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28) 성인 호칭 기도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3-27 수정일 2018-03-28 발행일 2018-04-01 제 3088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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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수도원 새벽 미사를 봉헌한 후 형제들과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데, 어떤 형제가 나에게 묻기를,

“강 수사님, 오늘 오후에는 뭐 하세요? 혹시 바쁜 일 있으셔요?”

“뭐 특별한 거 없어. 사실 며칠 동안 힘들어서 오늘은 조용히 쉬려고.”

“그렇다면 제가 영성적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드리고 싶은데 함께 해요.”라는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형제들이 또 무슨 작당을 벌이나’ 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자 다른 형제가,

“오후에 수사님과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요. 꼭 같이 가요. 1시에 마당에서 출발할 거예요”

형제들의 밑도 끝도 없는 요구에 나는 그만 승낙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오전에는 좀 쉬었고, 낮기도와 점심식사를 마친 후 1시에 수도원 마당에 나왔더니 몇몇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형제들은 수도원 승합차에 나를 태워 출발하기에 ‘이 차가 도대체 어디를 가느냐’ 물었더니, 어느 수녀회의 종신서원식에 간다는 것입니다. 아뿔싸!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수녀원에 도착했고, 제의방으로 가서 제의를 갈아입은 다음 주교님을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되자 주교님이 오셔서 제의를 입으셨고 곧 미사가 거행됐습니다. 그런데 그날 전례를 맡은 신부님께서 행렬 준비를 하는 사제단 쪽으로 오시더니 제대 위 의자에 앉을 신부님을 몇 명 뽑았는데, 내 머리가 하얗다는 이유에서 그랬는지, 나를 지목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부탁이었지만, 나는 그냥 떠밀려 제대 위 의자 쪽으로 올라가는 상황이 됐습니다.

사제단 입당이 시작됐고, 많은 신부님들은 제대 아래 임시로 마련된 의자 쪽으로 가고, 나는 마지못해 제대 위 의자가 있는 쪽으로 갔습니다. 어찌나 부담스러운지! 신자분들의 시선은 종신서원자 수녀님들과 주교님을 바라보는데, 그 시야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것 같아서 손동작, 전례 동작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습니다. 미사 시간 내내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었더니 종신서원식 후에 팔에 쥐가 났습니다.

이윽고 예식과 함께 성인 호칭 기도가 시작될 차례였습니다. 종신서원 대상자들은 제대 앞에 엎드렸고 제대 가운에 주교님과 복사들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제대 위에 계신 어른이자 원로 신부님들도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 역시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대 바닥이 대리석이라는! 과거 수술을 한 후 아직도 허리에 무리가 오면 저리는 증상이 있는데! 하지만 엄숙한 분위기와 주변 상황에 떠밀려 나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인 호칭 기도는 계속됐고 허리뿐 아니라 온몸에 ‘찌리릿’ 증상이 왔습니다. 나는 할 수 없이 부르르 떨면서 내 앞에 있는 의자를 부여잡았습니다.

또한 속으로는 성인 호칭 기도가 빨리 끝나기를 바랐으나 기도는 하염없이 길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예식이 끝나고 미사 후 제의방에서 나오는데, 수녀님 몇 분이 나에게

“신부님, 오늘 종신서원한 수녀님들과는 어떤 관계였기에 예식 도중에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하셨어요? 신부님의 기도하는 모습이 정말 감동이었어요.”

‘헐, 나는 허리와 무릎이 아파 힘들어 죽을 뻔한건데….’

그렇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웃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긴 예식과 성인 호칭 기도 중에도 흐트러짐 없이 대리석 위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시는 어른들의 모습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언제나 기도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서 그런지, 그분들이 온전히 마음을 다해 천상 성인들께 기도하는 모습은 감동이었습니다. 나 또한 중요한 다짐을 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높은 자리는 오르지 않겠다고. 특히 종신서원식 때 대리석 제대 위에는 결코…!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