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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16년째 성경 필사와 이규정 교수 / 이원우

이원우(아우구스티노) 소설가
입력일 2018-06-19 수정일 2019-09-16 발행일 2018-06-24 제 310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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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나는 성경을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서울행 지하철을 탔다. 종로구청 근처의 찻집이 1차 행선지였다. 거기서의 ‘볼일’이 끝나고, 맞은편 한정식 집으로 갔다. 어느 작가의 소설집 출판기념회가 있어서였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성경 필사였다. 앞서 짊어지고 어쩌고저쩌고 했는데, 그 안에 필기구며 400자 원고지 뭉치, 받침대 등이 들어 있었다. 그러니 그 표현이 맞다. 모든 것을 펼쳐 놓고, 나는 16년째 계속해 온 ‘볼일’에 땀을 흘렸던 것이다. 한 시간 걸렸다.

나는 세례를 받기 전부터 성경 필사를 시작했었다. 몹쓸 병에 걸려, 거의 죽은 목숨과 다름없는 처지에 놓여 있을 때였다. 식물인간이 따로 없었다. 나 자신이 이웃으로부터 ‘왼소리’ 즉 이승 사람이 아니란 소문을 듣기도 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그 무렵 원로소설가 이규정(스테파노) 전 신라대 교수를 알게 되었다. 당시 부산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회장인 그가, 나더러 구원을 받으려면 성경 필사를 하라는 게 아닌가! 나는 문단의 선배이자 스승인 그의 권유를 따랐다. 무턱대고 구약부터 손을 댔더니, 그가 그게 아니라고 일러 주었다. 다시 신약을 펼쳐 들었다.

워낙 뚫어져라 성경을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시신경이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선고까지 받았다. 그때의 절망감을 어떻게 표현하랴. 그러나 기적은 있었다. 좀 쉬었다가 낯선 땅 용인에 올라와서 굵은 필기구로 옮겨 적었더니, 시신경이 회복되는 게 아닌가? 그건 살아 계신 주를 불러 사경을 딛고 일어선 것과 같은, 주님 현존의 증거이고말고. 난 정말 혼신의 힘을 쏟아 성경 필사에 한사코 매달렸다. 지금도 어디서든지 배낭 지퍼를 연다. 심지어는 외국 여행을 가는 중 비행기 안에서도…. 하니 종각역 대합실 노숙인들 틈인들 어찌 예외일 수 있으랴. 나는 집 바깥 ‘수십 군데의 기록’을 그렇게 세워나가는 중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반을 넘겼다. 제본해서 쌓아놓으니 50㎝다.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해서 5년 안에 끝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러다가 숨을 거둔들 후회할 일이 결코 아니다.

한데 너무나 슬픈 일을 나는 근래 겪었다. 이규정 교수가 두어 달 전 선종한 것이다. 빈소가 마련된 부산 망미성당까지 가서 유가족을 문상할 수 없었다. 너무 멀어서…. 한데 기적 같은 일을 다시 한 번 겪었으니, 고인의 유택이 충남 천안공원묘원에 마련되었다는 게 아닌가!

삼우(三虞)가 지난 지 이틀 뒤였다. 나는 용인에서 멀지 않은 그분의 영전에서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국화 21송이와 성경 및 필사한 원고지 몇 장을 나란히 놓았다. 눈시울이 젖는 걸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날은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다 보니 왕복 7시간 걸렸다. 시간 단축의 방법이 있다니, 그걸 익혀야겠다. 오늘도 나는 냉면 집에서 성경을 필사했다.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원우(아우구스티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