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34)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5-08 수정일 2018-05-09 발행일 2018-05-13 제 309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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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동창 신부님이 내게 순례 비용을 다 댈 테니, 성지순례를 같이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순례는 내가 언젠가는 꼭 한 번은 가고 싶은 일정이었습니다. 너무 좋은 기회라 수도회 장상들에게 순례를 갈 수 있도록 요청했더니, 허락해 주셨습니다. 순례 가기 전, 할 일들을 대충 마무리 짓고 기쁜 마음으로 순례를 떠났습니다.

순례를 하는 동안 나이가 들고 호르몬의 변화가 와서 그런지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순례지에서마다 하느님 사랑을 묵상했고, 그러면서 지난 시절, 사는 동안 내가 잘못한 분들 한 분 한 분을 기억하며 초를 봉헌했고 참회와 보속의 삶을 살기로 다짐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순례를 하다 보니 저녁이 되면 큰 피로가 밀려왔습니다.

순례의 시간이 중반을 지날 무렵, 동창 신부님이 힘들어하는 내게 말했습니다.

“석진아, 이번 순례 동안 많이 걸어서 힘들지? 그래, 힘들고 지치면, 숙소에서 잠자기 전에 따스한 물을 좀 받아 놓고 반신욕을 해 봐. 그러면 몸 전체가 편안해지고 잠도 잘 잘 거야. 나도 어제 반신욕을 하고 잤더니 오늘 하루 한결 편안하게 순례를 했어.”

‘반신욕이라!’ 귀가 쫑긋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남지 않는 기간, 지치지 않고 순례를 잘하기 위해서 뭘 하면 좋지?’ 하며 혼자 생각을 하던 차였습니다. 그랬기에 동창 신부님의 반신욕 이야기는 무척이나 반가운 정보였습니다. 그 날 저녁, 순례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한 후 내 방에 가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 물이 차자 반신욕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욕조 안의 물 온도는 발을 집어넣기가 뜨거울 정도였지만, 천천히 욕조 안으로 들어가 몸을 담그니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동창 신부님의 조언대로 반신욕을 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10분 정도 반신욕을 한 것 같은데, 몸에서 땀은 안 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좁은 욕조와 수증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무리 해도 땀이 나지 않자, ‘이상하군. 나는 반신욕이 맞지 않나? 할 수 없다. 그만하자’ 하며 욕조 물에 대충 샤워를 하고 몸을 닦은 후 새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 날 순례지에서 느낀 생각을 일기장에 적으려고 의자에 앉았는데, 그때부터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에서부터 얼굴로, 목으로 그렇게 땀이 줄~ 줄~. 그런 다음 등으로 흘러 온몸에 땀이 났고. 후다닥 윗옷을 벗었지만 그만 때는 늦었습니다. 속옷은 아예 땀으로 젖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온몸에서 흐르는 땀은 5분 정도 계속되더니 서서히 멈추었습니다. 순례 갈 때 준비물을 최소화했기에, 갈아입을 속옷도 거의 가져가지 않았는데…. 반신욕 한 번 잘못해서 속옷이 다 젖어 버린 것입니다. 암튼 급히 속옷을 빨고 밤새 말렸고 감기 걸리지 않는 것만도 천만다행이라, 하느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날, 큰 것을 깨달았습니다. 반신욕처럼 아무리 몸에 좋은 것이어도 그것을 하는 방법 자체를 모른다면 모든 것이 다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순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순례는 하느님만을 사랑했고, 주님이 가신 길을 충실히 따랐던 성인들의 삶과 신앙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순례 동안 자신을 성찰한 후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나갈 것을 결심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순례를 하면서 내 가족이 잘 되기를 빌고, 좋은 학교 가고, 돈도 많이 벌고, 사업이 잘되고, 미래도 확실히 보장을 받고, 심지어 자신의 삶에 기적 같은 은총만을 찾는 그런 순례를 한다면! 이것은 하느님 없는 순례, 주님 없는 순례입니다. 그 순례는 한낱 좋은 추억, 좋은 기억으로 끝나는 행사일 뿐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