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평화의 모퉁이돌이 절실한 때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rn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05-29 수정일 2018-05-29 발행일 2018-06-03 제 309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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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주일 동안 우리는 반전을 거듭하는 한반도 평화 정세를 겪었다. 북한은 미국 강경파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경하게 비난했다. 이에 5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2일로 예정됐던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했다. 그러자 25일 새벽, 북한은 전례 없이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를 바라는 김계관 담화를 발표했고, 이어 26일 판문점에서 올해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의 6월 12일 추진을 재확인했다.

이렇게 거듭되는 반전은 북한이 남북 고위급 회담의 무기한 연기를 선언했던 때부터 예상됐던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우리의 절실한 마음이 북한과 미국에 대해 대화의 지속을 설득할 수 있었다. 6·25전쟁과 그 이후 지속됐던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과 갈등이 절대로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우리의 절실한 마음이야말로 북미 대화 재개에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된 것이다.

이제는 차분하게 한반도 평화를 향한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 특히 6·25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성이 가장 높았던 제1차 북핵위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핵사찰 요구를 했다. 그해 7월, 핵사찰 결과 보고서 상의 플루토늄 양과 사찰을 통해 확인한 플루토늄 양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북한은 미신고 시설에 대한 사찰을 거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3년 1월, 미국은 그동안 중단됐던 ‘팀스피리트’(Team Spirit) 훈련 재개를 선언했으며, 이에 반발한 북한은 1993년 3월, ‘핵확산방지조약’(NPT, Non-Proliferation Treaty) 탈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후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특사교환 실무회담에서 북한대표의 소위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 위기 상황에서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방북했으며, 그 결과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이 추진되면서 위기는 수습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그리고 김일성 사망 이후 10월, 북미 간의 ‘제네바 합의’를 통해 진정됐다.

제1차 북핵위기의 교훈은 심각한 대립과 긴장 국면일수록 물밑 대화를 촉진하는 중재자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북미 간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우리가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중재자가 돼 대화가 교착될 때 소통 창구가 되고, 양측의 새로운 합의를 이룰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하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대화 성사 이후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하고 있어야 한다.

4월 말의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도, 미국도 한 차례씩 예정된 대화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우리가 북미 사이에서 버려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역할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향한 도정이 재개되고 있는 지금, ‘버림을 받았다가 모퉁이의 머릿돌’(1베드 2,7)이 되는 성경 말씀이 실현되는 것을 보는 듯하다. 절실하게 한반도 평화를 향한 ‘모퉁이돌’의 역할에 집중할 때다.

이원영(프란치스코) rn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