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빛’ / 노중호 신부

노중호 신부 (성남대리구 서부본당 주임)
입력일 2018-04-03 수정일 2018-04-03 발행일 2018-04-08 제 3089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참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올바로 알고,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삶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제가 복음을 선포할 때 이마에, 입술에, 가슴에 십자가를 새깁니다. 2000년 전에만 갇혀 계시거나 죽은 글자로만 고정되어 계시지 않은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한 처음 하느님께서는 ‘빛이 생겨라’ 말씀하시며 어둠과 혼돈을 하느님의 질서로 만드셨습니다. 조화와 일치 안에 빛이 발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우리를 보내시면서 각자 소명을 주셨습니다. 사제는 미사성제를 봉헌하면서,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어머니는 가족을 안아줌으로서, 자녀들은 부모님을 공경하면서, 그렇게 그리스도의 빛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빛이 힘들고, 귀찮고, 악습에 익숙해져 빛을 내지 않는다면 그 빛은 사라지고 감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이 되어버립니다.

빛은 빛이어야 합니다.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은 얼마나 짙겠습니까? 가끔 교우님들께 돌직구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왜? “눈 한번 감으면 만사 다 편해, 원래 다 그래”라 말하며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온갖 사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더 잘사는 것 같은 세상일까요? 예수님 사랑의 마음과 말씀으로 살아가는 복음의 신앙인은 늘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태초에 심어주신 좋은 마음, 양심에 따라 사는 신앙인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거 지키면서 사냐?”는 소리를 들으며 세상에서 어리석어 보입니다.

세상이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어둠에 편중 되어서는 안 됩니다. 편중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관심사, 생각과 마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이 알아주는 것보다는 하느님께서 알아봐 주심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은 다 아십니다

본당에서 만나는 교우들을 보면,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서 묵묵히 설거지하시고 화장실 청소하시는 봉사자분들이 아름답습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다 기록해 놓으심을 믿습니다. 세상에 가치(몇 억, 몇 평)로 열광하기 보다는 영원불변한 하느님 나라에 온전히 향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 성야 때, 사제는 성당에 모든 불이 꺼진 어둠 속에서 부활초를 밝히며 ‘그리스도 우리의 빛’을 노래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나와 죽은 이들의 맏이가 되셨습니다. 어둠이 승승장구 할 줄 알았지만, 참 빛이 부활하셨기에 어둠은 사라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을 맛본 사람들입니다. 조금 더 보태기로 말씀 드리면 우리는 달이 되어야 합니다. 빛을 받아 빛을 밝혀야 합니다. 어둠이 판을 친다고 그믐달 되지 말고 초승달의 빛이라도 빛을 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나의 작은 빛 때문에(덕분에) 길을 잃었다가 다시 길을 찾습니다. 어둠에 편중하려다가 빛으로 향합니다. 정말 누군가는….

사랑이 머리부터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한평생이 걸리셨다고 말씀하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께서 생전에 참 좋아하셨던 노래 ‘등대지기’가 더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노중호 신부 (성남대리구 서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