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성구는 조금 특별합니다. 10여 년 동안 고민한 끝에 사제직과 평양교구에 대한 확신을 준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예비신학생 모임에 나가면서 사제직에 대한 꿈을 키워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신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0여 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며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회의감이 밀려왔고 하느님과 함께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커져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9살에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북한선교를 위한 평양교구 신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마음에 불타오르는 열정과 확신이 생겼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사제품을 받던 날, 서품식 내내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바닥에 엎드릴 때부터 울컥하기 시작했는데 안수를 받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꿈은 지금 당장이라도 북한에 가는 것입니다. 평소 친한 동기들에게는 “내가 평양에 가기 전에 죽으면 북한 지역에 묻어 달라”는 말을 합니다. ‘평양교구’는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꾸준하게 관심을 갖고 기도하는 모습이 더욱 중요합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화해와 일치의 관점에서 꾸준하게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평양교구 신학생으로 입학했을 땐, 저도 평양에 가면 일단 성당 등 건물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주체사상이 뼈에 박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삶 속에 묻혀 살며,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랑을 실천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서울이든, 아프리카든, 평양이든 장소는 달라도 결국 추구하는 것은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제가 되고 싶습니다.
■ 장인산 신부(베르나르도, 청주교구 원로사목자, 1979년 6월 15일 서품)
‘아침에는 당신의 사랑을 밤에는 당신의 진실을 알림이 얼마나 좋으니이까’(시편 92편, 공동번역 성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