. 사진 박원희 기자

■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 버려야

많은 이들이 예멘 난민들에 대한 호의와 선의를 보이고 있지만 반대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혐오라고 할 정도로 극도의 거부감과 배타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불확실하거나 심지어는 의도된 유언비어를 통해 난민들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 의하면, 예멘 난민 수용에 대한 반대(49.1%)가 찬성(39.0%)보다 월등히 많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난민 수용을 허용하는 난민법을 폐지해달라는 청원에 동참자가 무려 40만명을 돌파했다. 6월 30일에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난민 수용 반대 집회를 열 계획이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예멘 난민들을 수용하고 생필품을 지원하는 이들에 대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난민들을 돕는 일이 이젠 감춰야 할 일이 됐다. 그런 까닭에 난민들을 수용하거나 지원하는 신자들의 경우에도 신원을 밝히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일가족을 수용하고 있는 이모씨도 조심스럽게 어려움을 토로했다.

“어떤 모임에서 예멘인 가족들을 데리고 있다고 말하자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두어번 그런 일이 거듭되니까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하고 당황스러웠지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신앙인으로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물론 적지 않은 이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하지 말라”며 감귤이며 과자며 먹거리 보따리들을 바리바리 안겨 주기도 했다. 인종도, 나라도, 종교도 다른 난민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씁쓸한 마음은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홍석윤 신부는 “신앙인들에게 ‘나그네를 돌보라’는 것은 성경과 교회 가르침에 명확하게 담겨져 있는 소명”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근거 없는 두려움과 증폭된 공포라는 것이 홍 신부의 지적이다. 신강협 소장 역시 “가장 시급한 것은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라며 “난민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어쩌면 예멘 난민 문제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신앙을 시험 받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