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향기와 조우하다 / 강정이

강정이(가타리나) 시인·수필가
입력일 2018-03-20 수정일 2018-03-20 발행일 2018-03-25 제 308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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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새벽미사에 참례하러 문을 나서니 그믐달이 조용한 미소로 맞아준다.

저 그믐달에는 할아버지 향기가 난다.

창밖에서 밤새워 나를 지키며 비손하고 있는 나의 할아버지, 내가 가끔 밤새 뒤척이다 언뜻 눈을 떠 창밖을 보면 허연 그믐달이 할아버지 모습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대청마루에 누워 한잠 들다 눈을 들어 보면 할아버지는 부채질로 파리를 쫓아내며 그믐달 모습으로 나를 지키고 계셨다.

이제 할아버지만큼 늙은 지금도, 어쩌다 새벽녘에 뒤척거리다가 눈을 뜨면 그믐달이, 어린 시절 나의 단잠을 위해 지켜주던 할아버지 모습으로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마주친 그믐달과 더불어 성당으로 향한다.

오늘 미사는 더욱 숙연해진다. 나를 있게 해 준 핏줄이 그립고 애잔하다.

내 모태를 깊이 살피며 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서니 어느새 길이 환하게 밝아져있다.

집으로 이어진 길은 산책로라 새소리에 응수하며 걷다 보면 공원이 나온다.

유빙꽃 같은 매화가 피어있다. 매화향기에 끌려 나무 주변을 서성였다.

아, 꽃은 향기로 제 뜻을 표현하는구나, 향기가 꽃의 언어구나.

엄동설한 건너오기 슬프게 힘들었노라고, 그래서 유빙꽃처럼 맺혔노라고 소리치는구나.

그러고 보니 매화나무 곁 배롱나무 둥치가 기름칠 한 듯 반지르르하다.

저 둥치의 매끄러움은 매운 추위에 온몸을 움츠리며 버틴 인내의 언어가 아닐까.

그 곁 동백나무는 아름드리 풍성한 한 그루가 되기 위하여 바람과 씨름하다 화해하기를 반복하며 자신을 지켰구나.

그러고 보니 매화의 향기, 배롱나무의 매끄러움, 동백나무의 멋스러움은 매바람과 추위에 부대끼며 견딘 화해의 언어가 아닌가.

나는 저들의 언어를 받아 적고 싶었다.

그런데 순간, 내 귓전에 대고 속삭이는 말, ‘그건 아니야’라고 한다.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읽어 내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느끼라고 한다, 취해 보는 것도 좋다고 한다.

너 또한 굳이 너를 읽어 달라거나 이해를 구하지도 말며, 자신을 변명하거나 설명하려 들지도 말라 한다.

다만, 네게서 솟는 향기로 그 모든 것을 덮으라 한다. 너만의 향기로 존재하라 한다.

그러고 보니 사회에서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저 사람은 소외된 이에게 꽃 한 송이 건네겠구나, 저 사람은 그냥 지나치겠구나, 저 사람은 가톨릭 신자가 아닐까, 하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에게서 풍기는 향기로 가늠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나만의 향기가 우러나고 있을 터이니 저 매화처럼 하늘을 향해 마음문을 활짝 열고 걸어야겠다.

강정이(가타리나) 시인·수필가