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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길고 험난할 평화의 여정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04-03 수정일 2018-04-03 발행일 2018-04-08 제 308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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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만 해도 곧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던 한반도의 정세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불과 두 달여 만에 평화 정착을 위한 정세로 급격하게 변화했다. 남북은 4월 27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확정했으며,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의 북측 공연단 방남 공연에 이어, 남측 공연단이 3월 31일부터 4월 3일까지 두 차례 방북 공연을 갖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제안하고 한국 정부가 중재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동의하면서 5월에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지난 3월 25일에서 28일까지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을 방문해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이 자리에서 선대의 유훈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빠르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 한반도 평화 정착이란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한반도 평화 정착을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 간에 수차례 합의가 있었다. 냉전 체제가 해체된 1990년대 이후,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2000년 북미 공동 코뮤니케, 2005년 6자회담에서의 9·19 공동 선언 등이 모두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겠다는 합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모두 이행되지 않았다. 그만큼 한반도 평화 정착은 복잡하고 어려운 국제정치다.

서로 신뢰하지 않는 북한과 미국,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강대국들 간의 이해관계 충돌,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어려운 우리의 약한 국제정치적 위상 등 복잡다단한 변수들이 합의를 이루고도 그 실행에 있어 걸림돌이 돼 왔다. 특히 한반도 평화 실현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도 높지만, 북한 핵이 고도화된 현재의 상황에서 평화 협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어렵고 힘든 과정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련된 어느 나라도 파기할 수 없는 합의와 실행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으로 귀결되는 ‘코리아 엔드 게임’(Korea End Game)이 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반도 운전자론’(運轉者論)을 주창한 우리 정부는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충돌을 조정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KBS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상회담 긍정 평가가 86%, ‘한반도 운전자론’이 가능하다고 보는 의견이 58.8%이면서 동시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69.5%라고 한다. 즉 이념과 정파를 떠나서 국민들도 이 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길이 될 것인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인내와 끈기로 하나하나 매듭을 풀어야 할 것이다. 올해는 남북이 각각 정부 수립을 선포해 분단이 공식화된 지 70년이 되는 해다. 분단 이후 강산이 일곱 번 바뀐 올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이사 2,4) 새 역사를 쓰는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