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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김 헨리카 수녀님께 드리는 지상 편지

김무일(토마스 아퀴나스)
입력일 2018-05-29 수정일 2018-05-29 발행일 2018-06-03 제 309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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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솔뫼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거처하시던 김경자 헨리카 원로수녀님께서 갑자기 선종하셨습니다. 장례미사 참례 후 그 슬픔과 은덕을 가눌 길 없어 영전에 추모시를 바쳤습니다. 반백년 세월 동안 인생의 길잡이며 스승이셨고 신앙의 어머니이셨던 수녀님. 베네딕도 수녀원의 큰 어르신으로서 많은 일을 하시고 이젠 고통 없는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신 헨리카 수녀님을 추모하며 이 편지를 띄웁니다.

기어코 당신은 하늘나라로 가셨나이까

당신의 선종을 접하고

처음에는 생시인지 꿈인지 구별이 안 되어

눈물도 나오지 않더니

날이 갈수록 당신의 공백을 느끼며

사내답지 않게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손이 떨리고 가슴이 먹먹해서

당신을 떠나보낸 마음

형언할 길이 없으나

그리움을 기도에 담아

펜을 잡을 용기를 내어봅니다

백발 머리에 주름진 얼굴

등허리 굽어져 꼬부랑 할매가 되었어도

주님의 사랑 실천에

카랑카랑한 정기를 잃지 않으셨기에

한참을 더 사실 줄 알았었는데

이렇게 황망히 떠나가시니

주님의 부르심이 야속하더이다

50년 전 조용한 섬마을

철없이 성숙해 가던 고1 저희들에게

학문과 신앙을 깨우쳐주시고

올곧은 인생의 길을 인도해주신 수녀님

어디에 가서 살더라도

삶을 헤쳐 나가도록 한결같이 지혜를 주시고

참 사랑의 의미를 언행으로 보여주셨기에

항상 당신께서 가르쳐주신 그 뜻을 새기며

여태껏 주님을 섬기는 충실한 자녀로

잘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반백년의 세월이 흘러

저희들도 어르신이라 불리는 지금까지

긴 여정 굽이굽이

묵은지 사랑만을 알알이 남겨주고

홀연히 떠나가신

저희의 스승이요 어머니이셨던 수녀님

당신이 뿌리신 신앙의 씨는

저희 가정을 믿음의 작은 교회로 만드셨고

형제와 아들을 사제로 나게 하셨으니

이 축복을 세상 어디에 비기오리까

아들 가브리엘 사제를 끔찍이 사랑하셨던 할매수녀님

로마유학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서 만나보고 싶다고 하신지가 엊그제인데...

학기 중이라 귀국할 수가 없어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애도하며

명복을 빌고 있답니다

한 떨기 성녀처럼 살다 가신 헨리카 수녀님,

당신의 이름을 목메어 불러봅니다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은데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예처럼 저희들을 위하여

주님께 전구해 주시겠죠?

그토록 갈구하시던 부활하신 주님 품에서

부디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먼 훗날까지 하염없이 사랑하겠습니다

김무일(토마스 아퀴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